4개국 67일 추적기-스텔라데이지호를 찾아서
취재의 시작은 단지 면피였다. 뜨거웠던 지난 여름에 만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인 허영주, 허경주 자매가 우루과이로 취재 가달라는 부탁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떠난 취재였다. 한국에서 떠날 때 나는 이 기사를 위해 뭘 기획할 수도, 아니 기약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한국 언론 중 누군가가 남대서양 한복판에서 실종된 우리 국민 8명의 흔적을 찾아 최선을 다했다고만 기록되어도 좋다는 “면피”에서 이 취재가 시작되었다.스텔라데이지호는 지난해 3월 31일 우루과이에서 동쪽으로 3000킬로미터나 떨어진 남대서양 한복판에서 침몰한 광석운반
‘실향민 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
경인일보 2017년 연중기획 '실향민 이야기 꿈엔들 잊힐리야'는 한국전쟁으로 고향을 잃고 남한에 정착한 실향민의 분투기다. 또 영영 사라질지 모르는 옛 북한의 이야기를 실향민을 통해 끄집어낸 '기록'이기도 했다.취재팀이 만난 17명의 피란민 할아버지, 할머니는 인천의 역사이자 대한민국의 역사였다. 전쟁 후 대한민국의 성장 과정에서 실향민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역사의 일부분으로 자리했다. 연안부두 어시장 상인부터 소래포구 쌀장수, 부평 벽돌공장 인부, 강화 인삼밭 농부, 영흥도 염부, 미군부대 잡부, 인천시청 공무원까지. 인천의 어
“군의원 5년 만에”…일가족 3명 줄줄이 공무원 채용 의혹
“완주군의원이 된 지 5년 만에 며느리와 제부 그리고 아들까지 일가족 3명이 완주군 공무원으로 채용됐다.” 완주군의회 부의장 이향자 의원의 얘기였다. 청년실업이 극심한 요즘, 그야말로 대단한 취업률이었다.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취재가 시작되자 하나씩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2011년 며느리가 가장 먼저 기간제 공무원으로 채용돼 7년째 근무 중이었다. 2년 뒤에는 여동생의 남편 즉 제부가, 다시 2년 뒤에는 아들이 잇따라 환경미화원으로 합격했다. 완주군 환경미화원에 대한 처우는 7급 공무원 수준으로 경쟁도 치열하다. 그런데도 마
뇌성마비 오진 세가와병
팔다리가 마비돼 걸을 수가 없어서 10여 년을 누워 지내다 스스로 두 발로 걸은 스무 살 서수경(가명)씨의 사연은 한편의 드라마이기도 하고 기적이기도 했습니다. 뇌성마비라는 잘못된 진단을 받을 당시 의학기술로는 ‘도파반응성 근육긴장 이상’(세가와병)이라는 병증을 쉽사리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기구하기만 한 수경씨의 처지가 안타깝기만 했습니다. 이 사연을 보도한 뒤 수경씨와 같이 뇌성마비 진단을 받고 고통 속에 지내다 세가와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도파민 복용 두 시간 만에 우뚝 선 박예빈(33·여·가명)씨 가족도 제2, 3
진안 가위박물관 유물 구입 의혹
마이산에 ‘가위박물관’이라니...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취재를 시작한 것도 이런 의문 때문이었다. 진안군은 가위수집가로 알려진 이모 씨의 가위 113점을 4억4천만 원에 구입했다. 감정기관의 감정을 거쳤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가위도 팔고 박물관 운영권도 챙겼다. 냄새가 났지만 절차적으로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취재를 접어야 할까 망설이던 순간 ‘빙고’. 수십년간 해외를 돌며 모았다던 진귀한 가위들이 사실은 인터넷 경매사이트 ‘이베이’에서 판매됐을 줄이야.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매달린 구글링의 성과였다. 더 단단한 팩
교수 논문에 자녀 끼워넣기…중·고생 자녀 ‘스펙’ 쌓아주는 교수들
취재하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의문이 있다. 정말 교수들이 주장하는 대로 자녀가 연구에 조금이나마 기여를 했다면 문제 삼을 수 있을까. 생사람 잡는 것은 아닌가.확신 없이 기사를 쓸 수는 없었다. 자녀가 연구에서 맡은 역할에 대해 더 자세히 물었다. 대부분은 단순 작업을 담당했다고 인정했다. 평범한 고등학생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고 했다. 다시 물었다. “그럼 다른 평범한 고등학생에게도 그런 기회를 주신 적이 있느냐”고. 만족할 만한 대답을 준 교수는 없었다. ‘기회는 평등해야 한다’는 원칙이 여기선 통하지 않았다.이후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고 최초보도 및 후속보도
밤 11시경 숙직실 문이 쾅쾅 울렸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어온 것이다. 사건사고랑은 거리가 먼 나였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가 싶었다. 같이 철야를 서던 김장헌 카메라 기자와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들어서자 경비원이 막아섰다. ‘무슨 일이 있기는 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유족의 도움을 받아 실랑이 끝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시작부터 걱정이 앞섰다. 카메라 기자가 동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생아 중환자실이 있는 층에 다다르자 오열하다 쓰러진 유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보
대입 부정 배후에 ‘대치동 브로커’ 있다
2017년 11월 17일 익명의 제보자가 이메일을 보냈다. 서울 강남에서 활동하는 입시 브로커가 수천만원을 받고 장애인증명서를 위조하는 수법으로 학생들을 장애인특별전형을 통해 부정입학시켰다는 내용이었다. 맨 마지막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장애인이 대학에 갈 수 있는 길을 뺐었으니 정유라 입시보다 더 악질적이라고 생각해요.” 필자는 ‘아무래도 그렇지 어떻게 더 악질적일 수 있나’ 라고 생각했다. 장애인특별전형은 농어촌특별전형 등과 함께 사회배려자 전형에 속하는 대표적인 정원외 전형이다. 제보자를 직접 만나 해당 학교와 부정입학 학생
'교수 논문에 자녀 끼워넣기' 기획력 돋보인 역작 '호평'
제328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10개 부문에 60편의 작품이 출품돼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엄정한 심사 끝에 8편의 당선작이 최종 선정됐다.취재보도부문에선 JTBC의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사망사고 관련이 심사위원들의 호평을 받았다. 상급종합병원인 대학병원 중환자실조차도 감염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사고 이후 신고절차도 지켜지지 않았으며, 신생아 중환자실 의료수가가 너무 낮아서 구조적으로 사고가 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돋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제보를 받아 취재가 이어졌고, 시간이 지나면 드러날 내용이었다는 지적이 있긴 했지만,
18살 고교 실습생은 왜 죽음으로 내몰렸나
한겨레가 이민호군의 사망 사건을 첫 1면 보도하기 전, 10일간 병상에 있다 숨을 거둔 고 이민호군의 이야기는 사회면에 단신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이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본 것은 한겨레의 사회부 기자들이었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추모집회를 연 것을 계기로 ‘시민들이 촛불을 든다’부터 의제 설정을 시작했다. 고교 현장실습생이 안전을 돌봐줄 사람 없이 장시간 고된 노동을 했다는 사실을 10대의 노동인권 측면에서 5일 연속 1면 톱으로 보도했다. 제주지역 기자인 허호준 기자는 현장 상황을 빠르고 정확히 포착해 실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