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의 시작은 단지 면피였다. 뜨거웠던 지난 여름에 만난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인 허영주, 허경주 자매가 우루과이로 취재 가달라는 부탁을 차마 뿌리치지 못해 떠난 취재였다. 한국에서 떠날 때 나는 이 기사를 위해 뭘 기획할 수도, 아니 기약조차 할 수 없었다. 그저 한국 언론 중 누군가가 남대서양 한복판에서 실종된 우리 국민 8명의 흔적을 찾아 최선을 다했다고만 기록되어도 좋다는 “면피”에서 이 취재가 시작되었다.
스텔라데이지호는 지난해 3월 31일 우루과이에서 동쪽으로 3000킬로미터나 떨어진 남대서양 한복판에서 침몰한 광석운반선이다. 그 배에 있던 선원들 중 한국인 8명과 필리핀 선원 15명이 실종된 사건이다. 내가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을 만난 지난 여름 그들은 광화문 한복판에서 실종자 재수색을 위한 서명을 받고 있었다.
이 사건이 조명받지 못한 이유는 사건직후 대선이라는 큰 정국에 잊혀졌다. 사고 해역이 너무도 먼 망망대해라 취재진 접근이 어려웠다. 그런 상황에서 전 정권 말기 권력 공백 상태에서 실종자 수색조차 흐지부지됐다.
나는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프랑스 4개국을 두 달에 걸쳐 돌며 이 불운의 선박에 탔던 선원들의 행적을 좇았다. 생존한 필리핀 선원의 최초 증언을 확보했고 스텔라데이지호가 마지막으로 출발한 브라질의 항구를 찾았다. 그 취재 과정에서 나는 국가란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국가는 국민의 생사를 확인하고 국가의 의무는 국민의 생명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언론은 국가가 그 역할을 하는가를 감시하는 의무를 가졌으며 나는 이 기본에 충실한 취재를 하고 싶었다.
긴 취재가 끝나 보도가 나가고 국가는 움직였다. 해양수산부에서 스텔라데이지호의 블랙박스를 건지는 TF 팀이 꾸려지고 기술검토에 들어갔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렸다. 블랙박스를 수거하는 것은 다시 사고 원인을 분석하여 재발할지 모르는 제2의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실종자 가족들이 애타게 기다리는 그들의 가족의 생사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증거이기도 하다.
그 TF팀에는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이 같이 참여한다. 첫 미팅 후 가족 대책위 대표 허영주씨는 “ 처음으로 정부 관계자가 우리 가족들과 진심으로 회의를 한다고 느꼈다”고 기뻐했다. 나의 기사가 스텔라데이지호의 비극이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국가와 언론이 최선을 다했다는 기록으로 남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