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단합 없이는 한국 영화의 미래는 없다
지난해 가을, 도서전 취재로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갔다. 한국 출판사들이 모인 부스에서 만난 프랑스의 한 편집자는 내게 채식주의자와 흰이 아주 좋았다며 제2의 한강이 누군지 알려달라고 했다. 잠시 고민하다가 김초엽과 정보라 작가의 이름을 적어주었다. 그는 홍상수 감독의 영화도 무척 좋아한다고 말하며 떠났다. 다행히 계엄이나 대통령 체포, 탄핵 등의 이야기는 묻지 않았다. 출장 중 괴테 생가에도 갔다. 마침 생가 근처 상가에서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주제곡 골든이 울려 퍼졌다. 당대의 지성이었던 괴테도 이 노래를 들었
'슈스케'가 된 K-AI
올해 초 정보기술(IT) 분야에서 가장 뜨거웠던 관심사는 한국식 인공지능(AI)인 K-AI, 즉 독자 파운데이션 모델 개발이다. 해외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 기술로 AI를 만들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보급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K-AI 계획이다. 이에 따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해 지원한 15개팀 가운데 두 번의 심사 과정을 거쳐 네이버, 업스테이지, LG, NC AI, SK텔레콤 5개 지원팀을 가렸고, 다시 업스테이지, LG, SK텔레콤 3개팀을 올해 초 추렸다. 여기에 추가 선발 1개팀을 더해 총 4개팀 중에서 내년까지…
28년 불법파견, 이젠 한전이 답할 차례
22일 오후 2시 광주고등법원 203호. 40석 남짓한 방청석을 가득 메운 사람의 대부분은 검은 외투 차림의 남성이었다. 가족으로 보이는 이들도 적지 않았는데, 방청석이 모자라 선 채로 재판정에 들어온 사람도 상당했다. 재판 결과를 듣기 위해 전국 섬에서 광주로 모여든 공공운수노조 발전노조 도서전력지부 조합원과 그 가족들이었다. 이들은 숨을 죽인 채 법관석을 지켜봤고, 기도하듯 손을 모으거나 눈을 감고 있었다.재판관 3명이 착석한 뒤 재판장이 항소를 기각한다는 주문을 읽자, 짧은 탄식과 함성이 터져 나왔다. 누군가는 감사합니다라고…
차별금지법, 나중에 말고 이번에
오전 8시까지 출근해야 했던 사회부 사건팀 시절이었다. 늦잠을 자서 택시를 탔는데 기사님이 툭 던지듯 말했다. 원래 아침에는 여자 손님 안 태워요. 오늘은 특별히 태워준 거예요. 고마워하라고 말한 걸까. 요즘 노키즈존 논란을 볼 때마다 종종 그때를 떠올린다. 아침 첫 손님으로는 여자를 받지 않는다는 개인적인 원칙은 그 택시 기사의 자유일까 아니면 차별일까. 아이를 손님으로 받지 않겠다는 것은 자영업자의 자유일까. 더 나아가 백화점 푸드코트에서 이곳은 사유지니 에티켓을 지켜달라며 노동조합 조끼를 벗어달라는 요청을 하는 것은? (해당…
'돈로주의'와 힘의 정치
1823년 12월 미국의 제5대 대통령인 제임스 먼로가 의회에 보내는 연두교서에서 밝힌 대외정책 기조와 방향성은 분명했다. 미국이 유럽에 관여하지 않을 테니, 유럽도 미국을 포함한 북중미와 남미 대륙까지, 아메리카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먼로주의 또는 먼로 독트린으로 불리는 이 대외정책 기조는 상당 기간 미국의 고립주의를 상징하는 말로 인식됐다. 당시 미국의 군사력이라야 유럽의 강대국들에 비하면 보잘것없었기에, 유럽의 특정 강대국이 이를 무시하고 개입했다면 먼로주의도 소용없었을 것이다.그러나 유럽은 나폴레옹이 몰락하
박나래와 이혜훈, 그리고 이정효
이제 일주일이 된 병오년 초의 화두는 갑질인 듯하다. 지난해 말부터 터진 개그우먼 박나래의 매니저 갑질 논란이 연예계를 휩쓸었다면, 정치권에선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의 과거 보좌진을 상대로 한 갑질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뚜렷한 상하 관계와 일과 시간 대부분을 함께 지낸다는 면에서 연예인과 매니저, 국회의원과 보좌진의 관계는 상당히 비슷하다. 그리고 연예인과 국회의원 갑질에 피해를 본 매니저와 보좌진의 사례와 보도도 꽤 오랜 시간 반복해서 나오고 있다. 문화스포츠부에 속한 지금이나, 9년 전 몸담았던 정치부 때나 직간접적으로
붉은 말의 해 '경제'가 달리려면
신년은 강한 활력을 가진 붉은 말의 해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최근 우리 경제는 침체된 모습이다. 특히 경제의 허리이자 미래인 청년층에게 이번 겨울은 유독 더 춥게 느껴진다. 취업난이 장기화하면서 청년들이 아예 구직을 포기하고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이다.개교 이후 처음으로 서울대학교가 공무원 고시반을 만든다는 소식은 청년들 사이에 취업난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직관적으로 보여주는 단면이다.실제로 최근 통계 지표를 살펴보면 청년 취업난의 심각성은 다방면에서 확인된다. 청년층의 경제활동참가율은 통계 작성 이
불멸에 관하여
기후외교의 균열이 제30차 유엔 기후변화협약 총회(COP30)에서 다시 선명해졌다. 미국은 사실상 불참했고, 중국이 그 공백을 빠르게 채우며 개도국 진영을 넓게 규합했다. 기후문제는 더 이상 모든 국가가 함께 움직인다는 전제를 유지하기 어렵게 됐다. 미국의 상호관세 정책으로 세계 공급망이 갈라지고, 국제질서는 다극화되는 추세다. 이런 흐름에서 기후 대응의 연대는 뒤로 밀리고, 외교적 선택과 산업 전략이 앞에 놓이는 상황이 됐다.COP30의 협상 장면은 포스트 파리체제가 안정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점을 보여줬다. 미국이 주도권을 잃
예술의 주인이 되려면
자니아는 제 연장선입니다. 저는 그를 실제 사람처럼 생각합니다.인공지능(AI) 가수 자니아 모네(Xania Monet)를 만든 시인 텔리샤 존스는 지난달 미국 CBS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자신이 쓴 시를 AI 작곡 플랫폼 수노(Suno)에 입력해 목소리와 멜로디를 입혔다. 가창과 연주를 직접 하지 않았지만 존스는 진정한 예술가는 나 자신이라고 강조한다. 음악의 감정과 메시지는 자신의 삶에서 비롯됐고, AI는 그 감정을 소리로 구현하는 도구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렇게 탄생한 How Was I Supposed to Know
제미나이3가 던진 숙제
구글의 공동 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회사를 창업할 때부터 꼭 해결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과제가 있다. 바로 전력이다.지인의 차고에 사무실을 차린 두 사람은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중고 컴퓨터와 스스로 조립한 컴퓨터를 쌓아 놓고 검색 사업을 시작했다. 그들은 검색 사업을 키우려면 더 많은 컴퓨터가 필요하고, 서버 역할을 하는 컴퓨터들이 안정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전력 공급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간파했다.이후 구글이 새로운 사업을 할 때마다 최우선으로 고민한 것은 항상 전력이다. 특히 데이터센터를 확대하면서 항상 전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