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가 이민호군의 사망 사건을 첫 1면 보도하기 전, 10일간 병상에 있다 숨을 거둔 고 이민호군의 이야기는 사회면에 단신으로 소개됐다.
하지만 이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본 것은 한겨레의 사회부 기자들이었다. 특성화고 학생들이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추모집회를 연 것을 계기로 ‘시민들이 촛불을 든다’부터 의제 설정을 시작했다. 고교 현장실습생이 안전을 돌봐줄 사람 없이 장시간 고된 노동을 했다는 사실을 10대의 노동인권 측면에서 5일 연속 1면 톱으로 보도했다.
제주지역 기자인 허호준 기자는 현장 상황을 빠르고 정확히 포착해 실시간 보도를 쏟아냈고, 24시팀(경찰팀) 사건기자인 고한솔 기자는 제주도의 경찰서와 소방서의 사고 당시 대응을 10대 특성화고 학생들을 만나 호소력 짙게 기사화했다. 교육부를 담당하는 김미향 기자는 이번 실습생 사망사고가 수년간 반복되어온 사회구조적 문제며, 근본적 원인은 기업, 정부, 학교가 함께 만들었다는 사실을 다각도로 짚어냈다.
무엇보다 이번 보도로 현장실습의 제도적 변화를 이뤄낸 것이 큰 성과다. 보도를 시작한 열흘 뒤 교육부는 조기취업 형태의 현장실습 전면 폐지를 선언했다. 현장실습 폐지는 10대를 더 빨리, 더 많이 취업시키기 위해 경쟁해온 지난 10년간의 고교 직업교육 패러다임을 바꾸는 변화였다.
의미 없는 죽음이란 없다. 짧은 사건도 깊이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의 제도적 문제점이 자리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를 발견해 사회 제도의 변화까지 이끌어내는 것은 한겨레의 의제 설정이 아니었으면 거두기 힘든 성과였다고 생각한다.
한겨레가 이 사안에 대해 보도한 수십 건의 기사에는 10대 청소년의 노동인권, 고졸 차별 문제, 질 낮은 일자리에 내몰리는 젊은이들의 고된 삶, 우리 사회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 문화까지 정치, 사회, 경제 여러 분야에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졌다.
현장실습 문제를 취재하며 만난 노무사, 노동인권전문가, 직업교육 교사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교육’이자 동시에 ‘노동’인 현장실습제도만 바로 세워도 그동안 교육과 일자리로 인해 고통받아온 우리 사회의 많은 청년 문제가 해결된다고. 이번 보도를 계기로 ‘헬조선’에서 살면서 누구나 겪는 고통이 되어버린 교육과 일자리에 대해 우리 사회가 새롭게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