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11시경 숙직실 문이 쾅쾅 울렸다. 이대목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에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어온 것이다. 사건사고랑은 거리가 먼 나였는데 오늘은 무슨 일인가 싶었다. 같이 철야를 서던 김장헌 카메라 기자와 무거운 눈꺼풀을 비비며 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으로 들어서자 경비원이 막아섰다. ‘무슨 일이 있기는 하구나’ 생각이 들었다. 유족의 도움을 받아 실랑이 끝에 겨우 들어갈 수 있었다.
시작부터 걱정이 앞섰다. 카메라 기자가 동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신생아 중환자실이 있는 층에 다다르자 오열하다 쓰러진 유족들의 모습이 보였다. 보도를 꼭 해야겠다는 생각에 휴대전화부터 꺼내 바리케이드가 처져 있는 중환자실 입구를 찍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가요?”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어려웠다. 숨을 거둔 아이의 아빠가 펑펑 울고 있었다. “우리 애는 건강했어요. 오전에 갔을 때만 해도 상태가 좋다고 했어요.” 아빠는 이 말을 반복했다. 다른 아빠한테 똑같은 질문을 하자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 애는 건강했어요...”
아이 이름이 불릴 때마다 엄마, 아빠들은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상황을 설명하러 나온 의료진은 아기들이 미숙아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주치의는 ‘죽을 수 있죠. 미숙아니까요’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유족들이 병원과 기나긴 싸움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이 사라지기 전 최대한 많이 증거를 확보해야 했다.
울며 나오는 그들을 붙잡고 질문하고 듣고 영상을 찍었다. 사망 시각과 부모들에게 이를 알린 시각, 아기들이 있던 위치, 비슷한 증세로 장 수술을 받았던 생존 아이들 부모의 증언 등 닥치는 대로 정보를 수집했다.
회사로 돌아와 선배 이호진 기자와 온라인 속보를 보냈다. 빨리 소식이 알려져야 사건이 묻힐까 걱정하는 유족들을 안심시킬 수 있을 것 같았다. 취재 내내 그들은 대형병원에서 기사를 막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후 내 취재의 부족한 점을 선배인 이한길 기자 그리고 정해성, 최하은, 강희연 기자가 채워 보도가 이어질 수 있었다.
다음날 유족에게서 고맙단 문자를 받았다. 기자 생활 2년 동안 ‘내가 과연 쓸모 있는 기자일까’, ‘나는 내 역할을 다하고 있을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번 보도를 통해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직도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을 수 없다. 취재 당시를 생각하면 지금도 슬픔에 잠겨 있을 유족들 얼굴이 떠오른다. 큰 슬픔이 닥친 와중에도 보도가 나갈 수 있게 도와준 유족들에게 감사와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