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전 9시10분 헌법재판소 인근 안국역 6번 출구 거리에서 진행된 윤석열 파면 촉구 집회 현장, 수많은 시민들 사이에 시사IN의 야외 스튜디오가 차려졌다. 전날 오후 급하게 결정된 방송 장소에 ‘테이블 하나’, ‘카메라 두 대’, ‘최소 인원’으로 꾸려진 간소한 스튜디오다. 오전 10시, 라이브방송 ‘김은지의 뉴스IN’이 시작됐다.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 당시엔 ‘거리편집국’이었다면 이번엔 “길바닥 방송국”이 이날 정오까지 파면을 고대해 온 시민들과 함께했다.
방송을 준비 중이던 김은지 시사IN 기자는 “생방송 준비를 하면서도 현장을 안 가는 건 아쉽다는 생각이 들던 차였다”며 “어제 먼저 집회 현장을 둘러보던 사진 기자 선배가 자리를 잡을 수 있겠다는 얘길 하셔서 저희 PD들과 기자들이 밤부터 이 자리를 잡게 됐다. 어제 저녁 리허설을 해보곤 방송할 수 있겠다 싶었고, 박성태 사람과사회연구소 실장 등 패널도 급하게 섭외했다”고 말했다. 지나가던 한 중년 남성이 제작진을 보고 “유튜브로만 보다 이렇게 보니 반갑다”며 인사를 건넸다.
헌법재판소의 탄핵 선고 1시간 전, 서울 종로구 안국역 6번 출구부터 광화문 인근 열린송현녹지광장 거리까지 사람들이 꽉 들어찼다. 시민들은 “내란을 끝장내자” “파면 해야지”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피청구인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헌재 주문을 먼저 외치기도 했다. 집회 현장 건널목 바닥에 분필로 바람을 적어놓은 시민들도 보였다. “민중이 꿈꾸는 거리입니다”, “탄핵, 이 세상 속에서 반복되는 슬픔 이젠 안녕!”, “아침이여 오라.”
이른 오전부터 ‘탄핵 찬성’ 집회 현장 곳곳에 놓인 대형화면을 통해 MBC 뉴스특보가 방송되고, 군중가와 K팝, 참가자 연설로 북적였다. KBS, MBC, JTBC 같은 국내 방송사는 물론 AFP 등 외신 취재진이 군중 사이사이에서 취재를 이어갔다. 선고가 가까워진 오전 10시50분, ‘선고중계 함께 보기’ 순서에 접어들자 거리는 일순간 조용해졌다. 뉴스 중계 소리만 들렸다. 조현용 MBC 앵커가 “지금 집회에서 시민들이 MBC를 듣고 계신 거 같다”고 하자 시민들이 “맞습니다”라고 외쳤다. 선고 5분 전 재판관들이 대심판정에 들어서자 함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파면해!” 구호를 외치던 이들은 결정문 낭독 직전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의 얼굴이 클로즈업 되자 긴장감을 내비쳤다. 모두 숨을 죽이고, 기도하듯 손을 모은 채 문형배 대행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낭독이 진행되며 파면으로 결과가 가까워지자 시민들 표정이 점차 밝아졌다. “피청구인은 헌법과 법률을 위반해 계엄을 선포함으로써 국가 긴급권 남용의 역사를 재현해 국민을 충격에 빠뜨리고 사회 전반의 혼란을 야기했다”는 선고 내용에 고개를 끄덕이고 피켓을 흔드는 몇몇 사람들 모습이 보였다.
선고문 막바지, “재판관 전원 일치된 의견으로…”라는 낭독이 나오자 앉아있던 시민들이 일제히 일어서며 환호했다. 오전 11시22분, “피청구인 대통령 윤석열을 파면한다”는 주문이 나왔다. 시민들은 서로 부둥켜 안고 기쁨을 나눴다.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이날 와이프, 딸과 탄핵 촉구 집회에 참가한 조정선(65·서울 종로구)씨는 “헌법을 이렇게 위반한 대통령이 또 있을까 싶었다”며 “이런 선고는 속전속결로 나와야 하는데 시간이 계속 지나면서 본질이 흐려지고 왜곡된다는 생각에 열흘 전부턴 걱정이 정말 많았다”고 안도감을 드러냈다. 이어 “아들이 교사라 오늘 집회엔 같이 오진 못했는데, 이번 선고는 교육적으로 보탬이 될 테니 학교와 상의해 꼭 교실에서 헌재 중계를 틀어놓으라고 얘기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자꾸만 늦어진 선고일 지정에 많은 시민들이 마음을 졸였다. 친구와 함께 집회를 찾았다는 김원석씨(40·서울 도봉구)는 “탄핵 선고 전까지 정신적으로 힘들었고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며 “선고 주문이 박근혜 때보다 업그레이드가 됐더라. ‘야, 멋있네’ 싶었고, 기분이 너무 좋아 펄쩍펄쩍 뛰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연한 결과라고 본다. 탄핵 쟁점 5가지 중 하나라도 걸리면 파면인 건데, 결정문 낭독 시작부터 5분 정도 들으니 딱 파면감이구나 알 거 같더라. 이렇게 결정할거면 빨리 하지 왜 그동안 이렇게 뜸을 들였나 싶다”고 했다.
최소영씨(40·서울 서초구)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잠도 잘 오지 않았다며 말문을 열었다. 최씨는 “오늘은 꼭 나가야 한다”는 어머니의 요구에 아침부터 집회를 찾았다. 그는 “원래 뉴스를 보지 않는 편이었는데 그날부터 매일매일 방송만 보고 아침 뉴스, 저녁 뉴스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배정화(22·경기 안양)씨도 “역사의 현장을 직접 보고 싶어 왔다”며 “솔직히 걱정을 많이 했는데 그래도 8대0 만장일치가 나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 사회가 민주주의를 향해 잘 나아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날 탄핵 찬반 주요 집회는 각각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인근을 비롯한 광화문과 대통령 관저가 있는 용산구 한남동 일대에서 각각 진행됐다. 이 같은 상황에서 ‘탄핵반대’ 집회 참석자들이 광화문 일부 구역에도 모이면서 양쪽의 충돌 가능성을 두고 경찰 당국 등의 긴장감이 높아지기도 했다. ‘탄반’ 집회가 열린 곳에서도 방송사의 현장 중계, 취재·사진기자들의 모습이 확인되긴 했지만 취재진 폭행에 대한 우려가 컸던 터 ‘탄찬’ 쪽과 비교해 눈에 띄는 비중이 현저히 적었다.
헌재의 선고 시점에 광화문역 6번 출구 인근엔 ‘탄반’ 집회 참석자들 120여명이 모였다. 태극기, 성조기를 흔들며 한남동 집회 중계를 지켜보던 이들은 “탄핵무효, 탄핵기각, 탄핵각하, 즉각 복귀”를 외치다 파면 결정이 나는 순간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는 이후 “국민 저항에 나서기로 했다”며 “국민 중 ‘이건 사기다’ 분노를 가진 사람은 내일 광화문으로 모여달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선고 후 10~15여분 간 자리를 떠나지 못하며 중계를 지켜보던 ‘탄반’ 집회 참석자들은 “어떻게 8대0이야”, “관저로 가자” 등 말을 주고받으며 서서히 이탈했고 오후 1~2시 쯤엔 거의 자취를 감췄다.
같은 시각, 안국역 인근에선 폭력적인 행동이 나타나기도 했다. 선고 직후인 오전 11시30분쯤 안국역 5번 출구 인근 수운회관 앞에서 한 남성이 쇠파이프로 경찰버스 창문을 깨부숴 현행범으로 체포되는 일이 벌어졌다. 오후 3~4시 현재, 안국역과 종각역, 인사동거리, 종로3가 등 집회 장소에선 참석자들이 대부분 이탈하며 경찰이 차단벽을 해체하고 도로봉쇄가 풀리는 등 빠르게 정상화하고 있다. 극히 일부의 ‘탄반’ 집회 참석자들이 남아 ‘이게 말이 되냐’며 실망감을 토로하거나 차마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정도였고, 이들의 반응, 현장 모습을 취재하는 소수의 방송사, 외신 기자가 보이는 정도였다. “영원한 대통령 윤석열 만세!”를 외치던 한남동 일대의 ‘탄반’ 시위도 오후 4시를 전후해 종료됐다.
2017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하나였던 광장은 이날 여실히 쪼개진 모습을 드러냈다. 집회가 열린 장소의 차이를 넘어 ‘탄찬’, ‘탄반’ 집회가 모두 열린 한남동 일대에서도 선고 순간 희비의 교차는 분명했다. 이날 헌재는 파면을 하면서 “국민 모두의 대통령으로서 자신을 지지하는 국민을 초월하여 사회공동체를 통합시켜야 할 책무를 위반하였다”고 판시했는데, 이는 헌정사에 남을 역사적 사건이란 차원을 넘어 앞으로 한국 사회가 극복해야 할 가장 깊은 상흔으로서 향후 민주주의와 정치, 우리 언론들에게 과제이자 반성 지점을 남긴다.
이번 비상계엄, 탄핵 국면에서 시민들은 언론의 역할에 대해 후한 평가를 하지 않았다. 김서경(24·서울)씨는 “이번 사건을 다루는데 보수·진보 매체 가리지 않고 서로의 입장을 강화하는 식으로만 보도가 나간 거 같다. 사건을 축소해서 다루거나 언론사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키워드가 극단적으로 나뉜 점이 보여 아쉬웠다”고 말했다. 동행한 김서현(26·서울)씨는 “처벌과 개혁 등 앞으로 남아있는 일이 많다. 이번 선고로 많은 힘을 받았다”면서도 “탄핵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단순하게 탄핵 찬반 여론으로 프레임을 짜는 언론이 문제라고 봤다”고 말했다.
조정선씨도 “일부 종편에선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를 마치 5대5로 놓고 보도를 했다”며 “강도질을 한 사람과 그걸 방조 한 사람들을 같은 선상에 놓고선 잘잘못을 따지는 격이었다. 그런 면에서 잘못한 언론들이 많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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