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쉐린 별과 돈 그리고 브로커
우리에겐 잘 모르거나 나와 다른 것은 덮어놓고 배척하거나, 좋아 보이는 남의 것은 무조건 신봉하는 의식이 있다. 한 번 그 편견과 선입견의 프레임에 빠지면 헤어 나오기 어렵다. 우리나라에서 발간 4년째를 맞은 ‘미쉐린 가이드 서울’도 나에겐 그런 것처럼 보였다. 전 세계의 미식을 평가한다고 정평이 나 있는 미쉐린이지만 정작 120년 동안 베일에 가려진 평가 시스템은 한 번도 제대로 된 검증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이 취재가 미디어가 그동안 만들어 놓은 맹목적인 권위에 대해 의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거대한 권위처럼 보
슈퍼타워
슈퍼타워 2부가 방영된 지난달 3일, 공교롭게도 101층, 국내에서 2번째로 높은 엘시티에 입주가 시작됐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자랑하던 해운대 미포, 엘시티 입주민들은 호사스런 바다 조망을 누리게 됐지만 이제 이곳을 찾는 시민들은 더 이상 하늘도, 바다도 볼 수 없다. 정책으로 규제해야 할 공공은 토건 마피아와 유착했다. 개발업자의 전방위적 로비는 전문가의 입을 막았다. 대다수 언론도 이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초고층이 4번째로 많은 나라다. 국내 초고층 건물 3곳 중 한 곳은 부산에 있다. 부산은 초고층 광
구본영 천안시장 결국 낙마
현직 자치단체장과의 ‘싸움’은 외롭고 고단했다. 첫 기사의 제목은 대가성 정치자금? 체육계 술렁…. 천안시장이 자신에게 정치자금을 제공한 인물을 천안시체육회 정규직으로 부정 채용했다는 내용의 보도였다. 후속 취재를 통해 그가 부친과 배우자 이름으로 불법 쪼개기 후원금을 냈다는 사실과 또 다른 채용 비리 의혹도 보도했다. 시청 감사관과 경찰서 정보과장이 채용 비리 소문을 덮으려 한 사실도 지면에 옮겼다. 파장은 컸다. 시민단체와 정당들이 진상 규명을 촉구하고 시의회에서 조사 특위 구성안을 발의하며 천안시장을 압박했다.보도를 부인하던…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출근길, 없던 습관이 생겼다. 집 앞에서 공사 중인 건물을 잠시 올려다본다. 4층 높이에 난간도 없이 뻥 뚫린 공간 사이로 비계발판이 보인다. 실수로 발을 헛디디기라도 한다면? 갖은 상상이 든다. 상·하수관 정비 공사 현장을 지나친다. 2m가 넘는 깊이로 땅을 파냈는데 양쪽 굴착면이 거의 수직이다. 아무 덧댐도 없이 드러난 흙의 속살 사이로 사람이 들어가 작업을 한다. 무너진 흙더미 사이로 매몰된 사고들을 기록한 조사 보고서들이 스쳐 갔다.끊이지 않는 노동자 사망 사건을 단 건이 아니라 한 번에 모아서 보여주자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이동호 고등군사법원장 수뢰 의혹
취재를 시작할 때부터 군 대대장이, 경찰서장이, 그리고 군 법무관 서열 1위이자 군 최고 사법기관장이었던 이동호 고등군사법원장이 뇌물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지는 못했다. 시작은 “대표님이 월급을 빼앗아간다”는 근로자 한 명의 고충을 듣고 쓴 XX사 근로기준법 위반 의혹이었다. 지면에도 배정받지 못하고 온라인으로만 출고한 작은 기사다.그럼에도 기사에는 힘이 있다. 누군가는 밤늦게 울면서 전화를 했고, 누군가는 만나자고 했다. 또 다른 누군가는 항의했으며, 누군가는 법적 대응을 운운했다. 이 사이에 흑막은 점차 걷혀갔다. 경남 사천에 위
국민일보 ‘일가족 사망’ 기획… 부모의 자녀살해 문제 밝히고 대안 함께 제시…
제350회 이달의 기자상 심사에서 5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많은 심사위원의 눈길을 끌었던 부분은 지금까지 많이 알려졌지만 국민의 관점에서 현장을 취재하고 자료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하여 해당 사안을 새로운 어젠다로 만들려고 노력한 보도가 많았다는 점이다.국민일보의 엄마·아빠, 저는 왜 같이 죽어야 하나요 기획은 일가족 사망사건의 특성에 주목한 기사였다. 부모와 자녀의 단순한 동반자살이 아니라 자녀를 살해하고 부모가 자살하는 사례를 피해자 전수조사, 수사자료 및 판결문 분석을 통해 의미있는 자료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돋보였다. 사건
“엄마·아빠, 저는 왜 같이 죽어야하나요”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이 말을 실감하게 한 취재였습니다. 그동안 가족 동반자살로 불렸던 사건의 초점은 ‘어른의 사정’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밀린 고지서나 극단적 선택의 이유를 담은 유서, 주변 사람에게 남긴 한마디는 부모가 절벽 끝에 선 배경을 짐작케 했습니다. 하지만 함께 세상을 떠나야 했던 아이의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계획 끝에 죽음을 선택한 부모와 달리 아이는 갑자기 생을 마감해야 했기 때문입니다.팀은 비극의 희생양이 된 아이들의 목소리를 뒤쫓기 시작했습니다. 판결문과 언론보도 등 기존 문서를 뜯어보는 게 첫번째
죽음 부른 통증 주사
‘나와 내 가족이 맞는 주사는 안전할까’, ‘왜 다나의원 같은 사고가 반복될까’ 취재의 출발은 이 단순하고도 근본적인 물음에서 시작됐다. 두 가지 문제의식을 공통적으로 가진 두 기자가 만난 건 지난 3월이었다. 이미 우한울 선배는 지난해 11월부터 주사제와 경구제 부작용으로 환자가 숨지는 ‘약화사고’ 취재에 착수한 상태였다. 나는 신생아 4명이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숨졌지만, 의료진에 무죄를 선고한 이대목동병원 1심 판결에 의문을 가진 채 올해 3월 합류했다.의료분야의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취재는 더뎠다. 영점(零點)을 잡기 위
돼지열병, 수백㎞ ‘원정 검사’ 이뤄진 배경
치명적인 감염병이 확산되는 즈음, 전문가들이 외치는 단골멘트가 “골든타임을 확보하자”다. ‘신속한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사태의 상황은 어땠을까. 결론은 아쉬움이 많았다. 감염 확진 여부를 알려면 수백㎞ 멀리 검역본부로 ‘원정 검사’를 해야 했다.검역본부 주소는 경북 김천시. 정부가 지자체에 ASF 검사 권한을 주지 않아서다. 관련 제도까지 검역본부만을 검사기관으로 명시했다. 이 문제가 연일 매스컴을 탔는데, 정부는 지자체의 시스템적 한계를 근거로 내밀었다. 전문성이 없는 일반인은
다시 쓰는 부마항쟁 보고서 2
“부마는 광주 진압의 예행연습장이었다.” 김선미 부마민주항쟁진상규명위원이 내게 해준 말이다. 수사적 표현인 줄로 알았다. 두 사건 모두 시민은 계엄군의 총칼에 위협받았다. 시기적으로 10·16이 5·18보다 7개월 먼저 일어났다. 부마에서 터져 나온 거대한 민주화 열망을 기억해 달라는 말인 줄 알았다. 그러나 그의 말은 실체적 진실이었다. 군부에게 부산·마산의 일은 광주에서 일어난 비극적 학살을 자행하게 한 직접적인 ‘교훈’으로 작용했다.부마항쟁진상규명위원회 도움으로 40년 전 군부가 남긴 문서 수천 장을 확보했다. 부마항쟁 진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