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명적인 감염병이 확산되는 즈음, 전문가들이 외치는 단골멘트가 “골든타임을 확보하자”다. ‘신속한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번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사태의 상황은 어땠을까. 결론은 아쉬움이 많았다. 감염 확진 여부를 알려면 수백㎞ 멀리 검역본부로 ‘원정 검사’를 해야 했다.
검역본부 주소는 경북 김천시. 정부가 지자체에 ASF 검사 권한을 주지 않아서다. 관련 제도까지 검역본부만을 검사기관으로 명시했다. 이 문제가 연일 매스컴을 탔는데, 정부는 지자체의 시스템적 한계를 근거로 내밀었다. 전문성이 없는 일반인은 “그랬구나” 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ASF를 취재할 때마다 찜찜한 기운이 가시질 않았다. 한 방역관을 붙잡고 자초지종을 들어봤다. 단순히 ‘방역체계의 미완성’으로 봤던 생각이 180도 전환된 시작점이었다. “경기도도 검사시설이 있고 검사도 할 수 있어요. 정부가 허가를 안 해줘서 못 쓰는 것이죠.”
취재에 돌입하자 경기도 동물위생시험소도 ASF 검사에 필요한 시설, ‘BL3(생물안전3등급연구시설)’ 2기가 있다는 사실이 파악됐다. 검역본부에서 쓰는 모델과 동일했다. 방역 당국에 묻자, 시설이 있다고 당장 검사가 가능한 건 아니라는 답이 돌아왔다. 인력 등도 갖춰야 한다는 것. 하지만 이를 해결할 기회는 존재했다. 지난해 9월, 방역 당국이 ASF 유입 전 예방 차원에서 논의했고 ‘지자체 시험소 활용’ 관련 안건도 도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경기지역은 발병지수가 높은 지역이므로, 도 동물위생시험소에서 검사를 했다면 대응에 상당한 시간 확보가 가능했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도 이후 법령 개정 등 지자체 검사 권한 이양작업이 진행됐다. 다행이지만 끝은 아니다. 새로운 감염병까지 미리 대처하는 자세는 우리 사회의 숙제다. 감염병과 싸우는 와중에도 취재를 도와준 방역 관계자들에게 감사하다. 이들은 모두에게 격려받아 마땅하다. ‘사람의 소리’를 최우선 가치로 여겨야 한다는 가르침 속에 기자가 나아가는 길을 비춰주는 정흥모 인천일보 경기본사 편집국장, 그리고 선·후배와 기쁨을 나누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