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227) 느리지만 분명히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절기상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이 이미 지났지만, 아직 늦가을 공기가 머문다. 햇빛이 내리는 붉은 벽을 따라 놓인 초록색 재배주머니에는 눈을 기다리는 메시지가 적혀 있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보리 씨앗을 심으며 겨울이 오면, 첫눈이 오면 새싹이 돋을 거라 들었나 보다. 아이들은 오가며 주머니를 바라보고 혹시 싹이 나지 않
[뷰파인더 너머] (226) '노을'이라는 선물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서쪽 하늘이 붉게 타오른다. 후배가 이제는 바꾸라는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어본다. 왜 요즘은 저녁노을이 눈에 들어오는 걸까. 바쁘다는 핑계로 노을이 지는 하늘을 보지 못한 시기가 있었다. 붉게 물든 노을이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노을을 바라볼 수 있는 일상의 여유가 이제는 생긴 것일까. 지금보다 더 힘들었던 10여년 전…
[뷰파인더 너머] (225) 권력의 그림자를 비추는, 불을 끄지 말아야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2006년, 한국의 언론자유지수는 세계 31위였다. 국경없는기자회(RSF)는 그해를 민주화 이후 언론의 다양성이 가장 안정된 시기로 평가했다. 그러나 2025년 현재 한국은 61위, 19년 만에 30계단이 내려앉았다. 이 하락은 특정 진영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자들의 치부 가리기가 그 본질이다.진보 정권은 인권을, 보수 정
[뷰파인더 너머] (224) 단상 아래의 리더십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두 시간 동안 이어진 기자회견이 끝나갈 무렵, 젠슨 황 엔비디아 CEO가 관중석을 향해 다가오자, 취재진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기 시작했다. 양복 차림이었던 그의 손에 들려있던 것은 과자 한 봉지. 미소와 함께 과자를 건넨 그의 손끝에는 배려와 여유가 담겨있었다. 익숙하지 않은 풍경에 놀란 것도 잠시, 그가 나눠준 과자를 입
[뷰파인더 너머] (223) 낭만 앞에 잊은 마감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이탈리아 북부 돌로미티 산군 알페 디 시우시. 오르티세이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오르면 유럽 최대의 고산 초원 너머로 사소룽고 봉우리가 병풍처럼 서 있습니다. 원 없이 걷다가 돗자리를 펴고 잠시 누웠습니다. 이익을 좇아 치열하게 다투는 논쟁, 타인의 잘못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뉴스들이 이곳까지 닿지 않습니다.대자연 속 호사
[뷰파인더 너머] (222) 가마꾼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이곳은 중국 백두산 천지로 향하는 길목. 붉은 가마가 관광객을 태우고 끝없이 이어진 계단을 오르고 내리길 반복하고 있었다. 중간쯤 오르자 멈춰 선 가마가 보였다. 가마꾼이 손님을 기다리며 숨을 고르고 있었다. 고단한 시간을 보냈을 터인데 그의 얼굴엔 은은한 미소가 피어있었다. 산을 오르내리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는 표정이
[뷰파인더 너머] (221) 다른 시간, 두 세계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한 가판대에 두 세계가 공존한다. 위쪽엔 색색의 조화가 빽빽이 꽂혀 있다. 빨간 장미와 분홍 카네이션, 노란 거베라가 화려하게 피어 있지만 손끝에 닿으면 생명 대신 비닐의 감촉이 돌아온다. 인공의 완벽함으로 만든 꽃들은 시들지 않고 계절이 바뀌어도 언제나 같은 빛깔을 유지한다. 그 아래에는 또 다른 시간이 흐른다. 작은 봉
[뷰파인더 너머] (220) 사진 한 장의 기다림이 그립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이른 아침 인제로 출장을 나선 날이다. 깜박 잊고 챙기지 않은 물건이 있어 차를 다시 돌려 회사로 향한다. 소양강 위로 피어오르고 있는 물안개가 눈에 들어왔다. 얼른 차를 세우고 카메라의 셔터를 눌러본다.주변을 산책하던 사람들도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자신만의 앵글로 물안개를 담아낸다. 문득 드는 생각. 사진을 찍어 순
[뷰파인더 너머] (219) 집회의 자유 외치며 언론자유 억압한 '대구퀴어축제'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20일 대구 도심에서 열린 퀴어문화축제는 대규모 경찰 병력의 호위를 받으며 진행됐다. 도심 한복판의 차량 통행은 통제됐고 하루 종일 대구 최대 번화가 일대는 극심한 교통 혼잡에 시달렸다. 행렬은 수십 개의 깃발과 함께 도로를 가득 메웠다. 조직위는 수십 년간 이어진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헌법 제21조가 보장하는 집회의 자
[뷰파인더 너머] (218) 빈자리를 기억하는 법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박윤슬(문화일보), 이솔(한국경제신문), 고운호(조선일보), 박형기(동아일보), 이현덕(영남일보), 김정호(강원도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일면식 없는 이들의 죽음을 기록하며 생긴 공허함은 쉽게 채워지지 않았다. 때로는 그 현장을 직접 마주하기도 하지만, 뒤늦게 도착한 그곳에서 떠난 이들의 흔적을 찾아보기란 힘들었다. 슬픔이 가시기도 전 누군가는 그 잔해를 치우기 시작했다. 사라진 이들을 기리고자 다시 찾은 그곳에는 이름도, 흔적도 남아있지 않았다. 빈자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