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울어진 법정' 시리즈
한 사회의 민주화는 날줄과 씨줄로 이뤄진다. 시민과 권력의 관계인 정치민주화와 시민과 시민의 관계인 경제민주화가 바로 날줄과 씨줄이다. 정치민주화가 수직적 평등이라면 경제민주화는 수평적 평등이다. 1987년 이후 한국은 정치의 민주화와 경제적 성공을 이뤘다고 스스로를 평가한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는 지난 30년 동안 제자리걸음이었다. 나쁜 정부는 단 한 번의 탄핵으로 교체할 수 있지만 나쁜 경제는 하루아침에 바꿀 수가 없다. 좋은 시장은 만들기도 어렵고, 만들어져도 지키기가 어렵다. 시장이 망가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것이 경제법이고,…
러 피겨 메드베데바 단독 인터뷰
평창올림픽은 선수들에겐 스포츠 전쟁터지만 기자들에겐 취재 전쟁터였다. 취재진이 특종을 노리는 것은 스포츠 선수들이 금메달을 노리는 것과 다름없다. IOC가 러시아에 ‘국가자격 출전 금지 선수 개별 참가’라는 중징계를 내리자, 러시아올림픽위원회는 선수단에 내외신 인터뷰 금지령을 내렸다. 평창올림픽 최고 스타인 피겨 요정(妖精) 메드베데바도 언론 인터뷰 단절을 선언했다. 하지만 불가능은 없었다. 메드베데바가 올림픽 개막일에 맞춰 비밀리에 입국한다는 사실을 알고 공항서부터 밀착 취재해 3시간 넘게 인터뷰 하는데 성공했다. 메드베데바가 러
경찰 온라인 여론조작 의혹 보도
경찰이 온라인 여론 조작에 나섰다는 내용을 담은 첫 기사를 쓸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다. 군에서 나온 단서에서 출발해 이정표 없는 길을 헤매다 또 다른 증거를 잡아 기사를 쓸 때까지 두 달이 넘는 시간을 취재했다. 그렇게 가닿은 곳은 경찰청 보안국이었다. 여러 동료들의 노력으로 철벽같은 보안국 담장의 한 귀퉁이를 헐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국정원, 국군 사이버사령부와 마찬가지로 경찰청 보안국에서도 포털사이트 등에 댓글을 달아 여론을 움직이려 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많은 고민이 들었다. 주변에서 흔히 접하는 경찰이 ‘은밀한 공작
'김윤옥 3만달러 든 명품백...'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 인터뷰 기사가 나간 지난 3월2일 아침 뉴욕에서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김윤옥 여사 2007년 대선 때 엄청난 실수, 사재 털어 각서까지 써 주고 막았다’는 기사의 각서 소지자가 뉴욕에 있다는 것이었다. 당시 정황도 곁들여져 있었다. 눈이 번쩍 뜨였다. 편집국과 협의해 국내 취재에 나섰지만, 여의치 않았다. 문득 “그래 밑져야 본전이지 뉴욕에 한번 가 보자”고 맘을 먹었다. 망설임도 있었다. ‘고참 논설위원이 오버하는 것은 아닌지’, ‘가서 허탕 치면 어쩌지’…. 그러나 결국 ‘이거 취재 안 하면 평생…
'김윤옥 명품백', '에버랜드 땅값' 기사... 보기 드문 수작들 나와
2018년 3월(제331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취재보도1부문 11편 등 모두 56편의 작품이 응모했다. 이중 서울신문의 ‘김윤옥 3만 달러 든 명품백 받아’ 등 총 8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김윤옥 명품백’ 기사는 최근에 나온 작품 중 보기 드문 수작이라는 칭찬을 받았다. 논설위원이 직접 폭로 당사자를 인터뷰하고 나아가 뉴욕 현지 취재까지 갔으며, 특파원과 공조해 각서라는 결정적 증거까지 제시한 것에 좋은 평가가 이어졌다. 한겨레신문의 ‘경찰 온라인 여론 조작 의혹 연속 보도’도 땀이 배어 있는 특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기
‘전두환회고록 검증’ 팩트 체크 10회
사실 처음엔 부담스러웠습니다. 재판 중인 사건을 팩트체크 한다는 것이 쉽게 내키는 일은 아닙니다. 모든 취재와 기사가 팩트를 체크하는 것이지만, 팩트체크 간판을 내건 기사는 팩트 확인에 더 엄밀하고 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전두환회고록’은 지난해 법원이 출판·배포 금지 1차 가처분 사건에서 5.18 재단의 주장을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씨가 문제된 부분을 삭제한 뒤 다시 출판하는 바람에 2차 가처분 사건이 시작될 즈음, 이번 기획 취재는 결정됐습니다.2차 가처분 사건에서 팩트체크 가능한 쟁점을 추려내고, 기존 5.18 관
‘꽃의 내부’ 무단철거 사태 보도
“이게 바로 문화적 테러에요.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겁니다.”부산 해운대해수욕장에 세워져 있던 세계 조각 미술계 거장 데니스 오펜하임의 작품 ‘꽃의 내부’가 용광로 속 쇳물로 사라졌다는 소식이 부산일보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지역 미술계와 예술계는 한탄을 쏟아냈다. 부산비엔날레와 부산바다미술제 등의 국제적 미술 행사를 통해 한층 한층 쌓아온 부산 미술계의 명성이 어이없는 행정으로 한순간에 무너졌다는 평가도 나왔다. 부산 시민들 역시 ‘어떻게 세계적 작가의 작품, 그것도 유작을 철거할 생각을 했느냐’며 해운대구청의 결정에 깊은
대학생 현장실습 참혹한 실태 조명
취재의 시작은 고등학생 현장실습 문제를 점검해보자면서 시작됐습니다. 지난해 말 제주에서 실습 중이던 특성화고 학생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으니 우리 지역은 문제가 없는 지 살펴보자는 의도였습니다. 취재를 하던 중 업체마다 특성화고 학생이 아닌 대학생들이 더 많이 눈에 띄었습니다. 대학생들은 대기업 콜센터, 영세한 제조업 공장, 가죽 가공업체 같은, 한 눈에 보기에도 위험하고 힘든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특성화고 현장실습에 대한 관심은 많았지만, 대학생들의 현장실습을 문제 삼는 기사는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취재 방향을 대학생 현장실
‘MB 차명재산 가평 별장’ 추적 보도
‘다스는 누구 겁니까’라는, 유행처럼 번졌던 질문에서 취재는 시작됐다. 과거와 현재의 일을 이으며 퍼즐을 맞추던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처남 고 김재정 씨의 재산 목록을 입수하게 됐다. 김 씨 사망 뒤 부인 권 모 씨에게 재산이 상속됐는데 상속세 납부 과정에서 미심쩍은 부분이 한두 개가 아니었다. 눈길을 끈 건 아무 조치 없이도 상속세로 물납되지 않고 남은 경기도 가평의 별장이었다. 현장을 돌며 단서를 얻었고 관련된 사람들을 물어물어 찾아 이야기를 들었다. 취재를 할수록 ‘별장 주인은 이 전 대통령’이라는 문장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1968 꽝남! 꽝남!’ 연속 보도
“원한 같은 건 없다.” 지난해 12월26일~1월2일 베트남 중부 다낭시와 꽝남성에서 베트남 사람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다. 1960년대 후반 베트남전 한국군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한 현재의 심경을 묻는 질문에 그들은 줄곧 ‘과거는 과거일 뿐’이란 태도를 보였다. 그들이 유가족이거나, 피해 생존자이거나, 목격자였기에 그 말은 잘 와닿지 않았다. ‘과거를 닫고 미래로 나아가자’는 정부 기조를 따라 형식적으로 대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넘겼다.50년 전 사건이 벌어진 날을 이야기하면서, 그들은 분노하고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기억은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