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 없는' 농업법인
[제358회 이달의 기자상] 김효신 KBS광주 탐사팀 기자 / 지역 기획보도 방송부문
김효신 KBS광주 기자 jak@journalist.or.kr | 입력
2020.08.26 16:10:09
“우리는 등외 국민이에요.” 취재하며 만난 농민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농민이 피해를 보고 이용당해도 공무원이나 관계자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며 넋두리를 이어갔다. 광주전남에서 기자 생활을 시작해 농업 분야를 6년이나 출입했지만, ‘나는 그동안 무슨 취재를 했던가’ 자괴감이 밀려왔다. 본사 탐사보도부 생활을 마치고 올 초 광주 탐사팀에 복귀하며 다짐했다. ‘농민에게 실질적으로 도움 되는 보도를 하겠다.’ 자본금 90억원. 광주전남에서 가장 큰 농업법인의 실태부터 살펴봤다.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중견 건설사가 주도한 곳이었다. 석달간 농업법인 전 임원 등 30여명을 만나고,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이중장부 등 내부 자료 25기가 분량을 확보했다. 3달이 어찌 흘러간 지 모를 때 농업법인의 불법 내용 10여 가지가 손에 잡혔다. 이를 토대로 지역에서 13꼭지, 전국권으로 2꼭지를 보도했다. ‘농민 명의 도용해 농업법인 세워, 보조금 30억원 꿀꺽’, ‘공무원·농어촌공사 직원에도 뒷돈’, ‘농업법인 이용해 자녀에게 토지 대물림’ 등 굵직한 뉴스가 이어졌다. 농어촌공사와 광주시, 광산구청이 감사에 나섰고 농민단체들은 검찰에 농업법인을 고발할 예정이다. 취재에서 건설사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내 자식들에게 땅을 물려주는데 비싸게 받을 필요가 있겠소? 세금도 많이 나오고.” 건설사 대표는 ‘농업법인’에서 산 땅을 자신의 것인 양 여기고 있었다. 자녀에게 토지를 편법 증여하고 농민들 명의를 도용한 것에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한 것 같았다. 언론이, 기자가 눈을 감았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느낄 수 있었다. 농민들이 더는 도구로 활용되지 않도록 농업문제를 외면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