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원'이 군인들 용어? 대통령 말습관도 모르는 대리인단
곽종근 "계엄 당일 국회 '인원' 빼내라는 지시, '의원'으로 이해"에
윤 대통령 "인원이란 말 써본적 없다" 반박하고는 '인원' 반복 사용
“의원이 아니라 요원을 빼내라는 거였다.” (1월23일, 윤석열 대통령 측)
“인원이라고 했지만, 의원으로 이해했다.” (2월6일,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
“사람이라는 표현을 놔두고 인원이라는 말을 써본 적 없다.” (2월6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이 12·3 계엄 당일 국회의 계엄 해제 의결을 방해할 목적이 없었다는 취지의 주장을 거듭 폈으나, 다름 아닌 자신의 발언 때문에 그 주장의 신빙성을 의심받게 됐다.
윤석열 대통령은 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자신에 대한 탄핵 심판 제6차 변론기일에서 “인원이라는 말을 써본 적 없다”고 말했다. 이날 증인으로 출석한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이 비상계엄 선포 직후 윤 대통령으로부터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은 대상은 ‘작전 요원’이 아닌 ‘국회의원’이 맞다고 진술한 것에 반박하면서 한 말이다.
곽 전 사령관은 앞서 검찰 조사에서 윤 대통령이 계엄 직후 비화폰으로 전화를 걸어 부대 이동 상황 등을 물으며 ‘아직 의결정족수가 안 채워진 것 같다’, ‘국회 안에 빨리 들어가서 사람들을 빨리 데리고 나와라’ 등의 지시를 했다고 진술했다. 곽 전 사령관은 이날 헌재에서도 이 같은 진술 내용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국회 안에서 빼내라고 한 대상이 누구냐를 두고 관련자들의 공방이 이어진 상황. 윤 대통령 대리인단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23일 4차 변론기일에서 ‘의원’이 아닌 ‘요원’이라고 주장했다. 곽 전 사령관은 처음엔 대통령이 ‘사람’이라고 했다고 진술했다가 정형식 재판관의 거듭된 질문에 ‘인원’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당시 국회 본관 안에 진입한 작전 요원이 없었기 때문에 ‘인원’을 당연히 국회의원으로 이해했다는 것이다.
이에 윤 대통령이 직접 반박하고 나섰다. 윤 대통령은 “사람이라는 표현을 놔두고, 또 의원이면 의원이지 인원이라는 말을 써본 적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발언에서 윤 대통령은 ‘인원’이라는 표현을 반복해 사용하는 모순을 드러냈다. 당시 국회를 봉쇄하려던 의도가 아니었다고 설명하며 ‘인원’이라는 단어를 두 번, 세 번, 반복해 쓴 것이다. 앞서 4차 변론기일에서 김용현 전 장관을 직접 심문할 때도 ‘인원’이란 단어를 쓴 것이 영상 증거로 남아 있다.
계엄 전으로 시간을 돌려도 윤 대통령이 ‘인원’이란 표현을 쓴 적이 없다는 건 사실이 아니다. 한겨레는 “‘대한민국 대통령실’ 누리집 ‘대통령의 말과 글’에는 윤 대통령이 인원이라는 단어를 언급한 사례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면서 2023년 5월 용산 어린이정원 개방을 계기로 가진 기자단과의 오찬 간담회에서 “너무 많으면 대화하기도 어려우니까 조금씩 나눠 가지고 자리를 한번, 인원이 적어야 김치찌개도 끊이고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 측은 ‘인원’이 “군인들만 쓰는 용어”라며 곽 전 사령관 증언의 신빙성을 깎아내리고 있다. 윤 대통령 대리인단의 윤갑근 변호사는 6일 재판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인원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건 아주 이례적이지 않나. 군인들만 쓸 수 있는 용어인데 대통령에게 인원을 들었다고 하는 건 그 말 전체에 대한 신빙성이 붕괴되는 거라고 저는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날 재판에서만 ‘인원’이란 단어를 여러 번 쓴 윤 대통령은 군 면제를 받았다.
윤 대통령의 말이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건 이번만이 아니다. 이른바 ‘바이든-날리면’ 사태와 관련해 자신은 미국 ‘의회’와 한국 ‘국회’를 구분해 부른다고 언어 습관을 설명한 윤 대통령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공개적인 기자회견 자리에서 미국 의회를 국회로 지칭했던 것이다.
윤 대통령의 방미 중 비속어 발언을 보도한 MBC를 상대로 외교부가 제기한 정정보도 청구소송 항소심에서 당시 대통령실 대변인이었던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해 10월 진술서를 재판부에 제출했다. 김 의원은 진술서에서 논란이 있던 당일 윤 대통령이 자신의 발언이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하며 미국 의회와 한국 국회를 구분해 말하는 평소 습관을 설명했다고 전했다. 그런데 며칠 뒤인 지난해 11월7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윤 대통령은 김건희 여사 특검법 관련 질문을 받고 미국의 특별검사 제도와 비교해 답변하는 과정에서 “미국 국회”를 반복해서 언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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