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왜 몰랐을까요
“이 대사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어요.” 배우 한효주가 말했다. 몇주 전 영화 ‘해어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녀에게서 들은 말이다. 정말이었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그렇게 좋은 것을”이라는 마지막 대사가 잊히지 않는다. 바로 그 한마디, 그 소실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였다. 빼어난 외모에 탁월한 창법까지 가진 한 여인. 둘도 없는 친구와 함께 조선 최고의 예인을 꿈꾸던 그 시절은 한없이 행복했다. 부르고 싶었던 노래, 운명같은 연인, 친구까지 모두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꿈꾸던 자리엔 친구가 서 있었
겉돌고 있는 한국 언론의 디지털 혁신
노키아는 한 때 휴대폰 최강이었다. 아이폰 출시 직후인 2007년 4분기엔 휴대폰 시장 40%를 독식했다. 시장 2위 모토로라의 3배 수준이었다. 하지만 ‘절대강자’ 노키아는 불과 몇 년 만에 비참하게 몰락했다. 2010년 초엔 노키아 CEO 입에서 “불타는 플랫폼에 올라타고 있다“는 자조섞인 얘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결국 노키아는 2013년 휴대폰 사업 부문을 마이크로소프트(MS)에 넘기고 말았다. 최절정기에서 불과 6년 만에 벌어진 일이다. 노키아 몰락을 놓고 여러 분석이 쏟아졌다. 가장 대표적인 게 ‘스마트폰 시장 대응 실패’
책은 나를 바꾸고, 나는 삶을 바꾼다
곧 나올 책의 서문을 쓰다가 유년시절의 기억을 떠올렸다. 초등학교 입학 후 한 학기를 마저 채우지 못하고 떠났던 가족의 이사. 학교를 한 해 일찍 들어갔던 7세 소년은 이사 당일 증발했다. 포장이사가 아직 미래의 용어였던 시절, 짐 나르느라 정신없던 부모는 아들의 잠적 혹은 납치를 눈치 채지 못했다. 뒤늦게 파악한 사태의 심각성. 생면부지의 동네에서 초등 1학년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스마트폰은커녕 삐삐도 없던 1970년대, 당황한 부친과 모친은 미아신고까지 마치고 반경 3㎞ 골목길을 헤집었다. 낙담한 부모의 분노가 두려움으로 바뀌던
마이너스 금리와 화폐의 사망
‘은행에 예금하려면 돈을 내야 한다. 대출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갚아야 할 원리금이 줄어든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에나 나올 법한 소설 같은 얘기가 현실화되고 있다. 전대미문의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도래하고 있기 때문이다.유럽중앙은행(ECB)의 마리오 드라기 총재가 2014년 마이너스 금리 도입을 선언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양적완화(QE)가 시장에 대한 영향력을 잃자 꺼내든 특별 조치다. 이후 스위스, 덴마크, 네덜란드 등이 마이너스 금리를 채택했다. 이들 국가의 일부 장기국채 수익률은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
후진적 기업문화 혁신, 언론은 예외인가?
대기업들이 앞다퉈 후진적 조직문화 혁신에 나서고 있다. 재계 1위 삼성은 최근 글로벌 기업에 걸맞게 의식과 근로문화를 탈바꿈하기 위한 ‘스타트업 컬처혁신’을 발표했다. 수평적 조직문화 구축, 업무 생산성 제고 등 3대 혁신전략을 내놓았다. 열린 소통과 지속적 혁신이 가능한 조직문화로 바꾸겠다는 취지다. 재계 4위 LG도 1월부터 일종의 온라인 제안제도인 ‘우리 틉시다’를 시행하고 있다. 내년부터는 현행 5단계 직급체계도 역할 중심으로 바꿀 계획이다.대기업들의 조직문화 혁신 배경에는 현행 상명하복 위주의 폐쇄적 조직문화로는 기업 발전
‘누가 보고 있지 말입니다’
지난주 금요일 오후, 우리 부부는 시청에서 종이 한 장을 받아들고 끙끙대고 있었다. 둘이 하는 결혼인데 국가는 원하는 정보가 많았다. 나와 아내의 이름과 주민번호, 주소만 적어냈다. 부모님과 장인·장모님의 주민번호는 욀 턱이 없었고, 등록기준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아는 데까지만 적었습니다.” 시청직원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신분증을 요구했다. 그리고는 적다 만 신고서를 다시 돌려줬다. “이거 보고 마저 쓰세요.” 직원은 가족관계증명서를 뽑아 나와 아내에게 건넸다. 증명서에는 우리가 빈 칸으로 남겨둔 곳에 써 넣어야 할 정보들이
한·일 양국의 뒤바뀐 야권지형
일본 열도의 정치 지각판이 꿈틀거리고 있다.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시작됐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의 정치판 상황이 한국과 매우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제3당의 원내 세력화에 정치 생명을 걸고 도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4·13 총선은 이변이 없는 한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로 치러질 전망이다.하지만 일본에서는 지난 14일 제1야당인 민주당과 제3야당인 유신당이 통합에 전격 합의했다. 오는 27일 민진당이라는 새 당명으로 일본판 야권
사랑은 여행과 닮았다
낯선 공간은 늘 매력적이다. 익숙하지 않은 공기 속을 거닐다 몇 평 남짓의 카페에 들어가 마시는 커피 한 잔. 그 순간의 기억은 의외로 강렬하고 또렷하게 새겨진다. 그 낯설음과 두근거림의 중간 어느지점을 오갈 무렵, 내 감정을 파고드는 ‘사람’을 마주하게 된다면 오죽할까. 엇갈리는 눈빛 속, 처음 건넨 말 한마디는 익숙했던 서울 어느 거리에서의 낯선 이들을 스칠때와는 다른 느낌이다. 프랑스 남부의 한 마을로 향하던 기차 안. 프랑스어로 가득했던 공간에서 또렷한 발음으로 ‘홍상수’를 안다며 내게 말을 건 동갑내기 터키 친구와의 인연은
삼성-애플 특허소송 제대로 보기
특허소송 보도를 할 땐 흔히 승부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물론 승부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때론 겉으로 드러난 승부 못지않게 밑에 깔린 논리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엔 삼성과 애플 간 2차 특허소송이 딱 그렇다. 잘 아는 것처럼 삼성은 애플과 2차 특허소송 항소심에서 역전승했다. 연방항소법원이 삼성의 데이터 태핑(647 특허) 특허 침해에 대해 무혐의 판결을 했다. 또 오타 자동수정(172 특허)과 밀어서 잠금 해제(721 특허) 등 애플 특허 두 건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것만 해도 굉장히 뉴스 가치가 큰 사안
‘루트 66’을 달리며 기자생활 20년을 돌아보다
냇 킹 콜의 ‘루트 66’은 이렇게 시작한다.“If you ever plan to motor west, (자동차를 타고 서쪽으로 갈 계획이라면) Travel my way, take the highway that’s the best.(내가 권하는 길로 가세요. 최고의 고속도로를 타세요) Get your kicks on route sixty-six.(66번 국도를 신나게 달리세요.)” 대북 핵무장론이 전면에 등장하고, 새누리당 경선이 ‘유령당원’ 논란에 시달리며, 침체된 스마트폰 시장이 VR(가상현실)로 한계를 돌파하려는 이 엄중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