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애플 특허소송 제대로 보기

[스페셜리스트 | IT·뉴미디어]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특허소송 보도를 할 땐 흔히 승부에 관심을 갖게 마련이다. 물론 승부가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때론 겉으로 드러난 승부 못지않게 밑에 깔린 논리에 눈을 돌려야 할 때가 있다. 내가 보기엔 삼성과 애플 간 2차 특허소송이 딱 그렇다.


잘 아는 것처럼 삼성은 애플과 2차 특허소송 항소심에서 역전승했다. 연방항소법원이 삼성의 데이터 태핑(647 특허) 특허 침해에 대해 무혐의 판결을 했다. 또 오타 자동수정(172 특허)과 밀어서 잠금 해제(721 특허) 등 애플 특허 두 건은 무효라고 판결했다. 이것만 해도 굉장히 뉴스 가치가 큰 사안이다.


하지만 난 이번 특허소송은 다른 관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핵심 쟁점이었던 ‘데이터 태핑’ 특허 공방이 중요한 철학적 의미를 담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데이터 태핑은 특정 데이터를 누르면 바로 연결 동작을 지원해주는 기술이다. 이를테면 웹 페이지를 누르면 바로 관련 창이 뜨고, 전화번호를 누르게 되면 곧바로 통화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식이다. 그래서 이 특허 기술은 ‘퀵링크’로도 불린다.


이번 항소심은 사실상 ‘퀵링크’ 침해 공방이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겉으로 드러난 모양새만 놓고 보면 삼성이 애플 특허를 침해한 것처럼 보인다. 갤럭시 폰들도 아이폰과 같은 방식으로 ‘퀵링크’를 구현하기 때문이다. 문자 메시지 같은 것에 있는 이메일 주소나 전화번호를 누르면 원하는 기능으로 ‘바로 링크(quick link)’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왜 항소법원은 삼성이 애플 특허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한 걸까?


애플 647 특허문서는 “분석 서버가 응용 프로그램으로부터 받은 데이터 구조를 탐지한 뒤 관련된 행위를 하도록 연결해준다”고 퀵링크를 묘사하고 있다. 여기서 쟁점이 된 것이 ‘분석 서버’였다.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이미 2014년 애플이 모토로라와 벌인 소송에서 647 특허를 좁게 해석한 적이 있다. ‘분석 서버’에서 구현되는 퀵링크에 한해서만 애플이 독점권을 갖는 것으로 해석했다.


이번 소송에서도 삼성과 애플은 퀵링크 기능을 어디서 구현하는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애플은 갤럭시 폰도 분석서버에서 비슷한 기능을 수행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삼성은 퀵링크를 구현하는 소프트웨어는 응용 프로그램에 불과하다고 맞섰다. 애플은 같은 기능이라고 주장한 반면 삼성은 작동방식이 다르다고 맞섰다. 물론 항소법원은 삼성 손을 들어줬다.


이게 왜 중요할까? 특허제도의 출발점을 따져보면 쉽게 알 수 있다. 특허는 원래 혁신을 장려하기 위한 제도였다. 후속 혁신을 위해 기술을 공개하도록 한 뒤 그 대가로 특허권자에게 독점적 권리를 부여해주는 게 특허제도다.


물론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보장된 권리가 적을 경우 기술 공개 유인이 떨어진다. 반면 지나치게 많은 권리를 보장해주면 혁신 장려만 목표를 달성할 수 없다. 특허권자가 길목을 독점할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특허소송은 이 둘 사이에서 적절한 좌표를 찾는 과정이다.


이번 소송에서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독창적 아이디어’보다 ‘작동방식 차이’에 더 무게를 실었다. 애플 특허권을 좁게 해석한 것이다. 그 결과 ‘후속 혁신 가능성’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 첨단 IT산업을 대표하는 특허소송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번 판결이 갖는 의미는 적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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