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순방 때보다 더 힘들어"… APEC 4박5일 취재 대전

[비하인드] 취재진 3000명 경주 집결
시차없는 취재, 눈코뜰 새 없었던 기자들

10월27일부터 이달 1일까지 경상북도 경주에서 개최된 APEC 정상회의주간. 21개국 정상과 1700여명의 글로벌 CEO가 모인 이 역사적 현장에 3000명이 넘는 국내외 취재진이 집결했다. 이들은 연달아 진행되는 정상회담과 특별만찬, 최고경영자회의 등을 취재하며 그 어느 때보다 숨 가쁜 한 주를 보냈다.

APEC 정상회의 폐막일인 1일 경북 경주화백컨벤션센터 내 마련된 국제미디어센터가 각국에서 온 취재진으로 붐비고 있다. /뉴시스

특히 의장국이었던 한국의 취재진은 가장 많은 일정을 소화하며 해외 순방 때보다 더 바쁜 나날을 보냈다. 장윤희 연합뉴스TV 기자는 “해외 순방보다 더 타이트했다. 시차도 없고, 우리나라가 주최국이다 보니 손님도 맞이해야 해 일정이 정말 많았다”며 “경주에 볼거리가 많다는데 관광은 언감생심, 밥 먹을 시간도 빠듯했다. 국제미디어센터에 갇힌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취재진이 가장 마음을 졸였던 순간은 한미정상회담이었다. 10월29일 진행된 한미정상회담은 예정보다 3시간이 지난 오후 8시 즈음에야 그 결과가 브리핑됐다. 결국 신문들은 모두 판갈이를 하고 방송사들도 저녁 뉴스를 뒤집어야 했다. 장윤희 기자는 “원래 오후 5시쯤 브리핑 예정이었는데 점점 늦춰져 6시, 7시가 됐다”며 “다들 왜 늦어지는지 설왕설래했는데 혹시 관세 협상에 진전이 있어 브리핑이 늦어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왔다. 실제 극적인 내용이 발표됐고 첫날부터 그 결과를 보도하느라 다들 체력을 엄청 소진했다”고 말했다.


정부도 고생하는 기자들을 위해 최대한의 편의를 지원했다. 오후 9시까지인 국제미디어센터 운영 시간을 연장하고, 끼니를 거르는 기자들을 위해 다양한 간식을 제공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기자 분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며 “모두 만족할 수는 없었겠지만 취재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했다”고 말했다.


정상회의주간이 경주에서 열린 만큼 지역 언론들은 특별취재팀을 구성해 곳곳을 집중 취재했다. 이창환 매일신문 사회2부장은 “APEC은 중앙 정부가 주최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지방 정부 역할이 한정적이고 저희 취재에도 한계가 있었다”며 “10여명 규모로 취재팀을 구성했는데 주로 현장 중심 이야기들을 기사화했다. 만찬장 변경이나 안전 문제, 또 관광과 문화 기사에 집중했다”고 말했다.


국내외 취재진이 집결한 만큼 영자지들도 취재에 공을 들였다. 김란 코리아타임스 편집국장은 “한국외국어신문협회 차원에서 ‘국제 행사인데 영자지는 들여놔야 하는 거 아니냐’ 정부에 건의했고, 그게 받아들여져 행사 기간 내내 국제미디어센터에 영자지가 비치됐다”며 “아무래도 3개 영자지가 같이 놓여있는 데다 외신 기자들이 참고하니 신경이 쓰이더라. 인원은 적지만 최선을 다해 신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대부분의 기자들은 APEC 취재를 위해 10월28일부터 4박5일간 경주에 머물렀다. 우려됐던 숙박 부족 사태는 한국 기자들에겐 해당 사항이 없었지만 숙소 가격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강정의 경향신문 기자는 “APEC 행사장과 거리가 있는 경주시청 인근 숙소를 이용했는데 4박5일 숙박비가 약 110만원 정도였다”며 “시설은 무난한 편이었지만 가격 대비로 보면 다소 열악한 수준이었다. 이마저도 예약이 어려워 지자체 도움을 받아 간신히 구했다”고 말했다.


정상회의라는 취재 특성상 자유로운 접근이 제한돼 일부 기자들은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주요 행사장인 화백국제컨벤션센터엔 취재진 접근이 전면 제한됐고, 특히 외신 기자들은 국제미디어센터 내 대형 화면으로만 대표단을 지켜봐야 했다. 강정의 기자는 “정상들이 묵은 호텔은 입구부터 통제돼 취재에 한계가 있었다”며 “도로 통제로 이동에도 시간이 많이 걸렸다. 다만 국제미디어센터는 간식과 음료가 충분히 준비돼 있어 취재 환경은 나쁘지 않았다”고 말했다.


APEC 기간 중 정상회의 못지않게 화제가 된 만남도 있었다. 바로 10월30일 서울 강남구 ‘깐부치킨’에서 열린 젠슨 황 엔비디아 CEO와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의 ‘치맥’ 회동이다. 권서아 아이뉴스24 기자는 “그날 회동한단 기사를 보고 2시간 전부터 치킨집 앞에서 기다렸는데, 취재를 위한 단체채팅방에만 60~70명의 기자가 모였다”며 “젠슨 황이 회동 중간 3~4차례 나와 기자와 시민들에게 치킨, 감자튀김을 나눠준 게 인상적이었다. 이재용 회장이 젠슨 황에게 ‘따뜻한 마음, 아주 정이 많은 친구’라고 한 것 그대로 느꼈고, 저도 감자튀김 하나 얻어먹었다”고 웃으며 말했다.


이번 APEC 정상회의는 ‘경주 선언’을 포함한 3건의 주요 성과문서를 채택하며 1일 폐막했다. 다만 기자들은 앞으로 남은 과제가 많다고 봤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 등 후속 논의가 필요한 의제가 상당해서다. 이창환 부장은 “포스트 APEC, 즉 행사를 치른 경주를 위해서도 공허함을 달랠 수 있는 사업들을 중앙 정부에서 고안해야 한다”며 “화백국제컨벤션센터, 국제미디어센터는 앞으로 어떻게 활용할지, 또 경주 관광을 어떻게 활성화할지 인프라 개선을 위한 중앙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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