딴짓하다 딱걸린 의원님들… 기자의 눈이 지켜봅니다

10월26일 국회 본회의장, 휴대전화를 열심히 들여다보고 있던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통신위원장의 모습이 홍윤기 서울신문 기자의 눈에 들어왔다. 이미 국정감사 기간 중 국회에서 자녀 결혼식을 진행해 논란의 한 가운데 있던 당사자인 데다 파란색 옷을 입고 있어 시선이 갔다. 처음엔 휴대전화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아 홍 기자는 다른 각도로 이동해 셔터를 눌렀다.

홍윤기 서울신문 기자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자녀 결혼식 축의금 반환 지시 메시지를 보내는 최민희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의 휴대전화 화면을 담아냈다. /서울신문 제공

‘○○○ 100만원, ○○○ 50만원, ○○○ 30만원’, ‘900만원은 입금 완료. 30만원은 김실장에게 전달함’. 찍은 사진을 확인해 보니 화면엔 최 위원장의 자녀 결혼식에 축의금을 보낸 정치인, 방송사, 대기업 관계자들 명단과 액수가 적혀 있었다. 최 위원장의 피감기관 축의금 수수가 사실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이날 홍 기자는 최민희 의원실,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 등 추가 취재를 거쳐 <피감기관서 축의금 받은 최민희, 본회의 중 ‘환급 문자’ 포착> 단독 기사를 보도했다. 보도 당일 “축의금을 돌려드리도록 보좌진에게 지시하는 내용”이라 해명했던 최 위원장은 논란이 커지자 국감 마지막 날인 10월30일 “(결혼식) 장소나 일정, 부조와 화환을 막는 좀 더 적극적인 사전 조치를 해야 했다”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홍 기자는 “최 의원 관련 논란이 많아 확인해 본 건데 축의금 액수나 리스트까지 다 적혀 있을 줄은 예상치 못했다”며 “그날이 일요일이기도 하고, 기자들이 평소보단 없어 최 의원이 방심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간 기자들에게 포착된 국회의원들의 휴대전화 사진은 여러 파문을 일으켰다. 최근엔 이춘석 당시 법제사법위원장의 본회의 중 주식 거래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며 불법 차명 거래 의혹이 불거졌다. 2022년엔 이른바 ‘체리따봉’ 사건으로 불리는 현직 대통령과 당 원내대표 간 메시지가 공개되는 일도 있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이준석 대표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라고 저격한 내용이 공개돼 당정 갈등으로까지 파장이 번졌다.


홍 기자는 “의원들 문자를 찍는 행위 자체에 대해 여러 목소리가 있고, 일반 사진 보도보다 정치뉴스와 관련이 돼야 주목받는 한계도 분명 있다”면서도 “그럼에도 필요한 보도라고 본다. 기자들이 의원들의 모습을 카메라를 통해 보고 있고, 이를 통해 국민들도 보고 있다는 걸 그들도 알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왼쪽)이 10월2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 중 고릴라 그림을 그리는 모습이 조성봉 뉴시스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뉴시스

이번 국감에서도 의원들의 각종 ‘문제적 장면’이 기자의 카메라에 포착됐다. 또 다른 논란의 주인공은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이었다. 10월27일 정무위원회 국감 중 노트북으로 고릴라를 검색까지 해가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유 의원의 황당한 모습이 조성봉 뉴시스 기자의 카메라에 담겼다. 문자를 보내는 등 국감에 집중하지 않는 의원들은 숱하게 봤지만, 대놓고 지우개까지 써가며 그림 그리는 데 열중하는 의원은 조 기자로선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보도 직후 ‘왜 그림을 그렸는지’ 묻는 여러 기자들의 취재에도 “아무 뜻 없다”고 했던 유 의원은 비판 여론이 사그라들지 않자 자신의 SNS에 “비록 짧은 몇 분이지만 그림을 그린 딴 짓에 대해선 할 말이 없다. 실수한 거고 변명할 게 아니”라는 입장을 냈다.


조성봉 기자는 “국감이 시작되고 40분이 지난 뒤 회의장에 들어갔는데 이미 유 의원은 테두리를 다 그린 상태였다. 50분까지도 그림을 그리고 있었는데 ‘대략 10초에서 길어야 30초 정도 걸렸다’는 유 의원의 해명은 맞지 않다”고 우선 지적하며 “요즘 카메라는 셔터 소리가 안 나긴 하지만, 바로 뒤에서 찍어도 모를 정도로 집중하고 있었다. 처음엔 영상·사진 기자가 저밖에 없었는데 이후 기자들이 더 들어오자 작업을 그만두기도 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조 기자는 “이전에 논란이 됐던 의원들보다는 괜찮지 않느냐는 의견도 있는데, 본질적으로 같은 문제라고 본다”며 “의원들이 스스로 자신의 역할, 자리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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