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양국의 뒤바뀐 야권지형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김동진 세계일보 정치부 차장

일본 열도의 정치 지각판이 꿈틀거리고 있다. 오는 7월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시작됐다.


재미있는 점은 일본의 정치판 상황이 한국과 매우 대조적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안철수 국민의당 상임공동대표가 제3당의 원내 세력화에 정치 생명을 걸고 도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4·13 총선은 이변이 없는 한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로 치러질 전망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지난 14일 제1야당인 민주당과 제3야당인 유신당이 통합에 전격 합의했다. 오는 27일 민진당이라는 새 당명으로 일본판 야권통합호를 출범시킨다. 제2야당인 공산당도 그동안의 독자노선을 포기하고 다른 야당과의 선거연대에 동참할 뜻을 밝히고 있다.

한국 야권은 강한 원심력을 받고 있다면 일본 야권은 어느 때보다 구심력이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4년 전의 상황은 한·일이 정반대였다. 일본은 자민당과 민주당의 거대 양당체제를 깨고 새로운 3당 체제를 만들겠다며 하시모토 도루(橋下徹·46) 오사카 시장이 2012년 일본유신회를 출범시켰다. 당시 동일본대지진으로 깊은 내상을 입고 신음하던 일본 사회는 새로운 정당의 출현을 긍정적으로 바라봤다. 덕분에 그해 치러진 중의원 총선에서 50여 명의 당선자를 배출해 민주당에 이어 제2야당으로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한국은 비슷한 시기 야권통합이 대세였다. 2011년 말 더불어민주당의 전신인 민주통합당이 출범하더니 곧이어 2012년 4월 19대 총선을 앞두고 통합진보당과 야권연대가 성사됐다.


4년 만에 한국과 일본의 야권 상황이 뒤집힌 것은 무엇 때문일까. 일본 유신회를 이끌던 하시모토 오사카 시장의 ‘3당 정치체제 실험’의 부침과 깊이 관련돼 있다.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립정권이 중의원의 과반을 넘어서면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독주가 가속화됐다. 아베 총리는 경제를 살리겠다며 ‘아베노믹스’를 내세웠고, 외교안보적으로 보통국가를 내세우면서 집단자위권과 군비증강을 골자로 하는 우경화 드라이브를 걸었다.


야권이 이를 적절히 견제하고 균형을 잡아야 하는데 민주당과 유신회 등으로 쪼개진 야권이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게 일본 야권 지지자들의 큰 불만이었다. 제1야당인 민주당의 무능도 문제였지만 제2당인 유신당도 뚜렷한 노선과 정책을 보여주지 못한 채 주요 고비마다 아베 정권의 편에 섰다. 결국, 유신회는 지난해 내부갈등으로 유신당과 오사캉신회 등으로 분당되고 말았다.


아베 총리가 오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승리해 ‘평화헌법 9조’를 뜯어고치겠다고 공언하고 있는 상황이다. 결코 허풍이 아니다. 지난 14일 공개된 NHK 여론조사에 따르면 자민당 지지율은 37.9%로 민주당(8.9%)과 공산당(3.7%), 유신당(0.2%) 등의 지지율 합계(12.8%)보다 3배 가까이 높았다.


현재의 추세를 막지 못하면 일본의 우경화는 걷잡을 수 없이 진행돼버리고 말 것이라는 불안감이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 팽배하다. 이에 민주당과 유신당, 공산당 등이 “헌법9조를 바꾸려는 세력이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지 못하도록 하겠다”며 야권통합과 연대의 깃발을 올린 것이다.


바다 건너 일본의 정치상황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 야권은 지금 거대 양당 체제의 모순으로 고통받고 있는가 아니면 일본처럼 거대 여당의 독주 때문에 고통받을 위기에 놓여 있는가를 다시 한 번 깊게 고민해 봐야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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