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땐 왜 몰랐을까요

[스페셜리스트 | 문화] 김빛이라 KBS 기자

“이 대사 때문에 이 영화를 선택했어요.” 배우 한효주가 말했다. 몇주 전 영화 ‘해어화’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녀에게서 들은 말이다. 정말이었다. “그때는 왜 몰랐을까요, 그렇게 좋은 것을”이라는 마지막 대사가 잊히지 않는다. 바로 그 한마디, 그 소실점을 향해 달려가는 영화였다.


빼어난 외모에 탁월한 창법까지 가진 한 여인. 둘도 없는 친구와 함께 조선 최고의 예인을 꿈꾸던 그 시절은 한없이 행복했다. 부르고 싶었던 노래, 운명같은 연인, 친구까지 모두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꿈꾸던 자리엔 친구가 서 있었다. ‘왜 나는 안 되는 건데요?’ 비뚤어지기 시작하는 여인은 스스로를 잃고 모두를 잃어간다.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절망감은 무서운 힘을 발휘해 안타까운 선택을 향해 치닫고 만다.


욕망과 질투의 중간지점은 어디일까. 욕망이 있기에 꿈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는가 하면, 해낼 수 있는 것 이상을 탐내는 나날의 끝에선 절망감이 물밀듯이 밀려온다. 그러곤 마치 쉽게 그것을 차지한 것 같은 이에게 화살을 돌리고 싶은, 바로 그 ‘질투’라는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흰 도화지 앞에서 늘 머뭇거렸던 나와 달리, 총천연색을 자유자재로 써가며 하늘풍경을 그려오던 짝꿍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미술학원에 마지막까지 남아 그 그림을 따라해보던 어린 시절, 나도 모르게 ‘쟨, 엄마가 대신 미술숙제를 해줬을거야’라고 중얼거리곤 했었다. 예쁜 미술선생님께서 친구의 그림 앞에서 짓는 환한 미소가 그렇게도 부러워서, 미술 수업이 있는 날만 되면 짝꿍에게 괜한 심통을 부렸던 기억도 난다.


미술 천재를 인정하지 못했던 꼬마의 질투심은 귀엽게 봐줄만하다지만, 신이 내린 재능으로 가득한 예술세계에서 재능에 대한 욕망은 상상을 뛰어넘는 것일 게다. 거기에 사랑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이고 가변적인 감정까지 끼어든다면, 이성을 뛰어넘는 감정은 더욱 걷잡을 수 없으리라.


예술가들의 욕망과 사랑을 다룬 영화는 그래서 더욱 매력적이고 강렬하게 다가온다. 관객에게 묻고 또 묻는다. 어디까지 만족하고, 어디까지 탐할 것인지 선택하라고 말이다. 영화 ‘블랙스완’에서 질투와 광기로 무너져가는 발레리나 니나에게 감독 토머스는 소리친다. “네 앞길을 가로막고 있는 유일한 사람은 너야. 이제 보내야 할 때야.” 최고난도의 백조 연기를 꿈꾸는 그녀는 신입무용수 릴리가 뿜어내는 관능적 매력 앞에 좌절해 무너지지만, 우리는 그것이 아니어도 니나 자체로 빼어난 아름다움과 천재성을 지녔음을 알고 있다. 한편으론 사랑과 재능 앞에 욕망하는 니나를 이해하기에 관객들은 어느새 그녀에게 몰입해있다.


친구를 흉내내느라 ‘나’를 잃어버렸던 흰머리 여인. 그 시절 ‘나’의 노래를 듣는 영화 ‘해어화’의 마지막은 말해준다. ‘그렇게 좋은’ 지금의 나를 잃고 후회하지 않길, 나의 가치를 지키는 건 결국 나뿐이라고. 교과서에 나올법한 이 ‘인생 교훈’은 무수한 영화의 주제가 되고 있지만, 앞으로도 계속 반복되리라. ‘머리’로 멈출 수 없는, 그 어렵고 복잡한 욕망과 질투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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