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을 팝니다
유머 없는 진지함은 실패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최근 다녀온 쿠바 출장에서 풍자로 승부하려는 풍경 하나를 만났다. 아바나 혁명기념관의 한 전시조형물. 실물 크기의 초상을 만화 스타일로 그린 뒤, 촌철살인의 한 줄을 적어 놓고 있었다. 우선 1959년 쿠바 혁명의 실질적 화인(火因)이었던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 대통령. “우리가 혁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그 옆에는 카우보이 복장을 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이 있다. “우리가 혁명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다음 차례는 지쳐 보이는 줄리어스 시저
브렉시트, 성장이 멈춘 사회의 묵시록
성장이 멈추는 순간 ‘분열’과 ‘갈등’이 폭발한다. 세계경제를 ‘패닉’으로 몰아넣은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는 그 전조다. “EU를 떠나는 것은 미친 짓“이란 국제사회의 목소리는 “EU에 남아 있으면 점점 더 많은 비(非) 영국인이 삶터와 일자리를 점령할 것”이란 영국 국민의 피해의식에 묻혀버렸다. 세계의 성장 엔진이 급속히 식어가고 있다. ‘제로 성장’에 이어 디플레이션으로 대변되는 ‘역성장(degrowth)’을 걱정해야 할 정도다. 성장이 멈추면 ‘제로섬(zero-sum) 사회’가 된다. 제로섬 사회에서 한
롯데 수사와 검찰의 언론플레이
“어, 안보이네!”월요일인 지난 20일 아침 기자실에서 만난 동료 기자가 신문들을 살펴보다가 놀란다. 지난주까지만 해도 검찰의 롯데 비리수사 관련 기사들이 신문과 방송의 헤드라인을 요란하게 장식했다. 하지만 이번 주초에는 롯데를 다룬 헤드라인 기사를 거의 찾기 힘들다. 다른 주요한 이슈들이 새롭게 등장했다면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도 있지만, 그런 상황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롯데가 뉴스 헤드라인에서 사라진 이유는 역으로 지난주 롯데 기사가 쏟아진 배경을 살펴보는 게 도움이 된다. 최근 롯데의 이미지는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을 정도로…
한류에 빠진 韓외교가 경계할 점
한국 외교가 한류에 푹 빠졌다. 우리 정부의 외교현장에 한류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있다. 한·불 수교 130주년을 기념해 지난 2일 프랑스 파리를 방문했던 박근혜 대통령은 현지에서 케이팝(K-Pop) 콘서트에 참석해 현지인들과 어울렸다. 이날 콘서트에는 샤이니, f(x), 방탄소년단, 블락비, 아이오아이 등 한류 아이돌그룹이 대거 참여해 화려한 무대를 선보였다. 박 대통령이 열광하는 1만3500명의 관객들 틈에서 박수를 치는 모습이 국내 언론에 소개됐다. 앞서 박 대통령은 아프리카 순방중이던 지난달 29일에도 우간다 세리나호텔 컨
‘디어 마이 프렌즈’에 눈길이 가는 이유
“Just live well. Just live.” “그냥 살아요.” 소설 ‘미 비포 유’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생각했다. ‘Just’ 라는 단어의 울림이 이렇게 클 수 있구나. ‘그냥’ 사는 것 자체도 쉽지 않구나. 우리 모두는 ‘그냥’ 사는 이 순간을 마음껏 누려야 할 의무가 있다고. 로맨틱 코미디로 포장된 이 소설의 마지막이 울림이 너무 컸다. 모든 걸 다 갖춘 젊은 사업가가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 환자가 된다. 단 한 번도 주체적으로 살아볼 용기를 내지 못했던 한 여자가 간병인으로 그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 행복해지기 위해
페이스북 편향성 논쟁의 진짜 의미
최근 미국에선 페이스북의 편향성 문제로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IT 전문 매체인 기즈모도가 ‘트렌딩 토픽(Trending Topic)’에서 보수 성향 기사를 홀대하고 있다고 보도한 때문이다. 페이스북이 지난 2014년 도입한 트렌딩 토픽은 편집자들이 큐레이션 해주는 뉴스 서비스다. 한국에선 볼 수 없지만, 영어권 이용자들에겐 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결국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보수 논객들을 만나 해명하는 것으로 일단 마무리됐다. 논란이 커지자 뉴욕타임스는 ‘페이스북은 저널리즘을 구할까? 망칠까?’란 논
기부로 만드는 책 ‘올재 클래식’
고전에 관심있는 독자라면 당신도 한 번 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기부로 만드는 책, ‘올재 클래식’. 슬로건은 ‘Share the Wisdom, Change The World’. 우리 말로 풀면 ‘지혜를 나눠, 세상을 바꾸자’ 정도 될까. 조선일보 Books 지면에 올재 클래식 이야기를 꺼내면서, “1등만 기억하는, 시작만 기억하는” 에피소드를 꺼낸 적이 있다. 좋아졌다지만 여전히 최고만 기억하거나, 첫 출발에만 주목하는 경우가 많으니까. 비영리 사단법인 올재(이사장 홍정욱)가 펴내는 동서양 고전 시리즈 ‘올재 클래식’은 2012년…
한국은행을 위한 변명
정치인은 물론 정책가들도 종종 부족한 논리를 포장하기 위해 교묘한 수사(修辭)를 동원한다.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판 양적완화’도 그런 의혹을 받는 표현이다. 한국판 양적완화는 2008년 금융위기 때 국공채를 직접 매입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양적완화 정책에 빗댄 것이다. Fed도 어려울 때 나서 양적완화를 했으니 한국은행도 따라야 한다는 ‘당위성’이 배어 있다. 하지만 정부가 추진하는 양적완화는 부실기업 도산을 막아주는 ‘구제금융’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한국판’이란 수사로 포장했지만 ‘공적자금 투입’에 다름 아닌…
누가 옥시 피해자를 두번 울리나
국민의 공분을 사고 있는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의 파문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검찰의 수사 속도가 빨라지고, 정치권은 진상규명을 위한 청문회를 추진키로 했다. 가습기 살균제 문제가 2000년대 초 처음 제기됐고, 2011년에는 사망자 발생이 구체적으로 알려지면서, 정부가 제품수거에 나선 것을 감안하면 너무 늦은 일이다.더욱이 피해자들에 대한 손해배상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기업을 상대로 한 소비자의 손해배상소송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배상의 근거가 되는 피해액 산정도 쉽지 않은 게 일반적이다. 결정적인 것은 이번 사건처럼 검찰이
北 김정은과 후지모토, 로드맨
전 미국 프로농구(NBA) 스타 데니스 로드맨(55)과 일본인 요리사 후지모토 겐지(藤本建二·62).둘 다 코믹만화 캐릭터를 연상시키는 범상치 않은 용모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어 보인다.하지만 두 사람은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이 틈날 때마다 평양으로 불러들여 극진히 환대하는 외국인 ‘절친’들이다.금방이라도 인기만화 ‘슬램덩크’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용모의 로드맨은 미국 프로농구(NBA) 마니아인 김정은에겐 어린시절의 우상 중의 우상이다. 두건으로 머리를 감싸고 검은 선글라스를 착용한 후지모토는 금방이라도 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