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기자상] 저당잡힌 미래, 청년의 빚
오늘 입금하려고 했는데 월급이 밀려서 안 들어왔어요. 내일까지 드리면 안 될까요?대부업체가 고객들에게 돌리는 전화는 일반 콜센터와는 종류가 좀 다릅니다. 상담원을 괴롭히는 진상들보다도 일상에 지친 피로한 목소리를 온종일 듣는 게 일입니다. 3주간 대부업체에 잠입해 취재하면서 빚의 무게를 가장 크게 실감한 건 수치를 통해서가 아니라, 소리를 통해서였습니다. 독촉과 회피, 한숨과 염려로 가득한 청년 채무자들의 삶이 묻어나는 목소리를 기사에 왜곡 없이 담고자 고민했습니다.최근 MZ세대로 규정되는 청년들의 이미지는 솔직과 무례의 경계를 넘
[이달의 기자상] 성착취 불패의 그늘
영등포 성매매 집결지 이야기를 꺼내면 대부분 사람들 반응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거기에 집결지가 있었어? 혹은 집결지가 아직도 있어? 외면해왔거나 관심조차 주지 않았기 때문일 겁니다. 기존에 성매매를 다뤄온 방식과 다른 보도를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초점을 맞춘 부분은 누가 성매매를 알선매수했는가가 아닌, 누가 성매매 장소를 제공했는가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당사자는 업주도, 건물주도 아닌 국가였습니다. 서울 한복판에서 수십 년간 불법 성매매 영업장소를 제공한 정부와 지자체의 묵인방조가 있었기에 건물주와 토지주들은 성 착취로…
[이달의 기자상] 경남신문 심부름센터
흥미롭긴 한데 엉뚱하다. 경남에서 인구가 가장 적은 의령군 궁류면, 여기에서도 20가구만 사는 오지마을인 입사마을에서 심부름을 하며 마을 주민들의 삶을 기록한다는 기획안을 보고했을 때 나온 사내의 반응이었습니다. 3개월 동안 주민 삶 속으로 들어가 마을의 일부가 되려 한 시도가 어떻게 보면 급진적인 시도였을지도요.이런 시도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설 곳을 점점 잃어가는 신문, 그것도 상황이 더 열악한 지역신문의 위기를 어떻게든 기회로 바꿔보고 싶은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언론환경의 변화도 있겠지만, 그 이전에 지역 언론이 지역과 멀
[이달의 기자상] 5·18 암매장 진실 첫 확인 등
518 암매장 보도와 관련해 가장 가슴 아픈 댓글은 도대체 언제까지 팔래?, 그리고 광주를 다 파라는 비아냥입니다. 그동안 10여 차례 발굴에서도 성과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광주에서 518을 취재하다 보면 돌아오지 않은 시민들, 그리고 사라진 시신들, 또 시신을 묻었다는 군인들, 그리고 의심되는 군(軍)기록들을 볼 수 있습니다.518 행방불명자의 유골이 42년 동안 땅속에 묻혔다가 확인된 것은 왜 쏘았니, 왜 찔렀니, 트럭에 싣고 어딜 갔니(오월의 노래2)라고 통곡하듯 묻는 이 노랫말의 첫 답이 된 것입니다. 암매장의 실체는
JTBC '이영진 헌법재판관 골프 접대 의혹' 보도, 재판관 본인의 보도 내용 시인·사과 이끌어내
제384회 이달의 기자상에는 이영진 헌법재판관 골프 접대 의혹 추적 보도와 다섯 개의 다이아몬드 보도 등 모두 7편이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전체 제출 작품 79개의 8.8%이다.취재보도1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된 YTN 김순호 경찰국장 밀고 특채 의혹 보도는 초대 수장인 김순호 경찰국장 관련 이슈를 가장 먼저 보도한 점과 오랜 기간이 지난 사안임에도 구체적객관적으로 검증했고 당사자 인터뷰를 통해 반론도 충실히 담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보도 후 정치권과 시민사회 등에서 김 국장 퇴진 등 후속 움직임이 일었는데, 출범 초기 윤석열 정부의…
[이달의 기자상] 김순호 경찰국장 밀고 특채 의혹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원이 저에게 1989년을 회상하며 한 말이 기억에 남습니다. 어둑한 골목길, 차가운 반지하방. 그때 그 시간이 마치 흑백영화 같다고 말했습니다. 무언가 바꿔보겠다는 마음을 품고 하루하루 공장을 다니던 시절은 급작스레 시작된 대공혐의 수사로 끝이 납니다. 그런데 치본(치안본부) 대단하다고만 생각하고 묻고 살던 시간이 33년 만에 다시 세상으로 끌어올려졌습니다. 초대 경찰국장으로 김순호씨가 등장하면서.영화 같은 이야기입니다. 처음 제보를 받은 날부터 보도 두 달이 되어가는 지금까지도, 잠들기 전이면 당시 정말로 무슨
[이달의 기자상] 맹신과 후원, 폭주하는 유튜버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저들은 도대체 왜. 지글지글 끓는 아스팔트 위에서 목에 핏대가 서도록 욕설을 내뱉는 유튜버를 보며 이 생각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광장 유튜버로 대표되는 정치 유튜버와 열성 구독자는 누구일까. 한 달여간의 취재 끝에, 사회경제적으로 소외된 이들이 정치 유튜브를 마지막 피난처로 여기며 의지하고 있다는 답을 내리게 됐습니다.아직 마음이 무겁습니다. 평산마을에 있는 유튜버들은 지금도 오전 8시부터 욕설 집회를 생중계하고, 진보 유튜버와 구독자도 아크로비스타 앞에 있기 때문입니다. 후원자들은 쌈짓돈까지 꺼내고 있습
[이달의 기자상] '엘' 성착취물 범죄 추적
범죄자 엘의 수사를 촉구합니다. 시작은 한 통의 제보였습니다. 미성년자 A가 온라인에서 괴롭힘을 당하고 있으며, 가해자는 전력이 있는 범죄자라는 것. 취재 결과 범죄인 건 확실했지만 바로 보도하기엔 망설여졌습니다. 섣부른 보도가 가해자(엘)를 숨게 해 수사에 혼선을 주거나 피해자의 고통을 가중시킬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자문을 구했습니다. 그중 한 명이었던 얼룩소의 원은지 에디터(불꽃 단), 그는 조언했습니다. 가해자들이 잡히는 모습을 많이 보도해서 성착취범들이 경각심을 가지게 할 필요는 있어요. 그러나 두 달이 지나고, 8월 초가…
[이달의 기자상] 이영진 헌법재판관 골프 접대 의혹 추적
사회부 기자에게 제보란 오아시스처럼 보이지만 대체로 신기루와 같습니다. 제보자 A씨의 주장도 오아시스와 신기루 사이 어딘가에 있었습니다. 내 재판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법조계 고위직인 이영진 헌법재판관에게 골프와 식사를 접대했다. 고가의 골프 의류와 현찰도 전달하려고 시도했다는 그의 말은 허무맹랑해 보였습니다. 하지만 취재팀은 그를 처음 만난 뒤 해볼 만하다고 판단했습니다.취재팀은 A씨를 만나고 현장을 다니며 하나하나 검증했습니다. 골프장 영수증이 나왔고, 이영진 헌법재판관에게 건네달라는 부탁과 함께 A씨에게 금품을 받은 변호인
[이달의 기자상] 세계 최대 김해 고인돌 훼손 사태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경기도 김포 장릉 앞 경관을 가로막고 건설업체가 고층아파트를 건립 중인 사실이 드러나 철거 공방을 빚었다. 장릉처럼 지자체, 민간업체 재개발로 위기에 처한 문화유산들의 사례를 연초부터 탐문해오다 김해 고인돌 참상을 알게 됐다.김수로왕 개국신화가 깃든 금관가야 연고지를 자부하면서 기초지자체 중 가장 많은 학예직 전문가가 일하는 김해시가 복원을 앞세워 고대 분묘인 고인돌의 묘역 파괴를 자행했다. 사실을 접하고 충격과 공분을 담아 기사를 썼다. 문화유산을 낮잡아 보는 지자체의 안일한 관리 실태에 경종을 울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