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마감이 임박했던 7월10일, 혼자 김치볶음밥을 먹으며 떠올렸다. 폭염으로 사망한 사람의 이야기를 제대로 다루겠다 다짐하고 ‘아 이건 진짜 대박 아이템’이라며 혼자 흥분에 떨었던 기억을.
생각해보면 늘 그런 식이다. 때가 되면 뇌는 강력한 호르몬 세례를 받은 듯 온갖 환각을 연출한다. 기사는 복잡하고 잔인한 세상에 길을 밝혀줄 것이며, 나는 그래도 꽤 괜찮은 기자임이 증명되고, 아픈 사람도 조금은 줄어들 거라는 기대가 정신을 지배한다. 첫 삽도 뜨지 않았는데, 수상 소감의 단어를 고르면서 들떴고, 욕심나는 동료들에게 다단계 사기꾼 같은 눈빛으로 동참할 것을 유혹했다. 취재가 시작되면 그 달디 단 환각의 대가로 금단 증상이 나타난다. 가설은 빗나가기 일쑤이며 수치는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인터뷰를 거절당하면서 원망을 시작한다. 기대에 다다르지 못한 취재가 늘어날 때쯤에야 스스로를 돌아본다. 어디서부터 내 고집이 취재를 망치기 시작했고 동료를 얼마나 괴롭혔는지. 능력도 없는데 왜 일을 벌였나 자책한다. 시작도 안 했으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 거라는 자위에 다다르고, 갑자기 외로워진다. 김치볶음밥을 먹는데 너무 외로웠다. 동료들도 외로울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증상의 마지막 단계에서는 ‘아 결국 나 혼자구나. 이 잘난 아이템을 붙잡고 끙끙거렸구나’ 하는 찌질함이 몸까지 망치기 시작하는데, 이때 벗어나지 못하면 정말 다 끝이다. 나를 진창에서 건지고, 끝까지 함께한 지희, 김창선, 이정은, 박서영, 최한솔, 그리고 정상원 부장에게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