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 '막말'과 기자의 역할

[언론 다시보기]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정치인의 ‘막말’에 대한 언론의 보도를 접하면서 기자의 역할과 저널리즘의 기능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된다.


‘막말’은 민주적 시민성에 위배되는 지극히 무례한 행동이다. 그럼에도 엘리트 정치인들의 ‘막말’이 연일 계속된다. 참여적이고 당파적인 유권자의 정치 담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인물이 될 때 대중적인 인지도를 확보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정치 여론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기대에서 ‘막말’은 비롯된다.


정치 엘리트들의 ‘막말’은 언론의 뉴스생산 관행을 이용하는 전략적 커뮤니케이션 행위이다. 갈등에 주목하고 정치를 게임으로 묘사하는 언론의 관행에 ‘막말’은 좋은 뉴스거리이다. 일탈적이고 자극적인 언행에 주목하는 언론의 뉴스 가치 판단이 정치인의 ‘막말’을 유발하고 이를 전하는 뉴스들이 그들의 대중적 인지도 제고를 거쳐 정치적 영향력 확보에 도움을 주는 과정이 반복된다. 다음과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다.


먼저, 특정 정치인에 대한 평가를 내리려면 그(그녀)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다. 유권자는 언론이 제공하는 뉴스와 가족이나 직장동료 혹은 친구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러한 정보를 얻는다.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정치인과 대면 접촉을 하거나 주변에서 그(그녀)를 관찰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이들 또한 대화에 필요한 정보를 미디어에서 얻는다(정치 정보의 2단계 유통). 둘째, 인터넷의 등장으로 종이신문 구독률이 하락하고 방송의 영향력은 감소한 반면 스마트폰의 보급과 더불어 모바일 포털 뉴스 소비가 증가한다. 포털에 의존하는 뉴스 소비 행태는 언론사 간 치열한 경쟁을 유발해 언론사로 하여금 정확성보다는 신속성을 우선시 하게 한다. ‘기사의 사실 미확인 또는 불충분한 취재’ ‘주어진 시간에 할당된 과도한 기사 작성량’ ‘독자 관심끌기에 대한 욕심’이 기자를 압박하면서 보도자료 베껴쓰기가 일상화됐다(김춘식 외, 2019). 정치인의 일방적인 발언을 그대로 전하는 뉴스들이 차고 넘친다. 셋째, 신문과 방송 뉴스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가 낮아지면서 인터넷 기반의 소셜플램폼을 통해 정치 정보를 얻는 이들이 빠르게 증가한다. 가령, 유튜브 채널을 통해 정치 정보를 시청한 이가 40%에 달하고 이용률은 연령대별로 유의한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디지털뉴스리포트 2019>). 뿐만아니라 수만명이 팔로우하는 정치인 유튜버들의 극단적 주장에 언론이 주목하고 이를 뉴스로 만들어 포털에 공급한다. 기자의 역할이 권력자 취재원의 평가적 입장을 단순 매개하는 ‘프레임 전달자’에 불과하다.


언론인의 주장대로 “언론이 ‘막말 감별사’는 아니고 판단은 국민의 몫”(중앙일보 6월 12일자 30면 칼럼)인가. 필자는 동의하지 않는다. 취재를 통해 정치인의 프레임을 해석하고 평가하는 적극적인 ‘프레임 설정자’가 될 것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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