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공개청구를 강의하면서 전진한 알권리연구소장이 제자의 ‘정보공개청구’ 사례를 소개했다. ‘서울시 전통시장과 기업형 슈퍼마켓(SSM) 현황’을 알아내고, 조례 개정까지 끌어낸 건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심장이 쿵쾅댔다.
지난달 31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연합뉴스가 삼성그룹 보도자료(지난 2월1일~5월9일 기준)를 기사로 내는 비율이 98.9%라고 밝혔다. 이에 뉴스 도매상이면서 소매상인 국가기간뉴스통신사가 새로운 내용 없이 요약하는 수준으로 기사를 생산하고 있다며 일침을 가했다. 앞서 민언련은 언론사별 삼성 보도자료의 기사화 비율을 보고서로 발표했다. 한국경제 63.4%, 매일경제 59.1%로 경제지들이 높은 수치를 보였다. 보도자료도 ‘정보’를 담고 있다. 사람들이 공공기관이나 기업 홈페이지를 일일이 들여다볼 수는 없다. 이런 불편과 수고를 덜어주는 것은 뉴스통신의 서비스이기도 하다. 그러나 특정 기업이 알리고 싶어 내놓는 보도자료만 ‘토씨’ 정도 바꿔 기사로 보도하는 행태는 ‘발표 저널리즘’에 충실했다는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안 그래도 우리나라는 언론기관이 뉴스 소스인 정부, 기업, 단체 등에 휘둘리는 문제가 심각한데, 연합이 뉴스 소스의 발표를 그대로 전달하는 행위는 국가기간뉴스통신사로서의 임무를 저버린 것이다. 기업 홍보자료가 연합뉴스를 통해 공정한 뉴스로 탈바꿈한다면 심각한 문제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 가짜뉴스까지 섞여 쏟아지는 시대다. 기자도, 독자도 새롭고 의미있는 ‘사실(fact)’에 목말라 있다. 그런 정보를 담은 기사는 파괴력이 크다. 뉴스타파는 국내외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단독보도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전자가 국내에서만 반도체 공장 관련 정보를 ‘영업비밀’로 숨긴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미국 텍사스 주정부에 요청한 삼성 현지공장 관련 정보는 공개됐다. 연합에도 탐사보도팀이 있다고 들었지만 정보공개청구는 모든 기자가 시도해볼 만하다.
기자는 현장을 누비며 사실을 확인하고 소외된 이들의 목소리를 전달한다. 기자 공부를 하며 상상하고 꿈꿔온 일상이다. 그러나 상당수 기자들은 매일 ‘출입처’로 향한다. 힘있는 기관의 홍보담당자들과 지나치게 친해지면 그들의 언론플레이에 말려들 수도 있지 않을까? ‘정보공개청구’는 그럴 염려가 없다, 감추려는 자료를 얻어내는 수단이니까.
미국은 ‘햇빛법’(Sunshine Act)을 시행하고 있다. 의약품 공급업체가 의사나 의료기관에 경제적 이익을 줄 때 지출 내역을 공개하는 법이다. 정보공개제도와 비슷한 맥락이다. 정보를 내주는 일은 분명 번거롭고 꺼려진다. 강제성만 없다면 정보 주체는 피하고 싶을 거다. 해마다 재산 공개로 곤욕을 치르는 국회의원들만 봐도 그렇다. 양지에서 거둬들인 정보도 잘 보도해야겠지만, 그늘진 곳까지 햇빛을 비춰 숨은 정보를 밝혀내고 싶다. 이것이 신뢰의 위기에 처한 한국언론을 살리는 길이라고 믿는다. 그 믿음을 실천하는 기자가 되리라 미리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