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이다. 70대 후반의 한 선생님이 나에게 카카오톡 화면을 보여주며 도움을 요청했다. 자동 업데이트 이후 화면 레이아웃 등이 바뀌면서 사용에 어려움을 겪으셨다. 아이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즉각 이해하는 나에게는 별 것 아닌 일이었다. 몇 번 터치만 하면 되는, 단순하고 사소한 변화. 그러나 선생님은 며칠을 씨름해도 풀 수 없었던 난제. 행사용 플래카드를 손으로 쓰던 시절을 거쳐 PC 통신, 인터넷, 스마트폰 시대까지 겪은 선생님은 매번 새로운 기술을 적절하게 습득해온 분이다. 능숙하게 어플을 다루는 모습은 나에게 노년층에 대한 새로운 인상을 남겼다. 그럼에도 빠르고 잦은 변화는 의욕적으로 배우고 활용하는 선생님마저 미로에 빠뜨렸다.
작년 겨울 할머니 댁에 가서 밀린 AS 접수들을 처리하던 일이 생각났다. 모두 ARS나 인터넷으로만 신청이 가능한 서비스였고, 노년과 중년 인구가 전부인 동네에서는 그 일을 할 사람이 없었다. 나는 이것을 미세한 문지방이라고 부른다. 변화의 단계에서는 필연적으로 지연과 제약이 발생한다. 누군가는 훌쩍 뛰어넘고, 누군가는 부딪치고, 누군가는 기어이 걸려 넘어진다. 이 변화의 문지방은 거름망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계단이 유일한 통행 수단일 때 그 자체로 장애인의 이동권을 침해하듯 말이다.
디지털 기술은 나날이 발전한다. 그 눈부신 속도를 따라잡느라 문지방은 날로 높아지고, 유일한 통로가 된다. 어플로 예약해야 좌석을 확보할 수 있는 기차와 일부 공항 리무진, ARS로만 접수받는 서비스, 어플 주문 시에만 할인되는 홈쇼핑 상품(결국 어플을 사용하지 못하면 더 비싼 값을 치르는), 이 모든 과정에 필요한 인증과 회원가입…. 기존의 방식이나 보완책은 효율과 손익의 이름으로 사라진다. 더 많이 낙오할수록, 따라오는 이들에게는 더 빨리 ‘멋진 신세계’가 열린다. 문지방은 마침내 벽이 된다. 디지털 기술의 활용 여부는 삶의 질과 밀접하게 연결되기에 디지털 소외는 새로운 계급을 형성한다.
크리에이터 박막례님이 패스트푸드점에서 무인 주문기를 사용하는 유튜브 영상 <막례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식당>은 이러한 현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외래어와 작은 글씨는 직관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주문자가 조금만 망설이면 기계는 초기 화면으로 돌아가버린다.
어떤 현상에 기민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사람의 존재는, 대기 시간 설정 단계에서 완전히 지워졌을 것이다. 기계의 높이, 시각적 정보 및 터치로만 주문 가능한 방식 등도 비장애인 중심이다. 무인 주문기의 표준은 우리 사회가 소위 ‘정상’이라고 여기는 제한된 계층에 맞춰져 있다.
박막례님은 손녀의 격려와 응원으로 여러 번 시도하여 겨우 음식을 주문했다. 대부분의 디지털 소외 계층이 이렇게 가족과 같은 사적 임시방편에 의존한다. 어떤 삶을 뭉개버림으로써 매끈해지는 편리함. 변화에 수반되는 문지방이 벽이 아니라 건너가는 다리로 기능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