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 차별서 노동 불평등으로 한 걸음 더… "꾸준히 이야기해야 바뀌죠"

[김성후의 The Journalist] (4) 임아영 경향신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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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아영 경향신문 기자는 4월16일 기자협회보와 인터뷰에서 “현상에서 구조적 문제를 보는 게 저널리즘의 본령”이라며 “복잡한 구조를 세밀하게 드러내는 기사를 많이 쓰고 싶다”고 말했다. /임아영 제공

누구든 살면서 삶의 행로를 바꾸기 마련이다. 휴먼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PD를 꿈꿨던 그는 기자가 됐다. 대학 때 집에서 구독한 신문사 기자가 되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운 좋게도 붙었다. 한 번쯤 이직할 법도 한데 17년을 한 신문사에서 묵묵히 기자생활을 해 나가고 있다.


“기자는 사실확인을 통해 어떤 사안의 뿌리를 들여다보고 겉으로 올라오거든요. 그 작업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매일매일 취재하고 사람 만나고 사회를 끊임없이 구체적으로 인식하고, 기사 쓸 땐 복싱하듯이 가볍게 치다가 세게 치고 물러서는 걸 계속하는 거죠.”


사회부, 정책사회부, 경제부, 뉴콘텐츠팀 등을 다양하게 거쳤고, 젠더데스크 겸 플랫팀장을 맡아 여성의 목소리에 더 주목하고, 올해 2월부터 노동 담당 기자로 한국 노동자의 삶을 바라보는 임아영 경향신문 기자를 16일 만났다.
그는 국문학을 전공한 문학도였고 감성적인 성향이라 기자 초년병 때 적응하느라 애먹었다. 수습 시절 끔찍한 사건들을 취재하면 감정이 올라와 기자 일 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일에 계속 적응해가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어떤 속성이 기자 일에 잘 맞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경향신문 편집국 플랫팀 방에서 후배들과 행사를 준비하고 있는 임아영 기자(오른쪽). /임아영 제공

재개발로 떠난 세입자들 찾아 일일이 전화

그 계기는 ‘열혈 2년차’에 찾아왔다. 2010년 3월 중순부터 경향신문은 우리에게 집은 무엇인가를 화두로 ‘어디 사세요? 주거의 사회학’을 10회에 걸쳐 보도했다. 당시 막내로 특별기획팀(최민영·이주영·김기범·임아영)에 합류한 그는 재개발로 터전을 떠나야 했던 가재울 3구역 상가세입자들을 며칠에 걸쳐 전화를 돌리며 확인했다.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과 북가좌동에 걸쳐 있는 가재울 마을이 뉴타운 사업지역으로 지정된 후 세입자들이 어디로 이동했고, 소득 수준이 얼마나 나빠졌는지 등을 취재하고, 선배들과 넉 달간 현장 곳곳을 돌며 역량을 쌓았다.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여 이야기를 듣는 게 내가 잘하는 일이라는 걸 그 기획을 하며 알았어요. 단건, 단건의 기사도 중요하지만, 구조적 문제를 들여다보는 게 저널리즘의 본령이라는 것도요.”


이 기획으로 이달의 기자상(2010년 5월)을 받았을 때 최민영 기자는 기자협회보에 실은 취재 후기에서 “(임 기자는) 독일 도시계획에 관한 취재가 아이슬란드 화산폭발로 인한 결항으로 무산될 위기에 놓이자 ‘이스탄불까지만 갈 수 있다면 버스나 배를 타서라도 독일로 가겠다’며 열의를 불태워 선배들을 감동시키기도 했다”고 썼다.


특별기획팀 취재는 드러난 현상에서 세상의 구조를 보고, 협업과 소통이 기자 업무의 핵심이라는 걸 배우는 경험이었다. 그런 경험은 연차가 쌓이면서 체화됐고, “주류의 눈에 보이지 않거나 우선순위에서 밀려 잘 논의되지 않은 이슈를 써야겠다”는 생각으로 발현됐다.


2022년 8월에 맡은 소통·젠더데스크는 전환점이 됐다. 경향신문의 모든 기사가 성평등 관점으로 완성되는지 살피고 편집국 내부의 고충 처리 업무를 하면서 끊임없이 젠더 콘텐츠란 무엇인가를 생각했다. 그런 고민이 쌓여 나온 게 2023년 2~3월 보도한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기획이었다.


“저조차 한국의 성별임금격차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에 가입한 원년인 1996년부터 계속 꼴찌인지 몰랐어요. 근데 생각해보니 늘 꼴찌였을 것 같더라고요. 노동시장의 성별 격차가 크니까요. 정부는 이에 대해 남녀가 종사하는 직무가 다르고 여성의 경력단절로 임금 차이가 난다고 해석해요. 그런데 그렇게 단순하게 볼 수 없다 생각했어요. 같은 직장에서도 임금격차가 나니까요. 좀 더 구체적으로 들여다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경향신문이 2023년 2~3월 보도한 ‘27년 꼴찌, 성별임금격차’. 임아영 기자가 팀장으로 참여한 특별기획팀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별임금격차의 구조적 원인을 분석하고자 했다. /임아영 제공

성별임금격차는 모든 차별의 총합

그는 성별임금격차의 원인을 찾기 위해 각종 자료를 뒤졌다. 우연히 350개 공공기관이 채용 면접 성비·최종 합격자 성비 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된 후 국회 13개 상임위원회를 통해 2019~2022년 4년간의 채용 데이터를 입수했다. 그는 데이터저널리즘팀에 협업을 제안하고 특별기획팀(임아영·황경상·배문규·이수민·박채움·조형국·이아름·유선희)을 꾸려 데이터를 기반으로 성별임금격차의 구조적 원인을 파고들었다.


특별기획팀은 △공공기관 신입사원 채용이 공정한지 △고임금 업종에서 여성을 찾기 힘든 이유 △보직 차별이 승진 차별로 이어지는 구조 △저임금에 머무는 여성 노동자 실상과 경력단절 이후 저임금이 되는 구조를 짚고, 대안으로 성별 임금공시 제도를 제안했다. 특히 1000명 이상 민간기업과 공공기관·지방 공기업 등 965개사의 남녀 직원 수, 직급별 임금격차, 근속연수 차이, 해당 사업장이 분석한 임금격차 원인 등을 확인할 수 있는 ‘성별 임금공시 인터랙티브 페이지’를 만들어 공개했다.


그는 석 달간 기획취재를 하면서 성별임금격차는 입직부터 퇴직까지 벌어지는 모든 차별의 총합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취재 과정에서 만난 국회 한 여성 보좌직원의 말을 늘 가슴에 담고 있다. “핀란드는 성평등 수준이 세계 상위권인데도 여성들이 차별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해요.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었더니 핀란드 여성이 답했대요. ‘꾸준히 이야기해야 바뀐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요.”


경향신문 여성 서사 아카이브 채널 ‘플랫(flat)’은 2020년 3월8일 출범했다. 여성의 서사와 목소리를 중심에 두고 취재하는 버티컬 채널이었다. 그는 플랫이 여성의 목소리를 더 담고 독자에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방법을 찾기로 했다. 젠더데스크와 플랫 채널은 연결될 수밖에 없는 지점들이 있었고, 2030 여성을 타깃으로 한 채널의 독자들이 실제 미디어에 무엇을 원하는지 궁금했다. 플랫 독자 대상 포커스그룹 인터뷰(FGI)를 하기로 했다. 인터뷰를 토대로 플랫 독자들이 무엇을 바라는지 등을 담은 보고서를 만들어 보고했고 내부 논의를 거쳐 플랫은 팀장 포함해 3명으로 구성된 별도 조직으로 2023년 9월 새로 출발했다. 플랫팀장은 젠더데스크인 그가 겸임했다.


플랫팀은 그해 12월 ‘입주자’(플랫 독자)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엄마 성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성평등을 근거로 법원에 성·본 변경 청구를 하는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였다. 플랫 입주자 김준영 그림책 작가의 제안을 플랫팀이 받아 관련 기사를 쓰고 세미나도 열면서 청구 신청을 받았다. 최종 신청자는 137명이었다. 엄마 성을 쓰고자 하는 40여명이 지난해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전국 가정법원에 성·본 변경을 청구했다.


임아영 기자는 ‘엄마 성 빛내기 프로젝트’를 통해 독자와 기자들이 함께 뭔가를 해볼 수 있다는 걸 알았고, 위로도 받았다고 말했다. “내가 누구를 향해서 기사를 쓰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기자들이 많이 하잖아요. 악성 댓글에 달린 피드백을 보면서 상처받을 때도 많구요. 그런데 플랫은 2030세대 여성이라는 명확한 타깃 독자가 있고, 충성 독자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플랫폼이라 고마움을 느낄 때가 많았어요. 오히려 기자들이 용기를 얻었어요.”

젠더는 더 이상 부수적 이슈 아냐

플랫팀은 20·30대 정규직·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13명을 FGI 방식으로 취재한 ‘우선 나로 살기로 했다’(임아영·이아름·김정화·유선희·박채움·김세정-2024년 3월), 5·18민주화운동 당시 자행된 성폭력을 여성 피해자 입장에서 증언하고 기록한 ‘우리는 서로의 증언자’(임아영·이아름·김정화·고귀한-2024년 5월), 교제폭력에 희생된 여성 피해자들을 조명한 ‘더 이상 한 명도 잃을 수 없다’(임아영·김정화·이아름-2024년 9월) 등 젠더 관련 기획을 꾸준히 냈다.


임 기자는 젠더데스크를 하면서 ‘젠더 콘텐츠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고 했다. 그에 대한 답을 찾았을까. “젠더 기사라는 틀은 따로 없어요. 기존의 남성 중심적인 언론에서 보던 것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는 언론이 천착할 젠더 의제로 젠더 폭력,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 정치적 대표성 확대 등 크게 3가지를 꼽았다.


“언론에서 이런 의제를 안 다뤘냐. 간간이 다뤘는데 부수적이었죠. 이제는 부수적인 이슈로 다룰 수가 없어요. 2023년 여성 경제활동 인구가 1200만명을 넘어요. 여성 고용률이 50%를 찍은 것도 2015년이에요.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남성을 앞지른 건 2005년이구요. 굉장히 오래됐어요. 그런데도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지위는 여전히 남성의 하부구조이고, 국회의 여성 의원 비율도 20% 수준에 불과합니다. 이제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는 교조적으로 젠더 이슈를 바라보는 걸 경계했다고 했다. “젠더를 보려면 계급을 봐야 하고, 계급을 볼 때도 젠더를 봐야 한다”면서 “복잡다단한 젠더 이슈를 언론에서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경험한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임 기자는 육아 이야기 ‘이런 줄도 모르고 엄마가 됐다’(2018년, 생각의힘), 부부 공동육아 에세이 ‘아빠가 육아휴직을 결정했다’(2020년, 북하우스)를 펴냈다. “단순히 육아가 힘들다고 말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사회가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보는 세상으로 가는 게 시급하다고 말하고 싶었어요. 인구 소멸을 막기 위해서도, 지금 살고 있는 사람들이 평등하게 살기 위해서도요. 부부의 평등육아와 평등노동이 왜 중요한지 정치권에서 전혀 이해하지 못해서 책을 썼습니다.”


지금은 젠더 기획 ‘더 이상 한 명도 잃을 수 없다’를 책으로 엮는 제안을 받아 원고 수정 작업을 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후배들과 저널리즘적으로 의미 있는 작업을 해서 책으로 내고, 4년 전 돌아가신 엄마에 대해 기록하고 싶다는 소망도 있다. “능력이 있어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힘들게 살아간 엄마 세대의 노력을 기록하는 게 딸로서, 후세대로서 갖고 있는 소망”이라고 했다.

지난해 10월 정동길에서 열린 정동문화축제에서 임아영 기자(오른쪽)와 플랫팀원들이 부스를 차려 플랫과 플랫에서 쓴 기사들을 홍보하고 있다. /임아영 제공

노동 담당 기자로 보는 한국 사회

임 기자는 2월 중순부터 노동 담당 기자로 일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전날인 4월15일 울산에 내려가 조선소 이주노동자들을 인터뷰했다. 최근 몇 년 사이 조선업계에 이주노동자가 많이 늘어났는데, 그 이유를 들여다보고 싶었다.


그는 취재를 통해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면서 하청업체 내국인 노동자들은 저임금이 고착화되고, 이주노동자 중 10% 정도가 계약이 해지돼 미등록 이주민이 될 위험에 처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복잡한 구조는 풀지 않고 이주노동자를 값싸게 들여와서 해결하려는 정책의 실패는 필리핀 가사도우미 사업과 맥락이 닿아 있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해 필리핀 가사도우미를 도입하겠다면서 서울시와 노동부가 많은 반대 끝에 사업을 시작했지만 사실상 실패했죠. 우리는 ILO(국제노동기구) 협약국인데도 끊임없이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줄 수 없냐고 보수언론, 국민의힘에서 계속 주장했습니다.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많은 방법들에 눈을 감고 돌봄노동을 저임금화하려는 시도가 참 답답했는데, 조선업도 비슷한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보기에 한국 사회는 빨리 성장한 만큼 문제가 복잡하게 꼬여 있고, 그를 풀어낼 사회적 토론이나 정치적 역량은 부족하다. 그래서 복잡한 사안을 최대한 드러내고 풀어갈 지점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믿는다.


“복잡한 구조를 세밀하게 드러내는 기사를 많이 쓰고 싶습니다. 젠더 만큼 노동 이슈도 오래 해결되지 않은 채, 정치권에서 견인이 안되는 의제들이 많은데요. 그럼에도 그 의제들을 끊임없이 다루고 현실 정치가 견인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하는 게 언론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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