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상 8번 받은 '평범한' 기자… "절박하게 취재하면 길 보여"

[김성후의 The Journalist] (2) 유대근 한국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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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서울 영등포 한 카페에서 만나 유대근 한국일보 기자는 “어떤 사안이든 절박하게 취재하면 길이 보인다”며 “좋은 기사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믿음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성후 선임기자

아침 9시30분에 만나기로 했는데, 인터뷰 장소인 카페가 좁은 것 같다며 10m 정도 떨어진 다른 곳에서 보면 어떻겠냐는 메시지가 왔다. 약속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도착해 장소를 알아본 모양이었다. 벌써 오셨냐는 물음에 아침 발제를 하려고 일찍 나왔다고 했다.


기다리겠다 싶어 서둘러 영등포 한 카페로 나갔더니 통화하고 있었다. 발제가 아직 끝나지 않은 듯 노트북 화면에 집중하며 자판을 두드리는 그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키오스크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섰는데 눈이 마주쳤다. 13일 유대근 한국일보 기자가 눈인사를 보내왔다.


“상복이 터지셨더군요.” 자리에 앉자마자 최근 한국기자상 수상 소식 얘기를 꺼냈다. 한국기자협회는 10일 제56회 한국기자상 경제보도부문 수상작으로 ‘서민금융기관의 민낯: 새마을금고의 배신’을 선정했다. 유 기자는 정민승·진달래·박준석·원다라·송주용 기자와 함께 수상자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 12월 ‘무너진 교실: 딥페이크 그 후’ 취재 당시 딥페이크 범행을 저지른 10대 면면을 살펴보기 위해 관련 학교폭력조치결정 통보서와 판결문 등을 분석하는 모습. 왼쪽부터 당시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유대근·원다라·진달래 기자. 탐사보도를 할 때마다 수백, 수천 장의 문서를 일일이 보고 분석하는 고단한 작업을 한다. /유대근 제공

유 기자의 한국기자상 수상은 2018년 2월(제49회) ‘2017 대한민국 과로리포트-누가 김부장을 죽였나’에 이어 두 번째다. 당시 서울신문 기자로 시상식에 참석해 “또 욕심이 난다. 진정성 있게 취재하고 겁 없이 보도해서 이 자리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는데 7년 만에 현실이 됐다.


유 기자는 자신이 특별한 기자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평이한 사람이자 기자로서 평범하다고 했다. 솔직히 글발이 뛰어난 기자도 아니고, 내향형이라 사람 관계도 서툴고, 취재원과 두고두고 연락하며 지내지도 못한다고 했다.


그런 기자가 최근 1년 6개월 사이 이달의 기자상을 모두 5번 받았다고? “운이 좋았어요. 저는 혼자 쓴 기사로 상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모두 팀으로 받았어요. ‘팀복’(team福)이 있는 편인 것 같아요.” 유 기자는 이달의 기자상을 지금까지 8번 받았다.


그가 한국일보 동료들과 기자상을 받은 보도는 ‘오버투어리즘의 습격’(2023년 8월), ‘K스포츠의 추락, J스포츠의 부상’(2023년 11월), ‘서민금융기관의 민낯: 새마을금고의 배신’(2024년 1월), ‘산 자들의 10년’(2024년 4월), ‘추적: 지옥이 된 바다’(2024년 8월) 등이다.


취재에만 두세 달을 쏟아부은 탐사보도물로 과잉 관광 실태, 엘리트 중심의 한국 스포츠 문제, 새마을금고 실태, 세월호 참사 이야기, 해양 쓰레기 등 소재도 다양하다. 그의 말대로 팀복이 있었음이 분명하지만 “성실하고 엉덩이가 무겁고” “어떤 사안이든 절박감을 가지고 취재”하는 남다른 노력과 발품을 빼놓을 수 없으리라.

지난해 7월 해양 쓰레기 문제의 심각성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7박8일 간 승선했던 트롤 어선 ‘607 영진호’ 갑판에서 촬영한 모습. 해풍이 강해 서 있기 힘들 때가 많았다. /유대근 제공


◇선주들 “태워줘도 못 탈 텐데…”
그는 지난해 여름 제주시 서귀포에서 남서쪽으로 68km 떨어진 바다에 있었다. 138톤급 저층 트롤(저인망) 어선인 ‘607 영진호’에 승선해 7박8일 조업을 도우며 쓰레기로 오염된 바다 상황을 취재했다.


해양 쓰레기 실태를 발제할 때 강철원 당시 엑설런스랩장은 조심스럽게 배를 타는 건 어떠냐고 했다. 주저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었다. 쓰레기로 가득 찬 바다를 보여주려면 최대한 바다 가까이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기를 잡아본 경험이라곤 한겨울 빙어축제에 가본 게 전부인 그가 나섰다.


어선 섭외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그럴만했다. 외부인을 태우고 조업을 나간다는 게 선주와 선장, 선원들 입장에서 큰 부담이었다. 사고가 날 염려도 있었고 뱃사람들은 뭍사람, 특히 험한 일을 겪지 않은 얼굴의 유 기자가 미덥지 않았다. 배 섭외하려고 선주 모임에 가면 다들 그랬다. “태워줘도 못 탈 텐데….”


배 섭외에만 거의 두 달을 썼다. 여러 선주들에게 수차례 퇴짜 맞고 어렵게 배를 얻어탔다. 해양 쓰레기 실태를 알려야 한다는 데 동의해 승선을 허락해준 선주가 있었다. 2024년 7월3일 ‘607 영진호’에 올라탔다.


“멀미가 너무 고통스러웠습니다. 해풍이 강해 서 있기도 힘들었어요. 취재 환경도 열악했죠. 배가 너무 흔들려 노트북에 기록하기 어려워 핸드폰으로 키워드 중심으로 짧게 짧게 정리했어요. 선원들 대부분이 인도네시아 사람들이라 말도 안 통했죠. 최대한 카메라로 촬영해 그때그때 상황과 감상을 기록해뒀어요.”

그는 ‘현장에 가고 싶어 기자가 된 건데, 별거 아니다’라고 자기 최면을 걸며 8일간, 166시간을 버텼다. ‘607 영진호’ 탑승기는 8월12일 ‘추적: 지옥이 된 바다’ 시리즈 첫 회(황금어장 출항한 새우잡이배…‘쓰레기 만선’으로 돌아왔다)에 실렸다. 그는 “그물을 끌어 올려 갑판 위에 탈탈 털면 거대한 쓰레기 더미가 쏟아진다”며 “‘물 반, 쓰레기 반’이라는 표현이 과장이 아니었다. 쓰레기 더미 속에서 고기를 건진다는 표현이 정확할 정도”라고 했다.

◇면접 떨어지자 편집국장에 이메일
유 기자는 얼마 전 부모님 댁에서 초등학교 5학년 일기장을 발견했다. 거기에 그렇게 씌어 있었다. “나중에 커서 기자가 되고 싶다.” 기자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힌 극적인 사건이 있거나 주변에 기자 일을 하는 어른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어려서부터 신문 읽기를 좋아하고, 공익적인 일을 하고 싶은 그에게 기자라는 직업이 시나브로 스며들었을 수도 있다.


대학 4학년 때부터 기자 시험을 쳤는데 떨어지고 또 떨어졌다. 카메라 테스트에서 탈락하고, 최종 면접까지 갔다가 낙방하길 여러 차례. 하도 막막했던지 카톨릭 신자인 그가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타로점을 봤다. 한 주간지 최종 면접에서 탈락하고 편집국장한테 떨어진 이유를 이메일로 물었다.


“취업준비생들이 다 그렇겠지만 그때는 정말 절박했어요. 기자 일이 그만큼 하고 싶었거든요.” 항의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한 점을 듣고 싶어 메일을 보냈다. 왠지 그 언론사라면 답을 해줄 것도 같았다. 실제로 답이 왔다. 말을 돌려서 했지만 평이하다는 취지의 얘기였다. 부족한 점이 명확해지자 그 부분을 보완하려고 애썼다.


졸업하고 대학교 앞 고시원에서 6개월을 먹고 자며 공부했다. 언론사 외엔 아예 입사지원서도 내지 않았다. 절박감이 통했을까. 2008년 7월 서울신문에 합격했다. 가고 싶은 언론사가 있어 입사를 포기하고 시험을 볼까 고민했다. 동아일보 대학생 인턴기자 시절 만났던 형이 그랬다.


“대근아, 너는 무조건 기자를 하고 싶어 하잖아. 다른 언론사 시험에 합격한다는 보장이 있냐. 그리고 거기 떨어지면 기자 포기하고 기업으로 갈 거야? 나처럼 어디든 가겠다는 마인드는 아니잖아….” ‘기업 갈 거냐’라는 물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한 달 후 서울신문에 입사해 14년간 일했다.

지난해 12월26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언론상 시상식. 한국일보 엑설런스랩 세월호 10주기 특별기획 ‘산 자들의 10년’은 저널리즘 혁신 부문을 수상했다. /유대근 제공

기자 생활을 하다 보면 고비가 있기 마련이다. 일이 고되고 적성에 안 맞는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큰 사건을 치르면 ‘번아웃’이 온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때 그랬다. 몸도, 마음도 지쳤고 무엇보다 무기력감이 컸다. 믿고 의지하던 동료들이 언론계를 떠날 때는 주체할 수 없이 흔들렸다.


“다들 전직을 하는 데 나만 바보 아닌가” 하는 불안감에 “나이가 들수록 이 길을 계속 걷는 게 맞나”라는 생각이 똬리를 틀었다. 그럼에도 18년째 기자를 계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기자 생활의 괴로움을 견뎌내고 그럭저럭 괜찮은 기사를 써내거나 숨어있던 팩트를 찾았을 때 쾌감을 잊지 못하는 거죠. 기사 하나가 세상을 크게 바꾸지 못한다는 건 깨달은 지 오래됐지만 그래도 좋은 기사는 세상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요.”

◇기자 인생 바꾼 계기 ‘IRE 총회’
2014년 6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전미 탐사보도협회(IRE·Investi gative Reporters and Editors) 총회는 그의 기자 인생을 바꿨다. 발생 기사 쓰고, 기획이라야 하루 단위나 상중하 3회 정도로 마감하며 관성적으로 일했다는 그는 선배 권유로 한국언론진흥재단 ‘탐사보도 디플로마’에 참여하며 탐사보도에 눈을 떴다.


IRE 총회에서 미국 탐사 저널리스트들이 발표한 탐사보도 사례들에 꽂혔다.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도 그때 처음 알았다. “영어에 능통하지 못해 다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기자들이 취재 뒷얘기와 노하우 등을 상세히 설명해주는데 가슴이 쿵쾅쿵쾅 뛰는 거예요. 끝까지 파헤치는 저돌성이 인상적이었고, 취재방법론도 혁신적이었어요. 나도 저런 기사를 쓰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는 IRE 총회를 다녀온 후 데이터 저널리즘과 탐사보도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며 기회가 닿는 대로 외국 언론사의 관련 보도를 찾아봤다. 특별취재팀원으로 참여했던 고위공직자들의 병역이행 내역을 전수조사한 ‘대한민국 노블레스 오블리주’(2015년 7월)로 탐사보도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였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경험을 쌓아갔다.


그가 기억에 남는 보도 중 하나로 꼽은 ‘2017 대한민국 과로리포트-누가 김부장을 죽였나’는 서울신문 사회부 교육팀에 있을 때 쓴 기사다. 노동 문제에 관심 있는 젊은 기자들(김헌주·이범수·홍인기·오세진 기자)에게 노동자 과로 기획을 제안했고, 의기투합해 4개월간 매달렸다. 데일리 업무를 계속하면서 주말에 주로 취재해 7회에 걸쳐 26편의 기사를 냈다. “자기 자신을 쥐어짜는 방식이라 힘들었지만 비슷한 연차의 기자들이 모여 공부하듯 취재해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유대근 기자는 2022년 11월 한국일보로 옮겼다. 서울신문 대주주가 호반건설로 바뀌고 내홍이 일어나면서 허리 연차 기자들이 대거 떠나던 무렵이었다. 아예 기자 일을 관둘까도 고민했지만, 기자에 대한 미련이 남았다. 마음을 곧추세우고 다시 시작하고 싶어 한국일보 경력기자 공개채용에 지원했다.


그는 한국일보 정치부 외교안보팀을 거쳐 2023년 7월 엑설런스랩 기획유닛팀 팀장을 맡았다. 기획유닛팀은 취재부서와 협업하는 콘셉트로, 데일리 기자가 아이템을 제안하면 기획유닛팀원들과 그 기자가 협업해 심층 취재하는 모델이다. 그는 팀장 발령을 받고 한겨레 류이근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10년 전쯤 한겨레 경제부가 ‘기획탐사 유닛’을 운영했다는 기자협회보 기사를 봤는데, 류 기자는 당시 탐사역 기자였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류 기자는 기꺼이 도움을 줬다.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를 따로 정리한 A4 용지 서너 장을 건네며 점심도 사줬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타 언론사 기자에게 물어본다는 거 자체가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안다. 절박해서 나에게 메일을 보냈는데, 꼭 만나보고 싶었다.”


유 기자는 기획유닛팀을 운영하며 취재부서 기자들과 다양하게 협업했다. ‘K스포츠의 추락…’은 김지섭 스포츠부 기자, ‘서민금융기관의 민낯…’은 정민승 지역사회부 기자, ‘산 자들의 10년’은 사회부 사건팀 기자들, 해양 쓰레기 문제를 다룬 ‘지옥이 된 바다’는 허경주 하노이 특파원, 조영빈 베이징 특파원이 참여했다. 지난해 12월엔 어린 피해자와 가해자가 유독 많은 국내외 딥페이크 사건 그 후를 코리아타임스와 공조해 3개월간 쫓았다.

난해 8월 열린 저널리즘클럽Q 소모임 ‘이달의 기자상 리뷰 모임’에서 유대근 기자가 ‘서민금융기관의 민낯: 새마을금고의 배신’ 보도 후기를 발표하고 있다. /유대근 제공

◇세월호 기획 기사 작성에만 한 달
그는 장기 기획을 할 때 아이템에 몰입하려 한다고 말했다. ‘간절하면 통한다’는 말은 미신 같지만 이 사안을 꼭 제대로 알아봐야겠다는 절박감을 가지고 취재하면 어떻게든 답이 돌아온다고 그는 믿는다.


모든 보도가 그렇지만 특히 탐사기획은 기자의 고달픔과 취재 과정의 어려움, 고된 노동이 따른다. 주소지 하나만 들고 무작정 사람을 찾고, 만나더라도 문전박대를 당하고, 수천 장의 문서와 씨름하고, 독자의 몰입도를 높이려면 기사 작성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 세월호 10주기 특별기획 ‘산 자들의 10년’은 일반 기사 형태가 아니라 소설 작법으로 풀어 써 전달력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기사 작성에 한 달가량이 걸렸다.


그는 팀원들과 함께 김봄 작가, 박재영 고려대 교수 등을 만나 글쓰기에 대해 조언을 듣고 작법서도 사서 읽어봤다. “기사 집필이 끝나면 팀원들끼리 돌려 읽고, 예비 독자인 주변의 일반인들에게 피드백을 받았어요. 그런 과정을 3~4번 거쳤습니다. 이런 경험 덕에 이후 ‘지옥이 된 바다’ 시리즈를 쓸 때도 기사 작성에 좀 더 많은 시간을 들였죠.”


유 기자는 1~10년차 기자들 모임인 ‘저널리즘클럽Q’ 산파역을 했다. 2022년 11월 창립한 이 모임의 회장을 맡아 △월례 세미나 18회 △소모임(이달의 기자상 리뷰 모임, 해외보도 연구회, 내러티브 기사 쓰기 모임) 활동 △Q저널리즘상 제정 △멘토링 사업 등을 벌였다. 설립 당시 50여명이던 회원이 130명으로 늘었다.


그는 저널리즘클럽Q에 대해 “정서적인 아지트 같은 모임”이라고 했다. “젊은 기자들이 모여 어떻게 하면 본업을 잘할 수 있을지 이야기하고, 서로 고민을 털어놓고, 답을 찾아보는 곳. 딱 떨어지는 답은 찾지 못하더라도 ‘아, 그래도 나랑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구나’ 싶어 위안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창립 주역 중 한 명인 박동해 뉴스1 기자가 그의 뒤를 이어 저널리즘클럽Q를 이끌고 있다.


유 기자는 올해부터 사회정책부에서 교육부를 출입하고 있다. 18년째 기자를 하는 그의 시선은 교육 문제에 닿아 있다. “아직도 제 마음속에 로망 같은 게 있어요. 기자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맨바닥에 앉아서 타이핑 치거나 옛날로 치면 수첩에 적는 거잖아요. 기자로서의 목표를 물어보셨는데,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하나가 50살이 되든 60살이 되든 맨바닥에 앉아서 타이핑 칠 수 있는 그런 정신을 잃지 않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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