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딩 배우고 프로그램 개발·활용… AI 시대, 업무방식 바꾸는 기자들

[트렌드] SBS·영남일보·한국일보·한겨레 기자들 사례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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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말 챗GPT 출시 후 언론계 역시 인공지능(AI)의 파고에 흔들렸다. 언론사 차원에서 AI 활용 보도, 툴 개발, AI 기업과 협업 등이 잇따랐다. 다만 이런 시도들이 기자 업무의 일상을 바꾸는 변화까지 이어지진 못한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업무에 적극 AI를 도입, 활용해 업무 효율성을 높인 어떤 기자들의 사례를 참고할 만하다. 일상을 바꾸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혁신이란 점에서 그렇다.

외신 AI 번역 라이브 스트리밍 도입한 방송사 기자

임태우 SBS 디지털뉴스편집부 기자는 2~3주 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라이브 연설에 AI가 자동으로 한글 자막을 붙여주는 번역 서비스를 선보였다. SBS뉴스 유튜브 채널 라이브 스트리밍을 담당하는 기자는 최근 외신 수요가 커진 상황에서 “아직 사람에 비해 번역 품질이 좀 떨어지지만 급하게 궁금증을 풀어주는” 방법으로 AI를 떠올렸다. 챗GPT와 클로드의 API를 가져와 회사에 없던 서비스를 라이브 스트리밍에 도입했다. 최근 나토(NATO)에서 한국 무기 칭찬을 한 폴란드 대통령의 연설에도 써봤다.

SBS뉴스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에 AI 번역을 사용해 한글 자막을 붙인 모습.


임 기자는 “예전이라면 통역사 섭외부터 해야 하는데 모든 과정을 혼자 했다. 1시간에 1달러 정도가 드는데 시간과 비용을 확연히 줄인 결과”라며 “폴란드어도 무리 없이 잘 번역이 돼 영어권 아닌 인터뷰도 금세 가능하겠다 싶었다. 최근 유튜브 외신 자막은 모두 AI로 작업했는데 몇몇 방송사에서 실시간 번역 등을 선보이며 경쟁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경쟁사의 라이브 스트리밍을 모니터링하는 툴도 직접 만들어 사용 중이다. 툴은 매시간 지상파와 종편 등의 유튜브 라이브 채널 동시 시청자 수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알려준다. 과거 경제부에선 국내 현안과 관련된 해외 사례, 연구 등을 찾는 데 퍼플렉시티를 적극 활용, 취재파일 <배달로 팔면 남는 게 없는 이유>, <서울대생 지역 할당이 ‘강남 집값’ 해결할까?> 등을 쓰기도 했다. 숫자, 표와 긴밀한 부서라면 통계 시각화, 재무제표 분석 등 일상적 활용이 가능하다고 그는 설명한다.


부서를 넘어 편집·보도국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관심 있을 시도도 여럿 있었다. 포털 [단독] 기사 목록을 알려주는 앱을 구축해 ‘물 먹을까 걱정하는’ 동료들에게 공유하고, AI에 언론중재법을 학습시켜 민감한 기사의 법률 검토를 시켜본 건 대표적이다. 임 기자는 “라이브를 자동으로 열고 닫아주는 서비스, 손쉬운 영상편집 툴 등 자잘한 업무도구를 만들어가며 쓰고 있고 AI로 1인분 이상 일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제 노동 일부를 자동화하는 데 많이 할애한다. 기초 코딩만 알면 정말 많은 걸 할 수 있고, 활용 여지가 무궁무진해진다”고 말했다.

경쟁 방송사 유튜브 채널의 시간대별 라이브 시청자 수 등을 확인할 수 있는 툴. 임태우 SBS 기자가 직접 개발해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

AI 콘텐츠 실험 중인 지역신문사 기자

손선우 영남일보 디지털콘텐츠팀 기자는 2월27일 <80년 전, 3·1운동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란 콘텐츠를 선보였다. 삼일절을 맞아 조명되지 못했던 인물, 민초의 모습을 담고 기억을 촉구하는 영상은 AI를 활용해 만들어졌다. 텍스트를 곧장 비디오로 만들어주는 기술은 아직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서 이미지FX, 미드저니를 통해 상상 속 민초 이미지를 먼저 만들고, 클링AI(kling)를 써서 동영상으로 만들었다. 영상에 쓸 음악도 뮤버트(mubert)란 AI를 써서 직접 작곡했다.


손 기자는 “과거 국채보상운동 관련 AI 영상을 만드는 데 2주 정도가 걸렸는데 이번엔 혼자서 이틀 간 6시간 정도를 썼다”며 “퀄리티는 낮지만 영상으로 표현하고 싶던 걸 표현할 수 있었고 스스로 AI 경험치가 올라갔다고 실감한 기회였다”고 말했다.

손선우 영남일보 기자가 지난 2월 말 삼일절을 맞아 제작한 AI 영상 <80년전, 3.1운동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


디지털 분야 사업구상, 사내 AI 교육 등 역할을 맡아 현재 비(非)취재부서에서 일하는 기자는 본업과 별도로 AI로 만들 수 있는 콘텐츠를 지속 테스트해왔다. 포털에서 특정 영화에 대한 관람평과 별점을 가져와 챗GPT, 딥시크로 분석하고 긍정 또는 부정평가한 이유를 다룬 기사 등이 대표적이다. 시즌 중 프로구단 성적 데이터를 바탕으로 최종 결과를 예측하거나 명절, 기념일에 맞춰 AI 이미지를 선보이는 시도도 해왔다.


손 기자는 “전문기자나 평론가들의 영화평이 대중 평가와는 엇갈릴 때가 있는데 댓글 저널리즘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려 일반의 평을 통해 영화를 설명하면 어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며 “직접 평을 모았으면 오래 걸릴 작업을 손쉽게 했지만 처음 프롬프트를 만들고 고칠 땐 상당 시간을 썼다”고 했다.


업무에 AI를 활용하는 덴 ‘프롬프트’ 작성이 핵심이다. ‘인터뷰 질문지 작성요청’ 같은 기초 형태부터 시각화 요구, 거대 데이터 분석까지, 시작은 기계에게 명확히 명령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손 기자는 “기자들이 습득한 정보를 정형, 비정형 데이터로 구분했을 때 어떤 사안의 뒷얘기 같은 비정형 데이터는 기자 강점으로 남을 수 있다. 다만 프롬프트를 잘 만들어두면 노동집약적인 일을 더는 데 AI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다”며 “이미 프롬프트 거래시장이 생겼는데 언론사에서도 판매가 가능하겠구나 생각도 해봤다”고 했다.

AI로 제작 가능한 여러 콘텐츠를 실험 중인 손 기자는 포털 영화 관람평, 평점 등을 수집, 챗GPT 등을 통해 일반인의 평에 기초한 영화 기사도 선보이고 있다. 사진은 외부 AI 강연 등에서 손 기자가 소개했던 해당 기사 관련 데이터 분석 프롬프트.

포털 랭킹뉴스 모니터링 툴, 국회 의사중계 속기 AI... 일선기자부터 데스크까지

최진주 한국일보 국제부장은 이슈365부장으로 있던 지난 2월 칼럼을 통해 생성형 AI로 코딩한 경험을 공개했다. 온라인 화제 이슈를 기사화하는 부서장으로서 포털 내 언론사 수십 개의 랭킹뉴스를 수시로, 또 일일이 훑어야 했는데 여기 드는 시간을 줄이고자 했다. “내용을 자동으로 분석해 여러 매체가 동시에 보도한 주제별로 묶어 보여주는 프로그램을 만들면 편리하겠다는 생각”이었다. 업무 중 휴게 시간을 활용해 파이썬 기반 첫 프로그램을 짜는 데 하루, 에러 수정에 나흘 가량이 걸렸다.


최 부장은 칼럼에 “20여 년 전 C프로그래밍 기초와 html/css 코딩을 배운 정도의 지식밖에 없었지만” “잠깐씩 클로드와 대화한 것만으로 원하던 프로그램이 완성됐다”고 적었다. “프로그램은 지금도 나뿐 아니라 부서원들이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고도 했다.


지난해 8월 한국기자협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기자협회보가 진행한 기자 대상 여론조사에서 약 20%가 생성형 AI를 업무에 활용하고 있다고 답한 바 있다. ‘국제부’(40.0%)와 ‘소셜미디어/디지털뉴스부’(37.7%)에선 활용 빈도가 가장 많았다. 이미 AI 활용 면에서 기자 간 역량이나 이해도 차이가 상당히 벌어지는 모습도 보인다. 다만 AI를 업무에 도입한 기자들은 ‘일을 쉽게 한다’거나 ‘기사를 믿을 수 있냐’는 시선이 사내외에서 상당하다고 말한다. 일리 있는 우려지만 이는 공유될만한 경험이 확산되지 못하는 토양이 된다는 점에서 언론사의 고민이 필요하다.


미진한 수준이지만 AI가 ‘서서히’ 그리고 ‘확실히’ 현업 부서에 들어오는 현실은 분명하다. 이우연 한겨레 노동·교육팀 기자는 브레인스토밍, 취재자료 요약이나 피드백 등 기사 출고 과정 전반에서 AI를 적극 활용하는 쪽에 속한다. 과거 정치부 근무 땐 정치인의 유튜브 발언을 스크리닝 하며 AI를 사용했고, 국회 상임위 취재 시 관료, 국회의원의 워딩을 자동으로 기록해주는 도구를 만들어 쓰기도 했다.


이 기자는 “상임위에선 워딩 치는 게 제일 번거롭다보니 아는 기자가 그런 발언들이 사라지지 않고 자막형태로 쌓이는 사이트를 운영했었다. 중단되며 이용을 못하다가 생성형 AI로 일부 명령어를 검색하고 매만졌더니 작동이 돼서 잘 사용하고 주변에 공유도 했었다. 워딩 노동, 단순 작업의 수고와 시간을 줄인다는 게 무엇보다 장점으로 다가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얼마 전 회사가 AI가 생성한 이미지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했는데 그 자체론 바람직하지만 그 외 구체적인 활용 방식 등 나머지는 다 기자가 다 알아서 해야 한다. 관련 특강이나 교육이 더 많이 진행돼 일단 언론사에서 쓰는 사람이 많아져야 더 좋은 문제의식, 가이드가 나올 수 있으리라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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