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나올 수 없었다"... "윤석열 탄핵해! 탄핵해!"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촛불집회 현장]
탄핵 1차 관문 넘었지만 치러야 하는 후과 많아
언론 향한 다양한 목소리… "헌재 판결까지 제 역할 해달라"
“대통령 윤석열 탄핵소추안은 총 투표수 300표 중 가 204표, 부 85표, 기권 3표, 무효 8표로써 가결됐음을 선포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14일 오후 5시 본회의장에서 이 같이 선언했다.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일대가 술렁이며 “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이날 오후 2~3시쯤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과 여의도공원 사이 모든 도로, 정원, 약간의 빈 공간은 전부 시민들로 가득 찼다. 국회 쪽으론 더 나아갈 수 없는 상태. “윤석열을 탄핵하라!”, “탄핵소추 가결하라!”를 외치던 시민들은 표결 결과가 집계되기 전까지 “떨린다”, “우주의 기운을 모은다”, “이게 말이 되냐”며 긴장하다 우 의장의 말이 끝나는 순간 박수를 치고 환호성을 터뜨렸다. 부둥켜 안았다.
잠시 후 집회 현장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를 통해 이젠 분명한 투쟁가(?) ‘다시 만난 세계’가 흘러 나왔다. 20대로 보이는 여성 수십, 아니 수백 명이 야광봉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수많은 알 수 없는 길 속에 희미한 빛을 난 쫓아가. 언제까지라도 함께 하는 거야. 다시 만난 나의 세계.” 노래는 주변에 전염됐다. 이날 여의도를 찾은 이재심(57, 서울 서초), 김희원(57)씨는 “오늘 안 나온다는 거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탄핵 가결에 대해선 “고비는 넘겼지만 전 이제 시작이라 본다. 철저하게 수사해야 한다. 이토록 많은 시민들이 열망을 갖고 탄핵을 주장하는데 국민의힘은 정말 실망스러웠다. 그게 보수인가”라고 했다.
‘86학번 동기’인 두 중년여성은 후배 또는 자식을 보듯 흐뭇하게 여대생들을 바라보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이 씨는 “계엄령, 민주화를 거치고 대학시절 데모를 빡세게 했지만 이제 저흰 저물어 가는 세대다. 아들, 딸을 보면서 ‘얘들 괜찮나’, ‘너무 가치관이 없는 거 아냐’ 걱정도 했는데 이렇게 자기 주장과 철학이 있다는 게 너무 고마웠다. 이들이 정치에 관심 갖는 계기가 된 게 윤석열이 잘한 일일 거 같다. 이들에 의해서 상식적인 사회로 가는 시발점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D-데이’ 오전 서울 여의도, 언론도 분주
이날 오전 9시30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역 3번 출구 인근엔 이미 ‘시사IN 거리편집국’이 서 있었다. ‘편집국’이라지만 한 편이 뚫린 천막에 탁상 몇 개와 의자, 난로, 잡기가 놓인 게 전부인 곳을 3~4명이 지킨다. 곧 이곳을 찾을 사람들에게 배포할 ‘호외’가 책상 위 수북하게 놓였다. 행인이 “이거(호외) 가져가도 되냐”고 묻는다. 지난 주 거리 편집국에선 2만부 호외를 모두 나눠줬다. 이번 주에도 2만부를 찍었다.
김동인 시사IN 기자가 “가져 가셔도 됩니다!”라고 답한다. 이날 시사IN은 서울 여의도 국회 안팎 취재에 기자 4~5명을 투입했고, 김 기자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맡았다. 회사에선 유튜브 생중계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편집국 기자 전부, 비편집국까지 거의 모든 구성원이 동참해 대응에 나섰다. 김 기자는 “거리편집국은 창간 이후부터 저희 매체와는 뗄 수 없을 만큼 익숙했고, 국장은 물론 다들 너무나 당연하게 하자고 했다. 헌정이라는 예측할 수 있는 질서, 시스템을 다 정지시키려는 시도였고, 여기 자체가 중요한 현장이지 않나”라고 했다.
다만 그는 “오늘 가결이 된다면 시민들과 함께 그 순간을 볼 수 있다는 건 좋지만 개운치 않을 것 같다. 민주적인 절차를 진행하고 있지만 사실 여기까지 온 것 자체가, 당연한 수순을 못한 것 아닌가. 대통령이 그날의 선택으로 망가뜨린 게 너무 커서 그 후과를 우리가 치러야 되고, 해결해야 할 일이 너무나 산적해 답답함이 오히려 크다”고 했다.
이날 오전 일찍부터 여의도역, 국회의사당역 각 출구 또는 인근엔 이미 여러 언론사와 각종 단체의 신문, 호외, 전단물이 배치돼 있었다. 국회의사당 건물 방향으로 삼삼오오 걷는 사람들 손에 “국회는 국민의 뜻을 따르라”(경향신문), “촛불의 힘, ‘탄핵 저지선’ 넘는다”(한겨레) 등이 적힌 종이신문이 들렸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 손에 신문이 들린 걸 보는 게 낯설었다. 오전 11시30~40분, 의사당대로에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신문, 방석을 나눠주거나 집회 준비, 안전 대비를 하는 인력은 더 바삐 움직였다. 국회 인근 카페에선 낮 12시 이미 앉을 자리를 찾기 어려웠다.
결말을 모르고 시작된 날이었다. 사람들이 더 올 거라는 것만 확실했다. 여의도 직장에서 퇴근 후 바로 탄핵 집회에 참여했다는 장세권(68)씨는 “5·18이 터졌을 때 대학교 3학년이었다. 처음 계엄 소식을 듣고 분노 자체였다. 만일 (내란이) 성공했다면 오늘 이 사람들을 가만 뒀겠나? 자칫 대량 살상이 났을 수도 있었다고 생각하니 화가 계속 가라앉지 않았다”고 했다. 12·3 사태 후 뉴스를 더 보게 됐냐는 질문에 그는 “좀 더 보는 게 아니라 근무를 못할 정도로 본다. 조석, 시간마다 상황이 달라지는데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탄핵이 되는 건지’ 불안해서 자꾸 뉴스를 찾아보고 있다”고 했다.
◇국회 앞 모인 “탄핵해! 탄핵해!” 한 목소리
국회 앞 모인 시민들이 옴짝달싹 할 수 없게 된 이날 오후 국회 앞 도로는 목소리의 공간이었다. 국회가 가장 가까이 보이는 제일 앞단은 오후 1시쯤 이미 많은 시민들이 앉은 상태였다. 그 뒤 도로를 조금 늦은 시민들이 계속 채워가는 형국. ‘토요일 밤에’, ‘나갈 때가 됐는데’ 등 노래 뒤에 “윤석열 탄핵!”을 붙이며 따라 부르는 시민들이 점점 늘었다. 일반 시민이란 두루뭉술한 범주를 넘어 노동자, 소수자, 여대, 페미니스트, 존재하는지도 몰랐던 각종 단체, 깃발 등이 한 데 모였다. 하나로 묶기 어려운 다양한 목소리를 묶는 매개는 ‘대통령 탄핵’ 주장이었다.
경북 문경에서 집회 참여를 위해 친구와 함께 상경한 주문주(27) 씨는 “국회의원으로서 회의에 참석 안 하는 건 그 일을 하라고 투표를 해서 뽑아준 사람들을 대한 배신이고, 직업적으로 배임이라 생각한다”며 “3일 이후로 깨있는 시간 내내 뉴스를 보는 것 같다. 방송 3개를 틀어놓고 뭔가 놓칠까봐 국회방송까지 켜놓고 보고 있다”고 했다.
이번 사태 국면에서 언론에 대한 평가도 물었다. 그는 “언론 구조나 역사적인 부분 등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도 ‘잘한다’고는 말 못하겠다. 그래도 이번 국면에서 약간 나아졌다고 느낀 건 사실”이라며 “사람의 선의를 전 믿는다. 기자들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기사를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경우에 따라 양심이 있어도 억압이나 탄압으로 그걸 못 펼치는 경우가 있지 않나. 그걸 펼칠 수 있는 환경이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민들이 모이며 언론사, 기자들의 분주한 모습도 보이기 시작했다. 국회의사당 쪽엔 KBS와 MBC, SBS, JTBC의 특설 스튜디오가 마련됐다. 사다리를 놓고 집회 모습을 찍는 사진기자들, 인터뷰 또는 현장 전달을 하는 방송사 기자들의 모습이 속속 눈에 띄었다. 오후 4시, 국회 본회의장 모습을 외부에서도 영상으로 볼 수 있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말이 들리자 시민들은 박수와 환호를 보냈지만 얼굴에선 긴장과 초조함이 읽혔다. 일몰 시간과 맞물리며 해는 넘어가고 있었고, 탄핵봉이라 불려온 야광봉은 점점 더 밝아졌다. 결말은 우리가 아는 대로다.
◇대통령 탄핵 가결, 그리고 다시 시작
다만 탄핵은 고비이자 계기였을지 모른다. 이 수많은 목소리가 분출된 시간이 남긴 것들을 특히 정치권은 되돌아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언론으로서도 유구한 불신, 앞으로를 위해 남겨진 고민이 많아 보인다. 김선일(55) 씨는 “이번에 기성언론을 잘 못 믿겠어서 유튜브를 많이 봤고, 기성언론 중에선 MBC, 프레시안을 좀 봤다”며 “KBS는 이제 잘 안 보게 됐고, 경향신문과 한겨레신문은 자기 논리로 가르치려 들여 별로”라고 했다. 아울러 그는 “헌법재판관이 6명 밖에 없는데 한 명만 반대해도 안 되지 않나. 오늘처럼 국민이 계속 지켜보고 압력을 넣어야 올바른 결론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언론이 그 과정에서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재심 씨는 “대통령에게 부역하는 사람이 높은 자리에 앉은 KBS, 묘한 스탠스를 취하며 자신의 유익을 구하는 언론들, 수준미달의 종편 패널들에 대해 문제라고 하고 싶다. 너무 싫어서 뉴스를 안 보고 환멸하게 됐고 그랬는데 결국 국민이 정치와 언론에 관심을 줄이니까 이번 사태가 일어났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남소희(24) 씨는 “박근혜 탄핵 때도 집회에 나갔는데 그때와 비교하면 30표 정도 차이가 나는데 아쉽다. 그때는 고등학생 때라 ‘야자’를 째고 갔었는데 사실 ‘정확힌 모르지만 나쁘다는 건 알겠다’ 느낌으로 앉아있었는데 그때를 계기로 사회에 대해 좀 더 배웠다고 생각한다. 가결이 됐으니 다행이지만 이젠 광화문에 나가야 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언론과 관련해선 “제대로 된 보도를 하는 언론이 없지 않나. 대표적인 예가 KBS다. 이미 사람들이 많이 분노하고 있고, 수신료를 어떻게 끊는지도 공유할 정도로 반감이 큰 상태인데 최근에 더 반감을 사면서 제일 싫어하는 언론이 됐다”며 “MBC가 최근엔 가장 볼만했다고 생각하지만 그냥 지금 상태에서 믿을 수 있는 언론이었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원하는 건 모든 걸 투명하게 제대로 알려주는 언론이다. 언론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데 그때 정보에 장난을 치지 않으면 좋겠고, 비판 마땅한 건 제대로 비판하면 좋겠다. 비판할 부분도 두루뭉술 알려주는 게 정말 싫다”고 덧붙였다.
한 데 몰렸던 많은 시민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상당 시민들은 가결의 기쁨과 흥분감에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국회 주위 도로를 천천히 배회하는 듯 했다. 혼잡한 때를 피하기 위해서인지 국회 앞 거의 모든 카페는 탄핵 가결 발표 후에도 3~4시간 동안 계속 만석인 상태였다. 카페 내부에선 “고생했다”, “넌 태어나서 최고의 값어치를 한 거야 오늘” 같은 말로 서로를 칭찬하는 이들도 보였다. 한 카페 사장은 “2층 손님 전원에게 SNS로 ○○님이 선결제로 샌드위치를 사셨다”며 안내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 풍경엔 이번 집회 현장 취재를 한 것으로 보이는 어느 언론사 기자 6~7인이 단체석에 앉아 기사를 쓰는 모습도 포함됐다. 많은 과제와 고민을 남기고, 오늘의 역사는 이렇게 기록으로 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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