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희 선생의 거실 한쪽에는 엘피판이 빼곡했다. 음악을 취미로 하시던 선생이 평생 모아온 것들이다. 그런데 그 엘피판은 20여년이 넘도록 소리를 내지 못했다. 선생은 미국의 국제정책 논문에서 광주학살을 언급한 부분을 보고 나서 음악과 절연했다. “남의 집에서 상사가 났는데 가무를 안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다. 더구나 광주에서 수백명이 죽었다고 하는데 어떻게 음악을 듣나.”
정 선생은 컴퓨터와 자동차 운전을 못한다. 술, 담배도 평생 하지 않았다. 한 것이 있다면 곁눈질을 하지 않았다는 것. 원고지와 씨름하며 한평생 올곧게 살아오신 것뿐이다. 선생은 지금도 볼펜으로 원고를 쓴다. 적어도 글을 쓰는 사람은 볼펜으로 써야한다고 하셨다. 볼펜으로 쓰면서 생각을 정리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선생은 여의도 24평 아파트에 홀로 사신다. 4~5년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신뒤 아파트는 더욱 고적해졌다. 여동생들이 가끔 와서 밥도 해놓고 가고 빨래도 하고 그런다고 했다. 한 평생을 독신으로 지냈다. 유일한 취미는 아파트 주변을 산책하는 것. 그것도 다리가 불편해 힘에 부친다. 가까운 여의도공원에 나가본지도 한참 됐다.
배웅을 하시겠다고 해 만류했으나 끝내 나오셨다.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의 가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죠. 더운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어서 이런 멋스런 가을은 처음일거에요.” 눈처럼 내리던 노란 은행잎들을 쳐다보며 선생은 혼잣말했다. 세상과 치열하게 싸워왔던 원로 언론인은 그렇게 삶을 관조하고 있었다.
정경희 선생은 1932년 충남 공주에서 출생한 선생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한 뒤 1958년 한국일보에 입사했다. 한국일보 외신부장, 문화부장, 부국장, 논설위원 등을 역임했으며, 1992년 ‘위암언론상’, 2002년 ‘송건호 언론상’을 수상했다. 1996년 8월부터 미디어오늘에 ‘곧은소리’ 집필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고대사회문화연구’(1990), ‘정경희의 곧은소리’(1999), ‘실록 막말시대-권언 카르텔의 해부’(2005)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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