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는 없다
배우 윤여정이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뭉클한 장면을 연출했다. 남우조연상을 수상한 영화 코다의 농아인 배우 코처를 호명하며 수어로 축하하고, 코처가 수어로 소감을 밝힐 수 있게 트로피를 대신 받아들고 배려한 모습이었다. 시상식에 참석한 배우들도 두 손을 반짝이는 수어 박수를 보내며 감동을 끌어냈다. 그즈음 국내에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는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둘러싸고 논쟁이 뜨거웠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다며 장애인들의 시위를 비문명적이라고 쏘아붙이자, 혐오를 조장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장
세월호 8년, 언론은 얼마나 달라졌나
여덟 번째 봄이다. 전남 진도 인근 참사 해역과 목포 신항, 경기 안산 등지에서 시민들은 세월호 8주기를 맞아 희생자를 추모했다. 현장을 찾은 취재기자들의 수는 매년 줄었고, 기사 내용은 간결하며 짧아졌다.시의성을 따지는 언론의 특성상 시간의 흐름과 중요도는 반비례한다지만, 우리는 8년 전 세월호에서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곳에서 어떤 보도를 했었는지에 대한 반성이다.전원 구조 지상 최대의 구조 작전. 정부 발표를 받아 쓰는 속보 경쟁에 집단 오보를 냈던 언론의 관행은 얼마나 개선됐는가. 당시 실종자와 유가족들이 언론을
기자 직무 스트레스, 가볍게 여겨선 안 된다
현직기자 54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78.7%에 해당하는 428명이 근무 중 심리적 트라우마를 겪었다고 한다. 근무 중 어떤 상황이 트라우마를 일으켰느냐고 묻자 취재 과정뿐 아니라 기사 작성과 보도, 보도 이후 댓글이메일 등 독자의 반응에 이르기까지, 기자라는 직업을 수행하기 위한 직무 전반이 총망라됐다. 동료 기자 10명 중 8명이, 기자라면 누구나 겪을 법한 통상의 업무 과정에서 반복적으로 정신 건강의 위기를 경험했다는 뜻이다.새삼스럽지만 기자는 업무 강도가 높고 직무 스트레스도 많은 직업이다. 취재보도라는 직무
중견기업의 언론사 인수, 저널리즘 포기는 안 된다
중견기업들의 언론사 인수 움직임이 활발하다. 기존 언론의 영향력 저하가 뚜렷한 상황에서 투자 의지를 가진 기업의 언론사 인수 시도는 기대와 우려를 동시에 불러 일으킨다. 포털의 조회수에 연연하는 콘텐츠 양산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언론사에게 기업의 안정적 투자는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을 북돋우는 든든한 뒷배가 될 것이라는 게 그 기대다. 반면 언론의 공적 책무는 외면한 채 기업이 사업을 위한 방패막이로 언론을 악용할지 모른다는 우려 목소리도 크다. 안타깝게도 최근 잇따른 중견기업들의 언론사 인수 움직임을 우리는 기대보다는 우려의 눈길로
서울신문 기자 삭제, 흐지부지 끝나면 안 된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김상열 호반건설그룹 회장의 이른바 일감 몰아주기 정황을 포착해 김 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지난 17일 이 사실이 알려진 후 대부분 언론이 김 회장의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를 기사화했다. 이튿날인 18일 일부 종합 일간지는 지면에도 관련 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같은 날 서울신문에는 호반, 현장근무자 5000명에게 5억 상당 격려품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을 뿐이었다. 서울신문 홈페이지에도 김 회장에 대한 검찰 수사는 물론 호반건설에 부정적인 기사는 찾아볼 수 없었다.어쩌면 예견된 사태였을지도 모른다. 호반건설이…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에게 바란다
어퍼컷 퍼포먼스는 대선 유세로 끝났다. 국가운영은 권투 경기처럼 상대를 꺾어야 승리하는 게임이 아니다. 특히 초박빙의 대선 투표 결과는 내편 네편 갈라치기 분열정치를 종식시키라는 준엄한 경고였다. 국민통합이란 엄중한 과제가 주어졌다. 윤석열 당선인은 두 달 뒤면 20대 대한민국 대통령이다.윤 당선인은 선거과정에서처럼 왜곡된 언론관을 보여서는 안 된다. 언론을 향해 수시로 어퍼컷을 날려 아직도 어질하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을 겨냥해 민주당 정권의 전위대는 강성 노조이고, 그 첨병이 바로 언론노조라고 적대감을 드러냈다. 편향된 시각은 공영
우크라이나 사태, 심층 국제보도에 눈 떠야 할 때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달 말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한 직후, 각국 유수 언론사들의 움직임을 보면 그 조직의 수준이 보인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과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발빠르게 호모 사피엔스 등 저작으로 국내에도 유명한 유발 하라리의 기고를 게재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평소 관계가 돈독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 등 푸틴 대통령을 잘 아는 유력 인사들의 알찬 기고문을 실었다. 미국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는 러시아가 아닌 미국을 비판하는 미국 학자인 존 미어샤이머와의 장문 인터뷰 기사를…
혼탁한 대선… 실종된 정책검증 보도
앞으로 5년 동안 한국의 앞날을 결정할 20대 대통령 선거가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는 대의민주주의 제도의 꽃이라는 정치학의 고전적인 명제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제왕적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닐 정도로 대통령 권한이 막강한 한국에서 5년마다 돌아오는 대선의 의미는 단순한 정치적 이벤트 이상이다.대선은 지난 5년 집권세력을 평가하는 의미도 크지만 정치경제사회 문제에 대해 각 정당들이 어떤 해법을 제시하는지를 집중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기회다. 갈수록 복잡다기한 현실과 방대한 정책을 이해하는 데 유권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에서 선거
포털 '100만 조회' 기사와 '돈 안되는' 기사
이윤에 초점을 두면 가치가 위태로워지고 가치에 집중하면 생존의 기반을 위협받을 수 있다.오랜 시간 뉴미디어를 연구해 온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는 2018년 펴낸 사라진 독자를 찾아서에서 언론의 모순적인 지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민주주의라는 추상적인 이상을 실현한다는 과제와 기업으로서 이윤을 내는 역할이 충돌하며 저널리즘의 위기를 불렀다는 것이다.기자협회보 보도로 지난해 국내 최대 디지털 뉴스 플랫폼 네이버에서 독자들이 가장 많이 본 기사들이 공개됐다.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한 목록들은 언론의 지위를 분석했던 책의 내용을 떠오
가볍게 쓰는 디지털 기사의 민낯
그냥 개최국 중국이 메달 모두 가져가라고 하자. 지난 7일 밤, 베이징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1000m 경기가 끝난 직후 온라인을 뜨겁게 달군 서울신문 기사다. 기사 본문에 그냥 개최국 중국이 메달 모두 가져가라고 하자라는 문장이 10번 반복됐고, 제목 역시 같은 내용이 2번 반복됐다. 기사 본문 곳곳에도 개인의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낸 문장이 들어 있었다. 서울신문 평화연구소 사무국장(논설위원 겸임)이 쓴 이 기사는 네이버에서 4만여개의 공감 표시를 받았다. 그러나 서울신문은 이 기사를 출고한 지 약 30분 만에 삭제했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