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하면서 진영 갈등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다. 탄핵 찬성·반대 집회가 연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이어지고, 온라인 공간에서는 서로를 겨냥한 날 선 비난과 혐오 발언 등이 난무한다. ‘나라가 두 쪽 났다’는 표현이 딱 맞아떨어진다.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윤 대통령이 석방된 뒤로 갈등의 골이 한층 깊어지는 모양새다. 헌재 선고 후 내전에 준하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란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사회 분열이 이 지경까지 이른 책임은 어느 한쪽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헌법상 국민통합의 의무가 있는 대통령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12·3 비상계엄 선포로 한국 사회를 두 동강 낸 윤 대통령을 오히려 엄호하고 있는 여당도 책임이 있다. 거대 야당 역시 통합과 포용의 자세가 아닌 상대 진영을 향한 적개심으로 반목을 부채질하고 있다.
갈등을 조금이나마 봉합할 수 있는 기회는 그간 몇 차례 있었다. 윤 대통령이 탄핵심판 최종 의견진술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승복하겠다’는 선언을 했다면, 최소한 자신을 지지하는 이들에게 ‘자제’를 당부하기라도 했더라면, 상황이 이 정도까진 오지 않았을 터다. 그러나 1시간이 넘는 윤 대통령의 최후 진술에 ‘승복’이란 단어는 없었다. 탄핵에 반대하면 ‘애국시민’, 찬성하면 ‘반국가 세력’이라는 윤 대통령의 이분법적 사고가 엿보였을 뿐이다.
윤 대통령이 법원의 구속 취소로 52일 만에 서울구치소를 나서면서 ‘결과에 승복’이란 언급을 했다면 찬탄·반탄 대립이 오늘처럼 심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환한 표정으로 손 인사를 건네면서도 자기편(‘응원을 보내주신 많은 국민, 미래세대 여러분, 국민의힘 지도부를 비롯한 관계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만 전했다.
거대 야당의 당수이자 가장 유력한 차기 대권주자인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역시 윤 대통령 탄핵정국 내내 국민통합을 위한 발언이나 행동은 일절 하지 않고 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이 석방된 8일 헌재 인근에서 열린 야5당의 집회에서 무대 위에 올라 “‘빛의 혁명’을 완수하겠다”, “싸우겠다”는 등 탄핵 찬성 진영의 전의를 북돋는 말만 쏟아냈다. 이 대표를 비롯한 야당 지도부가 탄핵심판 결과에 승복하겠다고 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는다.
책임 있는 이들이 이처럼 승복보다 불복, 통합보다 반목에 가까운 언행으로 일관한 결과가 오늘의 한국 사회다. 서울서부지법 폭동 사태와 윤 대통령 지지자들의 연이은 분신 시도, 강경 일변도의 집회 현장에서 발생한 물리적 충돌 등으로 수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목숨을 잃었다. 양측 진영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탄핵심판 결과에 불복할 것”이란 말까지 나돈다. 경찰은 물론, 국민 대다수가 헌재의 선고기일 지정을 마음 졸이며 기다리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윤 대통령과 여야 지도부 모두 헌재의 탄핵심판 결과에 승복하겠다는 메시지를 내야 한다. 국회의장과 국무총리, 당대표를 지낸 여야 원로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했던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 등이 한목소리로 이같이 주문하고 있다. 우리 언론도 각 사의 논조나 개개인의 정치 성향은 잠시 접어두고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헌재의 결론에 승복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