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탄핵 기각 결정으로 직무에 복귀한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이 신동호 EBS 사장 임명을 밀어붙여 논란이 뜨겁다. 최근 대법원이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의 임명 효력 정지를 확정하면서 ‘2인 체제’ 방통위의 의결이 잘못됐다는 취지의 결정을 내렸음에도 또다시 이 위원장과 김태규 부위원장 2명만으로 의결을 강행한 것이다.
신 사장의 이력과 정치적 중립성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MBC 아나운서국장 시절 노동조합 활동 등을 문제 삼아 후배 아나운서를 다른 부서로 내보내고 프로그램에서 배제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언론 탄압’을 했다는 꼬리표가 달렸다. 2020년 국회의원선거 한 달 전 퇴사한 직후 국민의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의 비례 위성정당 미래한국당 후보로 출마하기도 했다. MBC 출신인 이 위원장은 4년 전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신 사장을 ‘사랑하는 후배’로 소개하는가 하면, 같은 정당에서 활동한 시기도 겹쳐 이해충돌이라는 지적도 끊이지 않는다.
EBS 안팎에서 진통이 극심하다. EBS 구성원들은 신 사장의 출근 저지 투쟁을 진행 중이다. 3월26일 방통위 의결로 임명된 신 사장은 나흘 연속(1일 기준) 출근하지 못했다. EBS 보직 간부 대다수(54명 중 52명)는 결의문을 내 “(신 사장을) 결코 사장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며 보직 사퇴의 뜻을 밝혔다. 김유열 전 사장은 방통위 의결 이튿날 서울행정법원에 사장 임명 효력을 멈추고 취소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과 본안 소송을 냈다.
이사진은 이사회 개최를 거부하고 나섰다. 신 사장이 3일 이사회 개최를 요청했으나, EBS 유시춘 이사장과 김선남·문종대·박태경·조호연 이사는 입장문을 내 이사회 개최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EBS 이사회의 과반이 입장문에 이름을 올리면서 3일 이사회가 열리기는 어려워졌다. 여권 이사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더불어민주당은 2인 체제 방통위의 신 사장 임명이 “위법”이라며 “알박기 인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소속 최민희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장은 “(신 사장) 임명을 철회하지 않으면 국회가 취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검토하겠다”고 경고했다. 국회 과방위 민주당·조국혁신당 의원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성토했다.
그러나 야권 역시 비판만 하고 있을 처지는 아니다. 2023년 5월 방통위 ‘5인 체제’가 무너진 뒤 2년 가까운 시간이 흐르는 동안 방통위가 기형적인 2인 체제로 운영되며 숱한 논란을 낳은 데는 민주당이 지난해 9월 야당 몫 방통위원 추천 관련 공모를 진행하다가 돌연 중단한 점도 한몫했다. 여당도 이 부분을 지적하고 나서면서 책임 공방으로 비화한 모양새다.
EBS의 혼란상을 수습하려면 여야 모두 극한 대치에서 한발 물러나 ‘방통위 정상화’를 위해 손을 잡아야 한다. 국민의힘은 3월28일까지 방통위원 후보자 신청을 받았다. 나아가 여당으로서 정부에 신동호 사장 선임 전면 재검토를 요구해야 할 것이다. 민주당도 이에 호응해 야당 몫 방통위원을 추천해야 한다. 공영방송 사장 선임은 절차상 어떤 하자나 논란 없이, 투명하게 이뤄져야 하며, 이는 방통위가 ‘5인 정원’은 물론 합의제 기구로서의 위상과 성격을 복원한 뒤에야 가능하다. 백년대계를 다루는 교육 공영방송의 명운이 정치권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