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파인더 너머] (95) 왔는데요, 안 왔습니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조수정(뉴시스), 최주연(한국일보), 구윤성(뉴스1), 정운철(매일신문), 김애리(광주매일)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통신사 사진기자 10년차. 이제는 중요한 사건이 있는 현장에서의 실수 따위는 허락되지 않고, 스케치 위주의 단순한 현장에선 알아서 척척, 플러스 알파까지 해내는 그런 연차입니다.그러다가 최근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그 알아서 척척 하는 현장에서의 일을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의욕이 떨어지고 무기력해졌습니다. 번아웃이 온 겁니다.번
[뷰파인더 너머] (94) 내가 서 있는 승강장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조수정(뉴시스), 최주연(한국일보), 구윤성(뉴스1), 정운철(매일신문), 김애리(광주매일)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지하철 선전전 취재를 위해 찾은 삼각지역에서 길을 잘못 들었다. 승강장 반대편에 인간 바리게이트를 만든 경찰들이 아득하게 보였다. 서울교통공사와 경찰이 14시간 동안 전장연의 지하철 탑승을 물리적으로 저지한 바로 다음 날, 대통령실과 가장 가까운 삼각지역에서 선전전이 열렸다. 내가 서 있는 승강장에는 생
[뷰파인더 너머] (93) 빛으로 전해드리는 행복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조수정(뉴시스), 최주연(한국일보), 구윤성(뉴스1), 정운철(매일신문), 김애리(광주매일)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엄마! 내일 평근? 야근? 늦게 퇴근해? 새해 첫날, 엄마 껌딱지(?)인 초등학생 두 아이가 저를 꼭 껴안고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물어봅니다. 아이들의 요즘 최대 관심사는 엄마 아빠 몇 시 퇴근?입니다. 행복의 기준이 엄마 아빠와 함께하는 시간이라고 하네요.제 행복의 이유 역시 아이들 입니다. 돌 지나서까지 엄마에게서 0.001mm라도
[뷰파인더 너머] (92) 새해에는 모든 이들에게 희망이 가득하기를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오승현(서울경제), 김혜윤(한겨레), 안은나(뉴스1), 김태형(매일신문), 김진수(광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광주광역시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내 빅도어(BIG DOOR)에 HAPPY NEW YEAR 2023이라는 문구와 화려한 불빛들이 연말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호랑이 기운으로 힘차게 시작하자며 다짐하던 게 엊그제인데 숨 고르고 땀 한번 훔쳐내고 보니 어느새 2023년 새해가 코 앞입니다.여전히 사그라지지 않은 코로나19의 불안감 속에 시작된 대
[뷰파인더 너머] (91) 솔숲의 하늘, 날이 저물도록 올려다 봤습니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오승현(서울경제), 김혜윤(한겨레), 안은나(뉴스1), 김태형(매일신문), 김진수(광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청도 운문사 입구 노송들이 하늘을 덮었습니다. 저마다 키높이 경쟁을 하면서도 한 뼘 거리를 두고 하늘을 나눠 가졌습니다. 덩치가 크다고, 키 작은 나무라고, 함부로 하늘을 가리는 법이 없습니다.나뭇잎은 다른 잎을 만나면 서로 닿지 않게 기피하며 생장을 멈춘다. 연구 끝에 학자들은 놀라운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이른바 수관기피(樹冠忌避). 나무는 줄기
[뷰파인더 너머] (90) 오늘도 감사합니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오승현(서울경제), 김혜윤(한겨레), 안은나(뉴스1), 김태형(매일신문), 김진수(광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결국 코로나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3년 동안 나름 잘 피해왔다고 생각해 왔는데 말입니다. 겨울철 재유행이라는 말을 뼛속 깊이 체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상태가 나빠져 취재로만 접했던 음압병동에 실제로 입원했습니다. 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인 혜민병원이라는 곳입니다. 보건소에 병상 요청 전화를 걸고 구급차가 도달할 때까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
[뷰파인더 너머] (89) 특별한 유니폼 옆에 핀 무지개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오승현(서울경제), 김혜윤(한겨레), 안은나(뉴스1), 김태형(매일신문), 김진수(광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무지개는 비가 그친 다음 공기 중에 남아있는 물방울이 햇빛과 만나 생길 수 있다. 연중 비가 내리지 않는 중동 하늘에 무지개가 모습을 드러내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일까 카타르에 무지개가 겨우 피었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지난 25일 조별리그 2차전부터 성소수자 차별 금지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무지개 모자와 깃발 등을 경기장에 들고 올…
[뷰파인더 너머] (88) 국화꽃 향기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오승현(서울경제), 김혜윤(한겨레), 안은나(뉴스1), 김태형(매일신문), 김진수(광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계절의 문턱에서 서늘한 밤공기를 타고 전해지는 국화꽃 향기가 그날의 비극을 말해주는 듯합니다. 청춘들의 들뜬 분위기로 차올랐던 가을밤 축제의 거리는 이제 무거운 침묵으로 가라앉아있습니다. 참사 소식이 전해진 뒤 이곳 이태원은 지금도 수많은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평소 고인과 일면식 한번 없던 이들도 국화 한 송이와 소주 한 병을 거리
[뷰파인더 너머] (87) 뱅크시가 다녀갔을까요?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오승현(서울경제), 김혜윤(한겨레), 안은나(뉴스1), 김태형(매일신문), 김진수(광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뱅크시(Banksy)로 알려진 영국의 그래피티 작가는 얼굴이나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채 사회 풍자적이며 파격적인 그래피티 작품을 남기는 것으로 유명합니다.건물 벽, 지하도, 담벼락, 물탱크 등에 낙서처럼 그림을 그려놓고 사라지지만 꽃다발을 던지는 남자(2003년)나 풍선과 소녀(2006년) 등 전쟁이나 폭력, 테러에 반대하는 등 세상의 부조리에 대
[뷰파인더 너머] (86) 두 날개의 새가 하나도 부럽지 않습니다
[뷰파인더 너머는 사진기자 오승현(서울경제), 김혜윤(한겨레), 안은나(뉴스1), 김태형(매일신문), 김진수(광주일보)가 카메라의 뷰파인더로 만난 사람과 세상을 담은 에세이 코너입니다.] 씨앗은 겨우 쌀 한 톨 만해서 다람쥐를 부를 재간도 없고, 새를 불러들일 맛난 열매는 더더욱 아닙니다. 스스로 떠날 길을 찾는 수밖에. 진화를 거듭하다 씨앗에 떡하니 날개를 달았습니다.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단풍이 질 무렵 깃털처럼 가벼워진 씨앗이 찬바람에 몸을 맡깁니다. 팽그르르~. 씨앗 하나에 날개도 하나. 비대칭의 외날개지만 비행술은 가히 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