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테러와 시리아 내전 그리고 기후변화
슈퍼 엘니뇨 때문에 지구촌이 포근한 11월을 보내고 있다. 올해가 역사상 가장 더운 해로 기록될 것이라는 기상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지구촌의 정치 안보 기상도는 혹한기를 맞고 있다.사회변동을 분석하는데 있어 자연 요소는 종종 논외로 취급되곤 한다. 전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의 파리 테러에 대해서도 다양한 정치적·경제적·종교적 분석이 제기되고 있지만 자연의 영향에 대해선 주목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그저 이슬람 분파 갈등과 서방의 중동정책, 시리아 내 복잡한 정치상황, 유럽 내 무슬림 공동체…
‘응답하라 1988’과 ‘김연수의 기레빠시’
여고생들의 입에서 그런 원망의 합창을 들으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A여고에서 특강을 한 월요일 밤의 일이었다. 심야자율학습까지 반납한 책 좋아하는 여고생과 학교 도서관 선생님의 요청이었다. 책읽기와 글쓰기가 주제였는데,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화제로 이야기가 흘렀다. 여러 명을 언급했는데, 함성은 기자와 동갑내기인 소설가 김연수의 단편 ‘뉴욕제과점’에서 터져나왔다. “아, 그놈의 기레빠시!” 자전적 내용을 담고 있는 ‘뉴욕제과점’에는 빵집 아들이었던 소년 김연수의 푸념이 등장한다. 당시 소년들의 판타지였던 빵집
‘거울 나라’의 한국 금융산업
삼성그룹이 지난해 화학·방위 관련 4개 계열사를 한화그룹에 넘긴 데 이어 최근 롯데그룹에 남은 화학부문마저 팔기로 했다. 곧이어 CJ그룹이 케이블TV 1위인 CJ헬로비전을 SK텔레콤에 매각한다는 발표가 나왔다. 사업 구조조정을 위한 대기업 간 ‘자율 빅딜’이란 점에서 경제·산업계에 신선한 충격을 주는 사건이었다. 삼성과 CJ의 파격 행보는 절박함의 발로다.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이다. 롯데케미칼에 팔리는 삼성정밀화학 노사가 “글로벌 초일류 기업 도약을 위해 롯데케미칼의 지분 인수를 적극 지지하고 환영한다”는 이례적
언론인의 ‘권력행’이 남긴 과제
한 방송사 간부 기자의 ‘청와대행’이 또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언론인의 청와대행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만, 박근혜 정부 들어서는 거의 일상화된 느낌이다. 직전까지만 해도 정부와 사회를 감시·비판하는 언론의 공적기능을 수행하던 기자들이 하루아침에 정부 고위직으로 자리를 옮겨 정부의 논리를 대변하고 언론을 역비판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놀라움과 당혹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일각에서는 이를 언론의 위기 원인 중 하나로 지적하기도 한다. 언론이 당면한 위기를 거론하면서 급변하는 미디어환경이라는 외부적 요인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변화
왜 떳떳한 돈을 몰래 관리했을까
몇 달 전, 후배들을 만난 자리에서 술값으로 호기롭게 40만원을 결제했다가 아내에게 추궁을 당한 일이 있다. 내 핸드폰에 저장된 카드결제내역 문자메시지를 본 아내는 결제금액보다 그 돈이 어디서 났는지 따졌다. 그 돈은 월급을 부부공동의 생활비 통장으로 보낼 때마다 몰래 조금씩 떼어 모아둔 비자금이었다. “꼭 써야 할 때 궁색해 보이기 싫었다”고 변명했지만 “꼭 필요할 땐 군말 없이 줄 테니 말을 하라”는 핀잔만 들었다.‘정당한 비자금’은 존재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어느 모로 봐도 정당하다는 말은 비자
선대의 유업에 사로잡힌 동북아 정치
최고 권력자들이 ‘과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자기 가문의 유업을 이루기 위해 역사 역주행의 가속 페달을 밟는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다. 먼 나라 얘기가 아니다. 바로 우리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 최근 한반도와 그 주변의 답답한 상황이다.북한의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가 큰 맥락에서 비슷한 궤적을 그리고 있다. 김정은은 김일성·김정일의 뜻을 이어받는다는 의미의 유훈통치를 펼치고 있다. 인민들에게 김일성 시대의 향수를 자극하려는 듯 할아버지의 걸음걸이와 연설 제
‘좋아하는’ 일과 ‘작은’ 성공
최근 동덕여대에서 특강을 할 기회가 있었다. 2학년 학생 450명을 대상으로 한 교양강의였는데, 당연히 처음에는 사양했다. 여고 문예반 시화전에 초대받았다가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고 돌아왔던 고교 시절의 참사가 생각나서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소위 ‘헬조선’ 시대를 살고 있다는 우리 시대의 청춘들에게 줄 수 있는 도움말이 아득해서였다는 게 정직한 이유일 것이다.특강 청탁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올랐던 곳은 통영의 작은 출판사, ‘남해의 봄날’이었다. 얼마 전 기사로도 인용했지만, 2년 전 경남 통영의 이 작고 예쁜 출판사를 찾아간 적이
싸이월드 : 흔적
어느 날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글렌굴드의 골든베르그 변주곡은 한동안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오르게 했다. 20여 년 전 우리 집엔 무려 100장이 넘는 클래식 전집이 한꺼번에 들어오는 ‘사건’이 있었다. 새롭게 일을 시작한 엄마 친구가 장기할부로 떠맡기면서 엉겁결에 들어온 것이다. 나는 교과서에 등장하는 웅장하고 화려한 교향곡보다는 독주에 끌렸고, 유독 글렌굴드의 피아노 음반에 손이 갔다. 피아노 소리 저 어디선가 흐느낌이 들려 귀신 소리인지 환청인지 싶고, 특히 밤에 혼자 들을 때면 살짝 무섭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던 음반, 이른바 ‘굴
금융 vs IT : 융합없는 핀테크 정책
핀테크(FinTech) 열풍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핀테크란 금융을 뜻하는 파이낸셜(financial)과 기술(technique)의 합성어. 모바일 결제 및 송금, 크라우드 펀딩 등 정보기술(IT)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형태의 금융 기술을 말한다.미래 부가가치 산업의 대표주자로 떠오른 핀테크를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경쟁이 치열하다. 미국 애플과 한국 삼성이 각각 모바일 결제 서비스인 ‘애플페이’와 ‘삼성페이’를 내놨고, 구글과 페이스북도 자체 금융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인터넷 전문은행은 핀테크의 결정판으로 통한다. 미국과 일
세실과 쿠르디 그리고 국제여론
국제부에서 일하다 보면 보도사진의 위력을 실감할 때가 적지 않다.전쟁과 기아, 시위, 환경오염, 자연재난 등에 대해 장문의 기사나 보도영상을 쏟아내도 꿈쩍도 하지않던 여론이 스틸사진 한 장에 성난 파도가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이러쿵저러쿵 장황하게 떠드는 것보다 사진 한 장이 사건의 본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최근 시리아 난민 꼬마 에이란 쿠르디를 통해 다시 한 번 사진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시리아 내전을 피해 가족과 함께 소형 고무보트를 타고 유럽행 피난길에 올랐던 세 살배기 쿠르디는 터키 휴양지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