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환 미군기지 부실정화 파문
어린이날인 5월5일. 오전 데스크 회의를 마친 뒤 “반환미군기지에서 유전이 발견됐다던데? 빨리 취재해 봐”라는 오석기 문화체육부장의 농담 섞인 말에 깜짝 놀랐습니다. 춘천의 반환미군기지인 캠프페이지에서 문화재 발굴 도중 지하 2~3미터 안에서 석유 냄새가 진동하는 토양층이 발견됐다는 소식을 들은 걸 돌려 말한 것입니다. 웃음도잠시…. 회사는 곧바로 사회부장을 중심으로 한 전담 취재팀을 구성했습니다. 관련 자료 확보와 전문가의 조언, 지속적인 현장확인과 관련자의 충분한 인터뷰에 집중하기 위해서입니다.취재팀은 부실정화 의혹에 초점을 맞
'KAL858기 실종사건' 2부작
지난해 3월 위안부 특집 제작을 위해 미얀마를 열흘 정도 방문했다. 미얀마는 과거 버마로 불리던 동남아 국가로 우리에게는 KAL858기(이하 858기) 실종사건으로 알려졌다. 취재진은 일본군 위안소와 관계자들을 취재하면서도 858기와 관련된 내용을 묻고 다녔다. 그러던 중 우연히 현지 코디를 통해 858기의 엔진을 인양한 어선의 선장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여러 차례 선장을 취재했고 858기가 추락했던 곳의 좌표까지 확보했다.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격이지만 좌표만 정확하다면 한 번 도전해 볼 만하지 않을까? 취재진의 무모한 도전은
MBC '채널A 검언유착 의혹' 보도, 구체적 녹취록 존재 드러내며 저널리즘 가치 높여
제356회(2020년 4월) ‘이달의 기자상’에는 9개 부문 43편이 출품됐고, 이 중 8편이 선정됐다. 우선 취재보도부문에서 KBS의 21대 총선 양정숙 비례대표 후보 검증 보도가 선정됐다. 올해는 비례 위성정당이 급박하게 추진되면서 각 정당의 후보자에 대한 검증이 부실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이런 상황에서 이뤄진 KBS 비례대표 후보자 인사 검증보도는 매우 의미 있는 우수한 선거보도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최근 언론계의 가장 큰 화두를 던져주었던 MBC의 채널A 검언유착 의혹 보도도 취재보도 부문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채널A 검언유착 의혹
감옥에서 제보가 왔다. 제보자는 금융 사기죄로 복역 중인 벨류인베스트먼트코리아의 이철 전 대표. 채널A의 한 법조 기자가 자신에게 편지를 여러 통 보냈는데 내용이 협박에 가깝다는 제보였다. 이철 측이 제시한 편지와 녹음을 통해 채널A와 오갔던 대화를 확인했다. 취재가 아니라 사실상의 협박이었다. 가족에 대한 노골적인 협박은 명백한 취재윤리 위반이다. 검찰에서 취재한 내용을 수사 받는 피의자에게 전달하며 제보를 압박하는 것도 취재윤리 위반이다. 한 기자만의 일탈로 치부할 일이 아니다. 검언유착이 있었다. 취재 과정에서 채널A 기자가…
21대 총선 양정숙 비례후보 검증
‘강남에 집이 너무 많다.’ 양정숙 당선인 검증은 이 단순한 이유로 시작했습니다. 첫 난관은 바로 왔습니다. 국회의원 후보이기 때문에 재산 공개는 되어있지만, 부동산은 동(洞)까지만 표기돼있었습니다. 아파트 이름도 없었습니다. 평수로 아파트를 추정하고, 해당 평수 등기부등본을 모두 떼야 했습니다. 뜻밖에 강남 아파트 전수조사가 됐습니다. 집을 하나 확인하면, 숨겨진 재산이 또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6곳을 이렇게 일일이 찾아냈습니다.부동산을 사고판 내역을 보니, 단순 투기가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자문을 구한 한 전문가는 “이 사람,…
디지털 성범죄, 그들의 죗값
기사에 실리진 않았지만 아동성보호 국제네트워크 ‘엑팟 인터내셔널’의 마리로리 르미뇌르 연구사업 국장은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처음 ‘그것’들을 보았을 때 펑펑 울었습니다. 평범한 인간의 반응이었죠.”그것은 ‘아동성착취물(CSEM)’입니다. 그는 인터폴과 함께 전 세계 아동성착취물 108만 건을 분석한 연구자입니다. 무슨 심정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지난 2018년 가을, 아동·청소년 성 매수자들을 추적한 적이 있습니다. 실로 끔찍한 경험이었습니다. 채팅앱을 깔아놓은 스마트폰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쉴 새 없이 울렸
대한민국 형사소송법 312조
검사가 만든 피의자신문조서를 부인하지 못하게 정한 형사소송법 312조 문제에 청와대부터 소극적이었습니다. 지난해 5월 문재인 대통령은 “검찰의 피의자신문조서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부분은 검찰로서는 우려를 표현할만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형소법 312조 폐지에 부정적인 것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여당을 포함한 정치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12조가 인권침해 도구라는 점을 충실히 드러내기로 했습니다. 기사가 호응을 얻었습니다. 이 보도가 나온 뒤로 검찰 입장이 바뀌었습니다. 국가인권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중진 의원이 폐지가 바람직하다고…
코로나19 집중 프로젝트
2014년 뉴욕타임스 혁신보고서는 ‘뉴미디어의 도전’이 급속하며 파괴적임을 깨닫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심한 관절염을 앓고 있는 공룡’과도 같은 레거시 미디어에 몸담은 나는 과연 남은 기자 생활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선택’이 아닌 ‘생존’을 건 고민의 세월이 흘러 대구MBC에는 지난해 디지털미디어팀이라는 신생 조직이 생겼다. ‘뉴스 RD를 하자’ ‘뉴미디어 저널리즘을 구현해보자’라는 목표 아래 어렵게 팀을 꾸리고 다양한 도전을 이어가며 팀워크를 쌓아가던 즈음 코로나 사태가 터졌고, 그 중심에 대구가 서게 됐다. 정체불명의…
서민 울린 대국민 사기극 '전세자동차 원카'
‘전세자동차’란 새 사업구조에 대한 의구심에서 시작된 6개월 간 취재와 기사 보도가 이달의 기자상 수상까지 이어졌습니다. 유명 연예인의 TV 광고, 특허를 받은 영업방식, 보증금 전액을 돌려준다는 지급보증서 등. 전세자동차 업체 ‘원카’가 수백억원 규모 계약을 맺으며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려 내세웠던 것들입니다. 그런데 하나하나 뜯어내 속을 들여다보니 대부분 허울뿐이거나 실체가 없는 사기나 다름없었습니다. 원카와 계약을 맺은 수많은 피해자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단체 채팅방 등에 모여 피해 사례나 구제 방안을 논의하거나 관련 고발·소
성매매 집결지 '완월동' 100년의 뿌리를 뽑다
‘성매매 집결지’라는 주제가 기자에게 매력적인 아이템은 아닙니다. ‘n번방’처럼 성범죄의 새로운 모습도 아닐뿐더러 2000년대 초반부터 수도 없기 보도되어 독자에게 피로감이 높은 주제입니다. 이러한 무관심 속에서 업주 주도하에 한반도 최고(最古), 전국 최대 성매매 집결지 부산 ‘완월동’은 아파트 개발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1910년대 일제가 만든 완월동은 경찰과 지자체의 묵인 속에서 평균 5층에 달하는 규모로 형성됐습니다. ‘한창일 때는 돈을 갈퀴로 쓸어모았다’는 업주들의 말이 증명하듯 그 높은 건물은 ‘성 착취’로 쌓아올려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