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묵적 편견
최근 구글의 연구진들은 ‘다음에 볼 영상을 추천하기(Recommending what video to watch next)’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유튜브에서 특정 영상을 다 보면 자동 재생되는 다음 동영상의 추천 알고리즘을 좀 더 이용자 맞춤형으로 개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구진들은 추천 알고리즘의 개선 과정에서 ‘암묵적 편견(implicit bias)’ 문제를 특별히 다루고 있다. 암묵적 편견은 심리학 용어로 본인은 편견을 갖고 있지 않다고 믿고 있지만, 무의식적으로 나타나는 편향적 태도를 말한다. 이 논문에서
논란 아닌 논란은 그만
2009년 걸그룹으로 데뷔했을 때 세상이 떠들썩했다. 설렌다는 뜻의 ‘설리설리하다’라는 신조어가 널리 쓰일 정도였다. 한편, 걸그룹에 요구되는 강도 높은 감정노동과 꾸밈 억압에서 벗어난 설리는 다른 의미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다. 어느 쪽이든 설리에게 가혹했을 것이다. 14일 설리의 사망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에도 속도전에 급급하여 보도 권고 기준을 무시한 기사가 쏟아졌다. 하려는 이야기는 다른 주제지만, 해당 사건에서 깊은 우울감이나 손이 떨리는 등의 신체 증상을 느끼는 분은 이 글을 건너뛰길 바란다. 툭하면 논란의 중심이 됐지만
다른 목소리
나라가 둘로 갈리는 건 무서운 일이다. 하지만 하나로 합쳐지는 것보다는 낫다. 신중국 건국 70주년 기념식에서 한몸처럼 팔다리를 휘두르는 군인들, 국가주석의 말에 로봇병정처럼 구호로 응답하는 인민해방군의 모습에 서늘한 느낌을 받은 건 ‘하나가 된 전체’가 얼마나 위압적이고 무서운지 알기 때문이다.“술자리에서 조국 (법무부 장관) 얘기 꺼내면 싸움 난다”고 하면서 다들 그 이야기를 한다. 소셜미디어에서 “내가 이 문제에 대해선 글 안 올리려고 했지만”이라는 서두를 달며 글을 올린다. 서초동에 100만, 200만 명이 모였다고 하더니…
독자가 싫어하는 말을 전해야 할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 제품 생산자의 모든 초점은 고객 만족과 고객 창출에 맞춰진다. 미디어(Media)는 상품 측면에선 이 기조와 맞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가끔 고객 요구와 엇나갈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한국 언론은 민주주의 창출에 크게 기여하기도 했지만, 과거 정치권과의 결탁, 대기업 광고주와의 결합 등 떳떳하지 못한 길도 걸어왔다. 고객으로서의 독자는 늘 뒷전으로 밀렸다. 지금까지 독자는 정보가 없었고, 속도도, 입도 없었다. 그런데 스마트한 지금의 독자는 이 모든 걸 가졌다. 미디어가 정보와 견해를 제시하면, 이를 그대로 수용했
학벌과 언론·재벌, 어느 세습이 더 나쁜가
고려 시대의 음서는 관직을 세습하는 제도였지만, 온전한 세습은 아니었다. 음서로 얻는 것은 하급 관료가 고작이었기에 능력이 부족하면 한직을 떠돌다 물러나야 했다. 고려 시대 권력 세습의 진짜 핵심은 수조권을 세습할 수 있는 공음전이었다. 대죄를 짓지 않는 이상 수조권을 빼앗기지 않았기에, 유서 깊은 명문 가문은 끊임없이 부를 불려 나갈 수 있었다.조국 법무부 장관 부부는 딸에게 명문학교 출신이라는 학벌과 의사라는 상류층 지위를 물려주려 했다. 인맥으로 의학 논문의 제1저자를 만들어주고, 대학 총장 표창장을 안겼다. 일반 시민이 쉽게
정파적 취재원 편드는 언론 환경
뉴스에 특정 프레임을 구축하는 것은 편집국 내부 요인과 외부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주요 내부요인은 뉴스 가치 판단과 편집 정책이다. 외부 요인은 기자 개인의 정치적 성향 및 가치관, 언론사의 정파적 성향, 언론사 경영 환경, 언론과 언론인의 역할에 대한 인식, 단독과 특종을 위한 언론사 간 경쟁, 포털 사이트 클릭 수 경쟁, 사회 분위기 등 매우 다양하다. 언론사의 뉴스 가치 판단을 추정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 일정 기간 동안 특정 정치적 이슈를 전하는 기사가 차지하는 분량을 계산하고, 사실보도와 의견기사의 지배적 내용과 논조
분노와 허위정보
최근 ‘조작적 허위정보에 대한 언론학 및 컴퓨터 과학적 접근’이라는 포럼에 참석해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언론학자와 컴퓨터 과학자가 각자의 관점에서 조작적 허위정보에 대한 생각과 대응 방식을 제시하고 상호 협력 방안을 모색해 보는 자리였다. 민주주의 공동체 사회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 자신과 생각이 다른 내용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주장에 대해, 생각이 다른 의견을 보여주니 오히려 기존 성향이 더 강해졌다는 분석결과가 제시됐다. 사실 여부 판단의 최종 주체는 여전히 사람이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대량의 정보들을 대상으로 한 허위
시각 자료가 보여주는 것들
기사에는 시각 자료가 들어간다. 대부분 사진이거나 그림이다. 기자가 직접 찍거나 그리지 않더라도 기사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보여주고 시선을 끄는 이미지는 엄연히 기사의 일부이다. 이미지를 고른 사람의 의도나 보도에 관한 태도가 반영된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성범죄 보도에서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이미지 사용은 꾸준히 비판 받았다. 그럼에도 가해 장면을 재현하는 삽화나, 피해자를 대상화하는 사진은 넘쳐난다. 이런 이미지를 내세운 기사에서 독자는 무엇을 느낄까? 성범죄에 대한 경각심? ‘몹쓸짓’을 한 범죄자에게 들끓는 공분? 한 눈에 성범죄
전통 저널리즘의 생존법
일본 제품 불매운동에 관한 소식을 들으면서 한국의 시민사회가 한층 성숙했음을 실감한다. 관 주도 캠페인에 저항하고 일본 정부와 일본 시민을 분리해 대응하는 방식은 사뭇 인상적이다. 사회연결망서비스로 연결된 시민들이 적극적으로 의견을 표명하고 이에 동의하는 개인들이 참여하면서 여론이 형성되고 결국 지자체의 의사결정에 실질적인 영향을 주었다(예, 중구청의 ‘노 재팬’ 깃발 철거). 시민의 관여와 참여를 촉진하는 미디어 환경이 한 단계 더 발전한 사회 캠페인을 가능하게 한 셈이다. 일본 제품 불매운동처럼 정치적 혹은 윤리적인 이유를 들어
필리핀의 위안부 동상
‘필리핀 위안부’. 마닐라 록사스 거리의 베이워크에 전시됐던 동상이다. 2017년 12월8일 필리핀국가역사위원회(NHCP)와 시민단체들의 지원 속에 만들어졌다. 우리의 ‘평화의 소녀상’처럼, 이 동상도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성노예로 강제동원됐던 여성들을 기억하고 전쟁범죄를 되새기기 위해 세워졌다. 호나스 로세스라는 조각가가 만든 2m 높이의 동상은 필리핀 여성들이 많이 입는 ‘마리아 클라라 드레스’ 차림에, 베일을 쓰고 눈을 가린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작가의 설명을 빌리면 여성의 눈을 가린 것은 “일본 정부로부터 만족할만한 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