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일본의 '천황' 호칭

[언론 다시보기]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나리카와 아야 전 아사히신문 기자

한국에서 가끔 “일왕의 이름이 뭐였죠?”라는 질문을 받는다. 바로 답할 수 없으면 “일본인 맞아요?”라고 의아한 표정을 하는데 사실 일본에서는 천황의 이름이 언론에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국언론에서는 ‘아키히토 일왕’ ‘나루히토 일왕’이라고 하지만 일본에서는 주로 ‘천황폐하(天皇陛下)’라고 하고 어느 천황인지 구별이 필요할 때는 ‘헤이세이 천항(平成天皇)’ ‘레이와 천황(令和天皇)’처럼 연호를 붙이는 게 보통이다.


그런데 내가 아사히신문 기자였던 당시 천황에 관한 기사를 쓰면 꼭 항의 전화를 받았다. “천황 폐하에 높임말을 안 썼다”는 것이다. 내가 알아서 안 쓴 것이 아니라 아사히신문의 룰에 따라 안 쓴 거지만 “실례”라며 화를 내는 사람이 꽤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아사히신문은 다른 신문과 똑같이 ‘천황폐하’라고 쓰면서 동사에는 높임말을 안 쓴다. 예를 들어 “천황폐하가 백신을 접종했다”고 쓰는데 요미우리신문을 비롯한 대부분 신문은 “천황폐하께서 백신을 접종하셨다”라고 동사에도 높임말을 쓴다.


“높임말을 안 썼다”며 항의 전화를 받았던 것이 생각난 건 강창일 주일대사가 “천황폐하”라고 했다며 한국에서 비판하는 기사를 봤기 때문이다. 특히 강창일 대사의 발언이 주목을 받은 건 대사 취임 전에 ‘일왕’이라고 했던 것 때문에 일본 일부 언론이 비판했기 때문이다. ‘일왕’이라고 하면 일본 언론이 비판하고 ‘천황폐하’라고 하면 한국 언론의 비판을 받는 어려운 입장이다.


한국의 일부 매체는 김대중 대통령 시절인 1998년 이후 정부는 외교 석상에서는 ‘천황’을 공식 용어로 써왔다고 설명하면서 그래도 ‘천황폐하’라는 호칭은 국민 정서와 거리가 멀다고 지적했다.


이렇게 ‘천황’의 호칭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건 한국과 일본의 인식 차이가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일본에서는 한국 언론이 ‘일왕’이나 ‘나루히토 일왕’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는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다. 한국 뉴스가 일본어로 번역될 때 원문이 ‘일왕’이라는 표현을 써도 일본판은 ‘天皇’이라고 번역하기 때문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일본 언론이 ‘천황폐하’라고 하고 동사에도 높임말을 쓰고 있다는 사실은 잘 모를 것이다. 내가 아사히신문 기자 당시 경험했듯이 높임말을 안 쓰는 것에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다. 강창일 대사가 쓴 ‘천황폐하’라는 표현을 일본 대부분 사람들은 당연하다고 받아들였을 것이고 대사로 왔는데 ‘일왕’이라고 했다면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정도로 비판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나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천황의 한자에 대해 생각해본 적 없었다. 한국에서 ‘일왕’이라는 표현을 쓰는 걸 보면서 왜 그런지 알아봤더니 천황 ‘천’자가 하늘을 뜻하는 한자고 ‘황’자는 왕보다 더 높게 느끼는 황제의 ‘황’이기 때문에 한국 언론에서는 ‘천황’ 대신 ‘일왕’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에서는 천황이라는 말은 고유명사처럼 쓰이고 있고 개인적으로 천황을 존경하든 천황에게 비판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든 대부분 일본사람들한테는 천황은 천황이다.


‘천황’을 둘러싼 보도로 과거에 우익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도 있어 일본 언론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는 면도 있다. 양국에서 ‘천황’ 호칭을 어떻게 쓰고 있는 지를 파악해두는 것도 괜한 오해로 인해 한일관계가 악화되는 일을 막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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