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박완서 다시 읽기
“인싸들이 고독함을 탐내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해 본 일이었다. 그들이 빛나는 인맥과 친구만으로는 성이 안 차, 외로움까지 훔쳐다가 그들의 삶을 한층 더 다채롭게 할 에피소드로 삼고 싶어 한다는 건 미처 몰랐다.”박완서 작가의 저작들은 2011년 1월22일 작가가 타계한 이후 매년 기일 즈음 새 옷을 입고 다시 세상에 나온다. 올해는 10주기를 맞아 맏딸 호원숙 작가의 에세이 ‘엄마 박완서의 부엌 : 정확하고 완전한 사랑의 기억’이 나와 반가움을 더했다. 개정판을 검색하던 중 의외의 곳에서 작가의 글을 발견했다. 페이스북 계정 ‘서
기상청의 민망한 적설예보
올겨울 유독 눈이 자주 내린다. 초겨울에는 주로 서해안으로 대설이 쏟아지더니 한겨울 들어 눈구름이 내륙 깊숙이 들어오고 있다. 특히 지난 6일은 수도권에서 퇴근길 악몽이 벌어졌다. 제설이 제때 안 된 탓인데 타고 있던 버스에서 내려 걸어서 집에 가거나 중도에 차를 버리고 가는 시민들이 속출했다.월요일인 18일은 더 많은 눈이 올 거란 전망이었다. 기상청은 온라인 브리핑을 열고 대설이 쏟아질 거라며 기후적 측면에서 이례적이란 언급까지 했다. 일부 지역에서는 대설 특보 중 가장 상위 단계인 ‘경보’ 발표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영서중·
동학개미가 살린 증시에 숟가락 얹는 정치권
한국사회에서 부동산은 이념의 격전장이다. 주택의 유무, 지대를 보는 세계관에 따라 부동산을 바라보는 시각은 첨예하게 갈린다. 같은 부동산 정책이 나와도 언론사의 성향에 따라 보도는 극과 극이다. 개인 역시 마찬가지다. 반면 주식시장은 정치성을 덜 타는 영역이었다. 자본주의를 채택하는 한, 주식 시장의 내적 논리는 큰 틀에서 반박불가다.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은 각론에선 차이가 있을지언정 총론에선 이론이 적다. 정치성향을 떠나 증시가 꾸준히 오르기를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주가가 급락하면 모두 걱정한다. 그러나 요즘 한국 증시에 정치 바
공판중심보도는 '면피'의 수단이 아니다
정경심 교수에 대한 1심 재판이 끝났다. 재판부는 정 교수에게 검찰이 적용한 15가지 혐의 중 11가지에 대해 유죄로 판단하고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나는 재판부가 법정구속하겠다고 밝힌 순간 정 교수가 당황하던 모습을 법정에서 목격했다. 하지만 당황한 사람은 정 교수뿐이 아니었다. 검찰이 조작한 사실이 재판 과정에서 하나둘씩 깨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정 교수의 지지자들도 큰 충격에 빠졌다. 이들 중 상당수는 여전히 유죄 판결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다.판결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항소심과 상고심에서 유죄 판결이 파기될 가능
김정은 위원장의 육필 연하장을 읽고
신축년 새해 들어 처음 발행하는 기자협회보에 칼럼을 써달라는 연락을 받고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신년사를 소재로 글을 써야겠다며 느긋하게 마음먹던 중에 김 위원장이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는 대신 자국민에게 보내는 육필 연하장만 공개했다는 ‘비보’에 낭패감을 느꼈다. 북한이 연초 8차 당대회를 앞둔 만큼 그 내용에 있어서 중복을 피하기 어려운 신년사를 생략할 수도 있으리라는 관측이 진작부터 있었지만, 막상 염두에 둔 칼럼의 소재가 사라져 당혹스러웠다.그래서 오른쪽 상단을 향해 기세 좋게 뻗는 듯한, 김 위원장 특유의 필체가 담긴 연하
미분양의 추억들
‘아파트’라고 이름만 붙이면 팔리는 시대다. 경기도 파주에서 충남 당진까지, 이른바 ‘악성 재고’까지 모두 팔린다. 그야말로 ‘줍줍’이다. 며칠 전 한 신문에 미분양 걱정없다. 중견건설사 막바지 분양 총력이라는 기사가 나왔다. 진짜 미분양 걱정은 없을까? 이 열기는 언제까지 계속될까?2000년 분양한 타워팰리스는 당초 의사 변호사 교수 등을 주로 입주시키고 싶었다. 분양도 개별 접촉으로 진행됐다(고 이건희 회장도 69층 펜트하우스를 계약했다). 하지만 부동산 경기는 차갑게 식었고 결국 미분양됐다. 1/3 가량이 삼성임원들에게 억지…
"넌 왜 맨날 젠더기사만 쓰니?"
최근 2년간 젠더 분야를 담당한다는 이유로 강연 자리에 설 기회가 종종 있었다. 대부분 언론사의 젠더 보도 경향을 톺아보는 자리였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요청에 기꺼이 응했다. ‘기레기’란 말이 통용되고 특히 젠더 이슈에 관해선 기사가 2차 피해를 양산한다는 비판도 받는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기자들이 더 나은 보도를 위한 고민을 한다는 것, 독자들과 그 고민을 나누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리고픈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하지만 매번 마음 한 쪽에선 “요즘 누가 신문을 본다고”, “기자의 말에 누가 관심을 갖겠어”란 회
네이버 구독형 플랫폼, 포털 뉴스 생태계의 서글픈 자화상
네이버가 일부 언론사와 함께 구독형 플랫폼을 준비 중이다. 언론사 총 누적 구독자 수가 2000만명이 넘자, 일부 매체는 ‘뉴스를 정기적으로 받아보고 싶다’는 독자의 욕구를 확인했고, “‘유료화 실험을 해보고 싶다’는 언론사 요청을 반영했다”는 게 네이버 측 설명이다. “인터넷 시대에 구글은 전기처럼 필수적인 존재라고 믿었고, 구글에 콘텐츠를 제공하는 대가로 구글의 조회 수를 확보하므로 구글과 맺는 관계는 긍정적인 공생관계라고 생각했다.” 플랫폼 제국의 미래를 쓴 스콧 갤러웨이 교수는 당시 구글로 들어간 언론사의 판단이 어리석었다고
킴 응, 그녀가 펼칠 야구가 궁금하다
기자라는 핑계로 매사 삐딱하게 보는 버릇이 갈수록 심해진다. 지난달 중순, 북미 스포츠 사상 최초로 메이저리그 여성 단장이 탄생했다는 소식이 국내외 화제이길래 꼬투리 잡을 게 없는지 혼잣말하면서 뉴스를 읽어내려갔다. 메이저리그 30개 구단이 공화국이라면, 단장은 각 나라의 대통령과 다름 없는데 그런 직책이 여성에게 주어졌다는 것이 좀처럼 안 믿겼다. 게다가 이 나라는 남자들끼리 방망이들고 싸우는 곳 아닌가. “마이애미 말린스 단장? 여긴 돈 없고 인기 바닥인 구단이잖아. 뉴욕 양키스의 슈퍼 스타였던 데릭 지터가 구단주로서 전권을 행
'힐빌리의 노래'는 계속된다
할머니는 겨우 13세에 아이를 가진 것을 알고 고향을 도망쳐 나왔다. 그렇게 태어난 엄마는 가정폭력을 예사로 보고 자랐다. 손꼽힐 만큼 공부도 잘했고 간호사 자격증까지 땄지만 아이 둘을 낳고도 제대로 가정을 꾸리지 못했고 결국은 마약에 손을 댔다. 엄마의 두 자녀 역시 수시로 바뀌는 ‘새아빠’와 엄마의 마약중독 후유증을 일상으로 겪었다. 가난이 덤이었으니 일가친척 중 대학 졸업장을 받은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이런 배경에서 자란 아이가 할머니, 그리고 어머니와 다른 삶을 살 확률은 얼마나 될까. ‘힐빌리의 노래’는 오하이오 미들타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