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단이 목적을 집어삼키면 안 되는 이유

[이슈 인사이드 | 문화] 김재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김재희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지난 1월26일 개봉한 변성현 감독의 ‘킹메이커’는 달걀 도둑을 잡을 방법을 고민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어느 날 새벽, 남자는 동네 사람이 자신의 닭이 낳은 달걀을 훔치는 장면을 목격한다. 하지만 범인이 이장의 친척이라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가 마을에서 가장 현명한 ‘서창대’(이선균)를 찾아간다. 서창대는 서랍 안에서 빨간 실을 꺼내들고는 “실을 닭의 다리에 묶고, 범인의 닭장에 몰래 닭을 가져다 두라”고 말한다. 그 다음 “우리 집 닭에 모두 빨간 실을 묶어 놨으니, 닭을 훔쳐갔는지 확인해보자”고 하라는 것이다. 다리에 실을 묶은 닭을 범인의 집에 가져다 뒀으니, 범인은 발뺌할 도리가 없다.


하지만 서창대가 제안한 묘책에는 문제가 있었다. 달걀도둑을 닭 도둑으로 몰아야 한다는 점이다. ‘달걀 도둑 검거’라는 대의를 실현하기 위해 범인에게 원래 죄보다 더 큰 죄를 뒤집어씌우는, 즉 부정한 수단을 쓰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딜레마가 생긴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한 문장으로 요약되는 첫 장면의 메시지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서창대는 위 질문에 대해 ‘목적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더럽고 추잡한 수단이라도 활용해야만 한다’고 말할 만큼 목적만을 향해 경주마처럼 달려가는 사람이었다. 서창대는 ‘선거판의 여우’라 불렸던 실존 인물 엄창록을 모티브로 만들어졌는데, 그는 1960~1970년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국회의원에 당선시킨 보좌진이었다. 영화에서 김 전 대통령 역할의 ‘김운범’(설경구)을 당선시키기 위해 근거 없는 비방, ‘아니면 말고’ 식의 프레이밍도 서슴지 않는다. 이는 김운범의 당선으로 이어졌다.


수백 명의 권력가들을 연구해 권력을 손에 넣는 이들의 특징을 연구한 영국 런던대(UCL) 국제정치학과 브라이언 클라스 교수는 그의 저서 ‘권력의 심리학’에서 서창대의 방법이 옳은가에 대한 물음에 답을 준다. 그는 ‘권력을 얻는 데 있어 수단이 목적을 정당화할 수 없다’고 직접 언급하지는 않지만, 권력을 얻는 데 있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자는 경계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권력을 손에 넣는 과정에서 죄 없는 이가 피해를 입거나, 부정한 방법을 사용해야 함에도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이들은 권력을 얻고 나서도 부패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김운범도 클라스 교수의 우려를 알고 있었을지 모른다. 그는 명석한 두뇌와 승부사 기질을 지닌, 무엇보다 본인 당선의 1등 공신인 서창대를 내치면서 이렇게 말한다. “자네는 정치를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구만.” 김운범은 부정을 저질러서라도 당선되려는 서창대에게서 권력이 쥐어진 이후의 부패와 타락의 모습을 봤을 것이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 정당을 가릴 것 없이 온갖 루머와 근거 없는 비방, ‘아니면 말고’식 프레이밍들이 난무한다. 당선이라는 목적을 위해 수단은 가리지 않는, 서창대같은 모습이 곳곳에서 보인다. “목적은 수단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말은 당장 권력을 손에 넣는 게 중요한 이들에게 이상적인 구호처럼 들릴지 모른다. 하지만 영화 ‘킹메이커’가 던진 질문에 대해 한 번쯤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이기는 것이 목적이 된 승부’는 정작 후보들의 공약과 비전을 덮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수단이 목적을 집어 삼켰을 때,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권력다툼을 벌인 이들이 아니라, 국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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