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위협적인 산불, '시즌'이 사라졌다?

[이슈 인사이드 | 기후] 신방실 KBS 기상전문기자

신방실 KBS 기상전문기자

지난겨울부터 바싹 메마른 날씨가 이어지더니 봄의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대형 산불이 이어지고 있다. 산불 발생을 알리는 산림청 메시지가 하루 10건이 넘기도 한다. 그러더니 지난 4일 경북 울진과 강원도 강릉 등 동해안을 중심으로 또 다시 기록적인 산불이 발생했다.


2019년 4월4일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식목일을 하루 앞두고 강원도 고성과 속초, 강릉, 인제, 동해에서 대규모 산불이 발생했다. 태풍급 강풍이 몰아치며 일명 도깨비불이라고 불리는 ‘비화’ 현상이 나타났고 소나무 숲은 한 순간에 잿더미로 변했다. 민가까지 불길에 휩싸이며 수백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는데 재산 피해는 1291억원에 달했다.


산불이 발생하기 전 동해안 지역에는 ‘양간지풍’이라는 강력한 바람이 예보됐다. 겨울에서 봄으로 접어드는 시기 강력한 기압 차이에 의해 발생한 서풍이 태백산맥을 넘으면서 더욱 위협적으로 변하는 현상이다. 이맘때 ‘양양’과 ‘간성’(고성) 사이에 부는 바람인 양간지풍은 불을 불러와 ‘화풍’(火風)이라고도 불린다.


당시 기상청은 긴급 예보회의를 통해 산불 가능성을 경고했다. 나는 9시 뉴스를 통해 이 내용을 보도했다. 그러나 산불을 막을 수는 없었다. 2019년 4월4일 저녁 7시 17분 산불 발생 소식을 듣고 회사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올해도 마찬가지였다. 건조특보가 20일 가까이 계속된 동해안에는 초속 25미터(시속 90km)에 이르는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동해안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강풍이 불면서 지난 4일과 5일 이틀간 제주와 전남을 제외한 전국에서 15건의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했다.


2019년은 4월 들어서야 대형 산불이 발생했지만 올해는 이미 겨울부터 큰 불이 잇따랐다. 평균기온이 높았고 눈과 비가 적었기 때문이다. 동해안은 원래 2월에 큰 눈이 많이 내리지만 올해는 2월 적설량이 5cm 수준을 넘지 못했다. 1~2월 강수량을 합쳐도 평년의 10%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산불의 직접적인 원인은 입산자 실화가 대부분이다. 쓰레기와 논·밭두렁 소각, 담뱃불 등 사소한 부주의가 산불을 불러오곤 한다. 그런데 산불 발생의 배경에는 기후위기가 있다. 겨울철 기온이 높아지고 눈이 적게 오는 현상은 온난화가 불러온 변화다.


그동안 우리나라 산불의 절반 이상은 봄에 집중됐다. 특히 피해 면적이 100ha(100만㎡) 이상이거나 24시간 이상 지속된 대형 산불의 경우 3월에서 4월 사이에 90% 이상 발생했다. 그러나 올해는 겨울부터 산불이 잇따르면서 예년 2배 수준을 기록했고 2월28일에 이미 산불재난 위기경보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가 발효됐다. 산불 시즌이 봄에서 겨울로 앞당겨진 것이다. 앞으로 이런 현상이 가속화되면 산불이 잠잠한 시기는 비가 많이 오는 여름철 두 달 정도에 불과해질 거다.


2017년 미국 캘리포니아 소방국장은 “우리는 이제 화재 시즌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화재가 연중 계속되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도 2019년 이후 3년 만에 다시 위협적인 산불 상황을 맞았다. 기후위기로 산불이 일상이 되기 전에 탄소 감축 등 근본적인 대책을 고민해야한다. 또 사시사철 잇따르는 산불 피해를 막기 위해 진화 인력과 장비 확충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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