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전 대통령이 4일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됐지만 이후에도 12·3 비상계엄의 배경이 된 부정선거 음모론은 꺼지지 않고 있다. 선거 결과에 불복하는 부정선거 주장이 다시 힘을 받으면 6·3 조기 대선에도 악영향이 예상된다. 부정선거론을 정치적이나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세력의 속셈을 적극적으로 비판하는 보도가 요구된다.
윤 전 대통령이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형사재판에 출석한 14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는 수십 명의 지지자들이 모여들어 부정선거를 주장했다. 선거 개입 배후로 중국을 지목해 규탄하기도 했다.
부정선거론이 6·3 조기 대선에까지 영향을 미칠 조짐도 보인다. 9일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부정선거 척결을 공약으로 내세워 무소속으로 대선 출마를 선언했다. 다음 날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음모론을 일축하겠다며 투·개표 시연회를 열었는데 김민전 국민의힘 의원이 부정선거론자들을 데리고 와 선관위 측과 설전을 벌이며 소란을 일으켰다.
부정선거론자들은 사전선거 투표함 보관 장소의 CCTV가 조작될 수 있다거나 선관위 직원의 지문을 훔치면 이곳에 잠입해 투표함을 바꿔치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폈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상황을 예정한 억지에 불과하다. 부정선거론의 거의 모든 주장은 2월과 3월 KBS ‘추적60분’, MBC ‘PD수첩’, 한겨레21, 뉴스타파 등이 집중적으로 보도하며 반박됐다.
그럼에도 부정선거론자들은 선관위가 서버를 공개하면 모든 문제가 해소된다고 주장한다. 실제보다 부풀려진 선거인, 즉 유령 투표자가 있는지 지자체에서 제공한 명부와 선관위의 통합선거인명부를 비교해 보자는 요구다. 선관위는 불법 소지가 있어 임의로 서버를 열 수 없다고 설명해 왔다. 부정선거론자들이 기댄 마지막 논리인 셈인데 사실상 이 또한 검증이 완료됐다.
2020년 민경욱 전 의원이 제기한 선거무효 소송에서 법원은 인천 연수구을 선거구 사전투표지 4만5000여장에 쓰인 모든 일련번호를 살펴봤다. 선관위가 부여하지 않았거나 중복된 일련번호는 없었다. 유령 투표지 따위는 없었던 것이다. 작은 단위에서도 부정선거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는데 전국에서 조직적인 부정선거가 있었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극히 낮아진다.
과거 SNU팩트체크센터의 의사결정기구인 팩트체크위원회 위원장을 맡은 이민규 중앙대 교수는 부정선거론 자체보다 이를 이용하는 정치인을 언론이 단호하게 비판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부정선거론에 대한 팩트체크는 중도층을 위해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부정선거론으로 이익을 보는 이들을 막아야 음모론이 사그라들 수 있다는 것이다. 음모론은 증거나 논리보다 유명인들의 권위에 기대는 성격이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음모론은 논리로 극복하기 어려운데 언론은 그보다 ‘큰 그림’을 봐야 한다”며 “한국일보의 ‘전광훈 유니버스’ 기획처럼 정치인과 종교인들을 탐사보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일보는 2월 정의를 빙자해 추종자를 끌어들인 전광훈 목사의 가족 사업을 폭로했다. 국민의힘도 부정선거를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호성 전략으로 지지를 유지하고 있다.
이 교수는 또 “선거 결과에 승복은 사회통합을 위해 필요한 과정”이라며 “6·3 대선 때까지 부정선거론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면 수면 밑으로 내려갈 수도 있지만 정치적 이익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 이후까지 만성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