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가 다시 대승을 거둔 미국 대선에서 언론은 예측에 실패했다. 누구를 지지하는지 차원이 아니라 대중의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편파적인 환경이 됐고, 저널리즘 근간인 진실의 보도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고 있다. 언론의 미래 수익모델은 이런 지점들과 떨어져 단독으로 존재할 수 없고 전방위적으로 관련이 있다."
비비안 쉴러 아스펜 연구소 부소장은 지난 15일 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재단)이 주최한 ‘2024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이 같이 밝혔다. 해당 ‘수익다각화와 저널리즘 확장 전략’ 세션은 AI 시대 뉴스의 위상과 향후 역할을 전망하고, 영속가능한 언론을 위한 전략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NPR, 트위터, 뉴욕타임스, NBC, CNN 등 유수 매체에서 경영인, 디지털 부문 책임자를 역임하고, 현재 영국 일간지 가디언을 소유한 스콧 트러스트 재단의 이사이기도 한 그는 “언론이 대중이 원하는 방식으로 변화하지 못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인공지능(AI)이란 기술 요소, 환경 전반을 아울러 언론이 마주한 도전에 대해 견해를 피력했다.
일단 정치사회적 여건, 현재 대중의 인식에 대한 해법 차원에서 쉴러 부소장은 국가적 차원의 뉴스 대신 “지역뉴스 대한 집중(more focus on local media)", 이목 대신 "영향력에 초점을 둔 뉴스(more focus on impact)", 일반 대중이 아니라 "커뮤니티에 중점을 둔 뉴스(more focus on community)" 등을 제안했다. AI란 기술 요인의 가능성도 언급했다. 러시아 국외에서 소셜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얻고 해당 데이터를 기술을 통해 검증하며 운영되는 ‘아이스토리 러시아(ВАЖНЫЕ ИСТОРИИ)’는 과거 불가능했던 보도가 기술을 통해 가능해진 대표적인 사례다.
‘타임즈오브인디아’, ‘코드포아프리카’, 엘토크(Eltoque) 등 해외 기관, 매체를 선례로 거론한 그는 AI를 “양날의 검”이자 “인터넷의 등장”에 빗대며 “리스크를 동반한 파워풀한 툴”로서 위험성과 가능성을 함께 강조했다. 그는 “이런 모든 환경변화를 한 번에 해결하는 하나의 솔루션은 없다. 분명한 건 저희가 독자를 관여시키지 못하고 멀어진다면 수익은 0이 된다는 것”이라며 “새롭게 변화하는 기술을 받아들이고 사람들 목소리를 들으며 그들이 원하는 뉴스를 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진 대담에선 국내 주요 매체 관계자들이 패널로 참석해 자사의 시도와 성과, 노력에 대해 설명했다. 신석호 동아닷컴 전무이사는 “뉴욕타임스 같은 서구 매체에선 독자들을 상대로 구독료를 받는 모델을 하고 있고 한국에선 쉽지 않지만 언론이 돈을 버는 방법에 B2C만 있는 건 아니다. 100년 넘은 역사에서 언론이 다양하게 맺어온 관계가 존재하고 단순히 디지털 활동이 돈을 버냐 못 버냐는 단견이라 본다”고 했다.
‘히어로 콘텐츠’가 거둔 유무형의 성과, 자체 개발한 CMS 판매 계획 등을 거론하며 그는 “단기적으로 수익을 내는 쇼타임 전략보다는 쌓아온 영향력을 디지털에서 극대화하는 전략을 좇고 있다”면서 “사회 속에서 (언론이) 긍정적인 역할을 하며 살아남는 데 디지털이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고 했다.
2018년 ‘인스파이어’ 운영을 통해 디지털 수익화 실험을 했던 헤럴드경제 서상범 기획조정실장은 독자가 누구이고, 니즈가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위한 근간의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서 실장은 “지난해부터 CMS나 데이터분석 툴을 구축하고 내년 상반기에 완료할 예정”이라며 “대부분 메이저 신문사들이 독자와 어떻게 만나고 분석할지 시스템을 마련해 온 상황 속에서 갈증이 컸는데 현재 이를 위한 기본 작업을 하는 단계로 보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당장 돈을 벌자는 개념을 넘어 시장에서 독자에게 인정을 받고 함께 호흡하는 지속가능한 구조를 만들려 하고 있다. ‘좋은 콘텐츠를 만들면 되지’하는 식으로 생산자가 바뀌지 않아선 어떤 수익 모델이 나와도 의미가 없다고 보고 의식, 태도 변화에 드라이브를 걸려 하고 있다“고 했다.
강원도민일보의 남궁창성 보도국 이사는 AI 시대 지역언론이 겪는 여건을 설명하며 종이신문과 디지털 뉴스, 영상, 최근 론칭한 뉴스레터, 현재 진행 중인 통합뉴스룸 구축 작업 등 시도를 소개했다. 그는 “한국 지역언론의 디지털 환경에 부응한 비즈니스모델은 시도단계에 있고 ‘고난의 행군’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며 “쉽지 않은 상황, AI로 상정되는 디지털 환경 변화 속에서 지역밀착형 콘텐츠 생산, 공동체와 함께 하는 마케팅, 현안 이슈 및 어젠다 세팅으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수익화 위기의 본질은 비즈니스의 위기가 아니라 저널리즘의 위기라고 저는 생각한다. 최근 지역신문 컨퍼런스에서 상을 받은 여러 매체 콘텐츠를 보면 전국단위 언론은 할 수 없는 지역언론의 일들을 볼 수 있는데 이런 노력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하는 길이 아닐까”라고 부연했다.
국내 언론 종사자들의 인식과는 별개로 이날 조영신 SK브로드밴드 경영전략그룹장은 ‘가치’가 아니라 ‘시장’과 ‘산업’ 자체에 집중한 냉정한 판단을 언론계에 요구하기도 했다. 조 그룹장은 “AI를 도입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게 뭔지 클리어해져야 한다. AI를 통해 고객 인게이지먼트를 2~3배 높일 수 있고 거기 투자비용은 얼마인지 등등 목표를 분절화해서 정리가 돼야 할 것 같다. 이 답이 명확하지 않으면 전체를 조망하는 입장에선 지금 왜 (AI가) 필요하지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이런 계산은 답이 딱 떨어지기 어려운데 그렇다면 CMS 사업에 초기 들어갔던 곳들이 여러 시행착오를 겪고 나중에 뛰어든 쪽이 더 잘 만들었다는 연장선에서 (AI 사업도) 늦게 들어가면 된다”고 덧붙였다.
조 그룹장은 그러면서 “특정 산업군이 소멸하고 밀려나는 일들은 과거에도 있어왔는데 크게 성장한 미디어사업자들은 성장하는 쪽으로 무게 중심을 옳기고 도태된 사업을 쳐내는 작업을 해왔다. 언론계는 성장하는 쪽은 아닌데 그 험블하지만 가치있는 것들을 유지하기 위해선 우리가 부정적으로 보는, 좋은 주인을 만나는 과정이 산업적으론 필요할 수도 있다. 이런 고민까지 요구되는 시기”라고 부연했다.
앞선 ‘AI 위기와 대응’ 세션에선 앤-마리 리핀스키 하버드대 니먼 재단 큐레이터와 국내 언론사 기자들이 AI, 딥페이크 기술을 활용한 허위정보 유포 등의 문제와 맞물린 저널리즘 위기, 대응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토론하기도 했다. 올해 3월 ‘뉴스토리’ 등에서 방영된 <진짜 같은 가짜 딥페이크 선거판을 흔들다>를 제작한 박수진 SBS 탐사보도부 기자는 현지 취재 등을 바탕으로 미국 대선 국면에서 이슈가 된 딥페이크에 대해 ‘그(유권자)들은 정말 (허위정보를) 알고 있나’, ‘선택은 영향을 받고 있을까’, ‘어떻게 대처해야하나’를 살핀 취재경험을 공유했다.
박 기자는 ‘유권자들은 딥페이크에 대해 예상보다 잘 알지 못했’고, ‘사실에 기반하지 않았더라도 선택을 바꾸지 않았’으며, ‘검증할 방법은 잘 모르겠고, 필요도 못 느낀다’는 답변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한 답변을 들었을 때 조금 제 일을 돌아보게 됐다. 진짜인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땐 뒷받침해줄 수 있는 뉴스를 찾는다는 얘기였다. 저널리즘이 신뢰를 많이 잃었다고 하지만 결국 사람들이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먼저 한 스텝을 밟는 건 뉴스가 진실에 대한 답을 줄 것이라 믿고 찾아본다는 거였고, 현장에서 조금 울컥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딥페이크 영상, 이미지 등에 대한 탐지 시스템을 구축하고 허위정보 확산을 막는 역할을 해온 ‘트루미디어’를 방문, 취재한 경험을 설명하며 그는 “결국 기술과 자본, 사실이 확산되어야 한다는 선의가 모였을 때 시너지가 나는 게 아닌가 개인적으로 생각하게 됐다”면서 “진짜와 가짜가 뒤섞일수록 사람들이 가장 먼저 찾는 건 저널리즘이고, 그 저널리즘은 그렇게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진실과 아닌 것을 구분할 수 있도록 기준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게 제 결론이었다. 테크의 시대에 우리가 지녀야 할 건 클래시컬한 기본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올해 4월 방영된 다큐 <자신있나? 속지 않을“ 딥페이크!>를 제작해 딥페이크 현황, AI 영상 실험 등을 선보였던 이승철 KBS 시사제작2부 기자는 딥페이크 기술을 일반이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상황이고, 특히 십대에선 놀이문화로 자리잡은 현실에 우려를 전했다. 그는 “선거나 고액사기 사건은 사회문제로 이슈화될 수 있고 빠른 대응과 피해회복이 가능하지만 한 개인의 차원에선 피해사실을 아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고 되돌리는데도 힘든 과정을 겪을 수밖에 없다. 본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기 때문에 변론 기회조차 박탈당하게 된다. 딥페이크가 우리 사회에 내재화됐을 때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고민도 이젠 시작해야 될 때”라고 제언했다.
이번 ‘2024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는 ‘저널리즘, AI를 품다’를 주제로 지난 13일부터 15일까지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 회의장에서 개최됐다. 3일간 진행된 행사엔 아이린 제이 리우 공영언론국제기금 AI 신기술 및 규제 담당이사, 트리나 레이놀즈 타일러 인비저블 인스티튜트 데이터연구분석가, 존 리딩 파이낸셜타임스 그룹 CEO, 앤 마리 리핀스키 하버드대 니먼재단 큐레이터, 비비안 쉴러 아스펜연구소 부소장, 송길영 마인드마이너, 신항식 구글클라우드 코리아 AI 스페셜리스트 등을 비롯해 국내 언론 경영‧디지털 관계자, 교수 다수가 참여해 AI 시대 언론의 역할, 변화할 지점, 미래 전망을 함께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