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가짓수가 적으면 맛집일 확률이 높다고 했다. 서울 종로구 내수동 74 벽산광화문시대 지하 1층의 ‘카레와 제육’은 조건에 얼추 맞다. 점심 메뉴가 카레, 제육덮밥, 닭튀김덮밥 세 가지뿐이다.
우선 카레를 권하고 싶다. 인도식도 한식도 아닌 일본식 카레다. 슴슴하지만 진하다. 하동관 곰탕과 평양면옥 냉면, 만포막국수의 이북식 찜닭, 훌륭한 쌀밥맛에 감동하는 분들에게 추천한다. 달거나 매워지는 작금의 한국 식당들을 규탄하는 분에게는 더욱 추천한다. 꾸미지 않은 감칠맛이 심심한 듯하면서도 얼마 지나지 않아 그리워지는 카레다.
큼지막한 고깃덩어리는 부드럽게 찢어진다. 촉촉한 수란까지 더없이 만족스러운 구성이다. 부추 무침·무 절임·김치와 샐러드, 그리고 맑은 고기 국물이 곁들여진다. 처음에는 왜 고기 카레에 고기 국물인지 의문이었다. 방치해뒀다 마지막에 한 입 들이켜고 깨달았다. ‘다 계획이 있었구나.’ 소고기 육수인데 경쾌하다. 진한 카레와 묵직한 고깃덩어리의 무거움을 덜어주고 눈앞의 음식에 재차 집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능한 국물이다.
저녁에는 500cc 1잔에 겨우 2900원인 생맥주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개인적으로 싼 게 비지떡이라는 신조를 갖고 있지만 주인장들 중 한 명이 주류회사 출신이라는 점을 감안해 믿고 마셔도 좋다. 그리고 맥주의 맛을 극대화할 닭튀김과 감자튀김, 한국인의 술상에 빠질 수 없는 소주와 오뎅탕, 반건조 오징어도 있다. 서넛이 어지간히 먹고 마셔도 10만원이 넘지 않을 정도의 가격이다.
과거 서울 역삼동에서 영업하다 수 년간 휴지기를 거친 후 광화문에서 부활한 식당이다. 혹독한 경쟁과 변덕스러운 손님들과 무자비한 건물주 때문에 더 이상 만나볼 수 없게 된 맛들을 떠올리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모든 맛집들의 만수무강을 빈다.
※‘기슐랭 가이드’ 참여하기
▲대상: 한국기자협회 소속 현직 기자.
▲내용: 본인이 추천하는 맛집에 대한 내용을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으로 기술.
▲접수: 이메일 taste@journalist.or.kr(기자 본인 소속·연락처, 소개할 음식 사진 1장 첨부)
▲채택된 분에겐 소정의 원고료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