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로는 27년차, ‘화곡동’ 주민으로는 24년차. 단골집 ‘범생이포차’는 공교롭게도 내가 사는 강서구가 아니라 양천구에 있다. 그것도 1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강서구와 양천구로 갈라지는 경계선에 있다. 11년 전 화곡1동에서 화곡3동으로 이사와 처음 범생이포차 간판을 봤을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왜 하필 촌스럽게 ‘범생이’인가? ‘날라리포차’ 정도의 작명 센스를 발휘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범생이포차의 음식은 제철 음식의 모범이라는 점에서 범생이가 맞다. 미식가로 이름이 높은 허영만 화백의 ‘식객’에 범생이포차가 등장한 데는 다 이유가 있다. 허 화백은 이곳을 두 번이나 방문해서 “계절의 맛을 느끼는 곳”이라고 상찬했다. 유일한 단점이라면 너무 유명해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범생이포차는 제철에 맞추어 주꾸미 데침, 하모회, 맛조개탕·무침, 갑오징어 데침, 병어회·조림, 돌문어 데침, 서대회무침, 간자미무침, 전어회·구이, 참꼬막 등을 낸다. 봄과 여름철에 나오는 해물 데침에는 특별히 미나리무침이 곁들어지는데 주요리(main dish)를 뛰어넘는 맛이다. 사시사철 반찬으로 나오는 열무김치나 갈치속젓도 그렇다.
하지만 나에게 범생이포차의 대표 메뉴는 ‘건민어찜’이다. 민어의 주산지인 전남 신안에서 올린 건민어(전라도에서는 말린 생선을 ‘건정’이라고 한다)에 얼큰한 양념과 달착지근한 양파를 얹어 찜을 완성하는데 그 감칠맛과 쫀득한 식감이 ‘술술술’ 술을 부른다. 막걸리든 소맥이든 위스키든 어떤 술에도 페어링(pairing, 잘 어울리는) 되는 장점이 있다. 이곳에 왔던 한 후배가 “선배는 민어를 몇 마리나 드셨어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는데 나는 호기롭게 “아마도 최소 500마리 이상은 먹었을 거야”라고 답한 적이 있다. 그러자 후배는 “선배는 전생에 민어였거나, 다음 생에 민어로 태어날 것 같아요”라는 덕담(?)을 건넸다.
20년 가까운 업력을 지닌 범생이포차의 맛은 영호남 부부의 합작품이다. 주인이 두 번 바뀌긴 했지만 현재는 경북 봉화 출신 금동남 사장님과 전남 담양 출신 김정표 사장님이 8년째 운영하고 있다. 이곳을 인수하기 전 오랫동안 식당을 운영했던 금 사장님은 손맛이 아주 좋고, 스포츠머리가 인상적인 김 사장님은 손님들과의 스킨십이 아주 좋다. 김 사장님이 직접 담근 죽순 술, 부추 술, 야관문 술 등을 얻어 마셨다면 단골의 반열에 오른 것이나 다름없다. 게다가 나는 얼마 전 술집에서 만난 전라도 형님으로부터 프랑스 코냑 ‘랑디 엑스오’(Landy XO) 한 병을 선물 받는 행운까지 누렸다. 그런 맛과 정과 인심에 취한 나는 오늘도 슬리퍼를 끌고 강서구에서 양천구로 건너간다.
※‘기슐랭 가이드’ 참여하기
▲대상: 한국기자협회 소속 현직 기자.
▲내용: 본인이 추천하는 맛집에 대한 내용을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으로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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