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포 맛집에는 설렁탕이 유독 많다. 서울 한복판에서 바쁜 현대인이 뜨뜻한 고깃국물 한 그릇을 후딱 비워낼 수 있으니 차려 내는 주인도, 손님도 반길 수밖에 없는 메뉴임에 틀림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전날 한잔이라도 기울인 날이라면 달짝지근한 깍두기 국물과 설렁탕은 더없이 훌륭한 해장국이 됐으리라. 고기를 잘 씹지 못하는 아이도 설렁탕에 공깃밥을 말아주면 꿀떡꿀떡 삼키니 오랜 기간 사랑받는 메뉴가 된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라고 야단을 쳐보았건만, 못 사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설렁탕을 사줄 수도 있다.” 현진건 소설 ‘운수 좋은 날’의 주인공 김 첨지가 병든 아내에게 사주지 못해 속상해하다가 돈을 손에 쥐고 “푼푼하였다(모자람이 없이 넉넉하다)”라고 한 음식도 다름 아닌 설렁탕이다.
청춘의 조각이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젊은이의 거리 신촌에도 설렁탕 맛집이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독립문설렁탕’은 신촌 ‘혜자 골목’ 한가운데 자리한 곳이다. 4000원 돈가스, 5000원 김치찜 등 가성비를 넘어 ‘갓성비’ 맛집이 즐비하다고 해서 붙여진 혜자 골목에서 독립문설렁탕은 4~5년째 6000원짜리 설렁탕을 팔고 있다. 밥에 슥슥 비벼서 먹는 불고기 역시 같은 가격이다. 자장면 한 그릇이 평균 7000원이 넘을 정도로 외식물가가 고공 행진하는 요즘 같은 시대에, 6000원이라는 가격만으로도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지만, 얼굴만한 대접에 소담하게 담겨나오는 깊고 맑은 고깃국물은 “어떻게 이 가격에”라는 감탄사를 연발하며 두 번 세 번 발길 하게 만든다.
1인당 1개씩 나오는 김치, 꾹꾹 눌러 담은 공깃밥은 성인 남성이 먹기에도 부족함이 없다. 가게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1만1000원은 받아야 하지만 학생이 많은 지역이라 가격을 올리지 않고 있다”고 한다. 역사를 자랑하는 가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학생부터 노년 부부, 직장인 남성, 외국인 관광객까지 두루 찾는 설렁탕 맛집으로 안착한 비결이다.
회전율이 좋은 편이지만, 줄 서는 건 기본이고 혼자 간 손님이라면 겸상을 할 수도 있다. 북적이는 가게에서 후다닥 먹고 나오는 게 아쉬울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맛과 양, 가격까지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은 이곳을 한번 찾아보면 어떨지. 창밖 젊은이들을 바라보며 먹는 한 숟가락에 추억이 덤으로 찾아올 수도 있다.
※‘기슐랭 가이드’ 참여하기
▲대상: 한국기자협회 소속 현직 기자.
▲내용: 본인이 추천하는 맛집에 대한 내용을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으로 기술.
▲접수: 이메일 taste@journalist.or.kr(기자 본인 소속·연락처, 소개할 음식 사진 1장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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