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동료 기자가 맛집을 발견했다며 저녁 자리를 추진했다. 메뉴는 ‘하모’. 그게 뭐냐고 물으신다면 샤브샤브처럼 데쳐 먹는 갯장어 되시겠다. 인천지역 장어의 씨를 말리러 돌아다니는 자타공인 장어킬러로서 물에 빠진 장어를 마주하는 건, 그동안 숭고한 희생으로 몸보신의 원천이 되어준 구이 장어에 대한 예의가 아닌 듯했다.
절반의 호기심, 약간의 변절자 느낌으로 가게에 앉았다. 네모난 접시 위에서 좌우정렬 맞춰 뽀얀 자태를 드러내는 하모. 내가 30년간 만난 장어와 다른 모습에 낯을 가리려는 그 순간, 사장님이 등장하신다.
하모에 대한 남다른 자부심이 있는 사장님의 지휘는 빠르고 정확하다. 접시 위 생양파 그 위에 쌈장과 생강절임을 올리라는 명을 받는다. 일행 중 한 명이 국자 위에 하모를 인원수만큼 올리고 비장한 눈빛으로 푹 끓여진 육수 속으로 투하한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0초. 숫자를 처음 배우는 어린아이처럼 1부터 10까지 조심스레 내뱉으며 수면 위로 떠오를 그를 기다린다.
“하모….”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부드러운 살들이 하나하나 터지며 꽃이 되어버린 하모를 미리 준비한 양파와 그 졸병들 위에 살포시 얹어 입으로 가져간다. 두툼하게 씹히며 존재 각인시키는 주인공과 한치의 비릿함도 용납하지 않겠다는 양파의 철통방어. 개운함으로 입안을 씻기고 다음 선수 맞이에 나서는 쌈장과 생강절임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콜라보는 다음 달 환장할 카드값의 서막을 알린다.
쉬지 않고 입수 당하는 하모를 바라보는 오늘의 결제자 동공이 흔들린다. 조심스레 나에게 공깃밥 주문을 권한다. 탄수화물은 다이어트의 적이라며 가볍게 내치고 “한 판 더”를 외쳐본다.
주연이 있다면 감초 같은 조연도 있는 법. 더욱 깊어진 육수에 칼국수 사리를 추가한다. 사장님이 특별히 공수해 온 오동통한 칼국수면이 육수로 물광 화장한 듯 반질반질하다. 호로록 목구멍을 넘어가는 칼국수를 음미하며 역시 마무리는 탄수화물이라고 생각한다. 다이어트는 내일부터다.
※‘기슐랭 가이드’ 참여하기
▲대상: 한국기자협회 소속 현직 기자.
▲내용: 본인이 추천하는 맛집에 대한 내용을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으로 기술.
▲접수: 이메일 taste@journalist.or.kr(기자 본인 소속·연락처, 소개할 음식 사진 1장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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