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룩, 술술.” 잘 넘어간다. 취재가 막히거나 일이 난장판이 됐을 때 허한 마음을 달래려고 묵밥집을 찾는다. 미끌미끌한 도토리묵만큼은 도무지 막히는 법이 없다.
그렇다고 서둘러 먹을 생각에 수저 한가득 담아 올리면 요놈의 미끌한 도토리묵은 영락없이 사발 속으로 도로 아미타불, 텀벙텀벙 빠져버린다. 욕심을 내면 술술 잘 넘어가는 묵도 목 안으로 넘기기가 영 힘들다. 일이 안 풀릴 때, 욕심을 비워야 할 때 묵밥은 그렇게 종종 깨달음을 준다.
한 그릇 묵밥 속에 삼라만상이 녹아 있다. 아무 맛도 없을 것 같은 미끌미끌한 도토리묵을 우물우물 씹다 보면 텁텁하지만 구수한 숨겨진 맛이 서서히 우러난다.
여기에 곱게 빻은 참깨와 김 가루, 그리고 잘게 썰어낸 묵은지가 더해지면 고소함과 시큼함이 톱니바퀴 돌아가듯 요지경 같은 조화를 이룬다.
맵고 짜고 달고 기름진 속세의 일상에서 담백하고 시큼털털한 묵밥을 넘기고 있자면 뱃속의 때가 벗겨지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묵을 반쯤 비워냈을 때 공깃밥을 툭 털어 넣으면 또 다른 세계다. 남은 묵을 수저로 잘게 쳐내고 사발 속에 흩어진 밥알과 함께 한술 뜨면 묵으로만 채울 수 없었던 한 끼가 완성된다.
묵밥만 먹기엔 뭔가 심심하고 같이 온 일행이 셋 이상이라면 상추와 깻잎을 곁들여 낸 묵무침을 빼놓지 마시길 바란다. 고기 한 점 없이도 한 상 푸짐하게, 충청도 향토 음식의 정수를 느끼고 갈 수 있다.
일상다반사 속 묵밥으로 수행을 떠나고 싶다면 충남 예산 천년고찰 수덕사로 향하는 시골길 귀퉁이에 ‘묵집’이라고 적힌 투박한 간판을 찾으면 된다. 묵밥 8000원.
※‘기슐랭 가이드’ 참여하기
▲대상: 한국기자협회 소속 현직 기자.
▲내용: 본인이 추천하는 맛집에 대한 내용을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으로 기술.
▲접수: 이메일 taste@journalist.or.kr(기자 본인 소속·연락처, 소개할 음식 사진 1장 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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