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만에 존엄사 재조명… "서울신문에 오리지널리티 있죠"

[인터뷰] '금기된 죽음, 안락사' 취재한 신융아·이주원 서울신문 기자

지난해 8월, 신융아 기자는 메일 한 통을 받았다. 췌장암 말기 환자였는데 간까지 전이돼서 상태가 나빠져 스위스에서 조력사망을 준비하고 있다며, 가족 대신 동행해 줄 수 있느냐고 묻는 내용이었다. 2019년 신 기자가 쓴 ‘존엄한 죽음을 말하다’ 기사를 보고 연락을 취한 것 같았다. 4년 전 신 기자가 속했던 서울신문 탐사기획부는 스위스에서 조력사망한 한국인의 이야기를 처음 보도하며 그간 금기시됐던 존엄사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 올린 바 있다.

서울신문 기획취재부 신융아(왼쪽), 이주원 기자가 지난달 27일 한국프레스센터 9층에 있는 서울신문 스마트오피스에서 사진 촬영에 응하고 있다.


메일을 받고 고민하던 신 기자는 당시 함께 했던 부장을 찾아갔다. 때마침 기획취재부가 생겼고, 부장과 다시 한 팀을 이루게 되면서 “다시 이 이슈를 해볼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동행 요청은 들어줄 수 없지만, 존엄사 이슈만큼은 자신들이 제일 잘 다룰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이슈는 서울신문이 오리지널리티를 갖고 있다”는 자부심이었다. 뒤이어 합류한 이주원 기자도 “‘우리가 화두를 던졌으니 우리가 해결해야 한다’는 부장의 말에 공감했다”고 했다. 그렇게 부장 포함 3명으로 단출하게 꾸려진 취재팀은 지난 8개월간 조력사망 당사자와 가족, 조력사망을 원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 등 50명이 넘는 사람들의 사연을 듣고 기록했다. 국민 81%, 국회의원 85.5%, 의사 50%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삶을 마무리하는 ‘의사조력사망’ 도입에 찬성한다는 조사 결과도 확인했다. 이제 더는 피할 수 없는 주제가 됐음이, 사회적 공론화는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음이 분명해졌다.

서울신문은 지난달 10일부터 ‘금기된 죽음, 안락사’를 주제로 우리 사회가 존엄한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다양한 견해와 논의 등을 다뤘다.


서울신문 취재 결과 스위스 조력사망 지원 단체에 가입한 한국인은 300여명으로 추정되며, 최소 10명이 스위스에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4년 전 서울신문 최초 보도 당시와 비교해 가입자와 사망자 모두 3~5배 늘어난 수치다. 이들이 외국어와 씨름을 하며 홀로 정보를 모으고, 최후의 체력을 아껴 스위스행을 준비하는 동안에도 우리 사회는 존엄한 죽음의 방식에 관해 이렇다 할 논의조차 하지 못했다. 신 기자는 “세계적 흐름을 봤을 때 (우리나라도) 머지않은 시점에 나올 수밖에 없는 이슈”이며 “더 많은 사람이 스위스로 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래서 사회적 공론화를 더 늦출 수 없다고 보고 필요한 논의의 거의 모든 것을 이번 기획에 담았다. 일부 사연을 부각해 연민에 호소하거나 찬반 의견을 대립시키는 쉬운 방법도 있었지만, 어렵더라도 정면으로 마주하는 길을 택했다. “들어야 하는 반대 얘기”라면 ‘야마(기사의 주제를 뜻하는 은어)’에 맞지 않아도 살렸다. 신 기자는 “우리가 원하는 단면만 뽑아 보여주는 방식은 공론화에 방해, 왜곡된다고 생각했다. 야마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식에 마이너스가 될지라도 사회적 공론화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서울신문은 지난달 10일부터 ‘금기된 죽음, 안락사’를 주제로 우리 사회가 존엄한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지 다양한 견해와 논의 등을 다뤘다.


조력사망을 준비 중인 20명을 인터뷰하는 등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담으면서도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하려 애썼다. “취재윤리에 대해 그 어느 때보다 고민을 많이” 한 시간이었다고 신 기자는 말했다. 특히 “취재원이 동의하지 않은 방식으로 취재하지 않겠다”는 원칙에서만큼은 물러서지 않았다. 스위스행을 앞두고 여러 차례 생전 인터뷰를 했던 남태순(가명) 할아버지가 떠난 뒤 남은 자녀들에게 연락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끝까지 지킨 것도 그래서였다. 가슴 먹먹함과 몇 배로 힘들었던 이후의 확인 과정은 기자들이 오롯이 숙제로 떠안아야 했다.


삶이 계속되고 있는데, 죽음을 반복해서 이야기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주원 기자는 “사실 죽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을 만나본 경험이 없다”면서 “‘나는 잘 살고 싶다’ 그런 목소리를 많이 들어왔지, ‘잘 죽고 싶다’는 목소리를 듣는 게 이번이 처음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결국 그 둘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희망을 갖고 싶다는 목소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찬성이냐 반대냐를 떠나서 내가 어떻게 죽을지, 우리 사회가 죽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한 번쯤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주변에서 말기 암 환자를 만나본 적도, 가족이 고통 속에 돌아가신 적도 없다. 하지만 닥쳐서 고민하면 제대로 고민을 못 할 것 같다. 앞으로 베이비붐 세대들이 많이 돌아가실 거고, 의료적 수요도 많아질 텐데 그때 가서 논의하기엔 너무 늦다고 생각한다. 지금부터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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