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통위 정치적 독립, 정치권 인식부터 변해야

[우리의 주장] 편집위원회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과정 중 점수조작 혐의로 방송통신위원회 담당자들이 줄줄이 구속되면서 방통위가 2008년 설립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검찰은 당시 종편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TV조선이 재승인 기준 점수를 넘었는데도 이를 인지한 방통위 담당 국장과 과장이 심사위원장에게 점수표의 수정을 요구했고 심사위원장은 심사위원들에게 점수를 수정하도록 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공적책임·공정성’ 등 항목의 점수를 의도적으로 기준점 절반에 못미치는 ‘과락’이 되도록 낮춰 다시 제출하도록 했고 그래서 조건부 승인이 났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연초 방통위의 담당 과장과 국장이 구속된 데 이어 지난 17일에는 재승인심사를 총괄한 심사위원장인 모 교수도 구속되면서 방통위는 지금 충격에 빠졌다. 방통위는 지난해 9월부터 네 차례에 걸쳐 검찰의 압수수색을 받았고, 대통령실로부터 직접 감찰을 받는 등 정권 교체 이후에도 물러나지 않고 있는 한상혁 방통위원장의 사퇴를 노린 정권의 사실상의 ‘표적 수사’를 받았다. 결백과 억울함을 호소하던 내부 기류도 연이은 관련자 구속으로 사뭇 달라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위야 어찌됐건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권리 보장, 대형 포털 뉴스 추천 알고리즘 투명화 등 현안이 산적해 있는 방통위가 업무 외적 문제로 흔들리고 있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TV조선 재승인 심사과정에서의 점수 수정이 ‘심사위원의 재량’에 해당하는지, 아니면 방통위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인·허가권을 남용한 것인지, 시시비비는 법정에서 다투어지게 됐다. 영장 단계에서는 사건의 실체에 대해 객관적 판단을 내리기 쉽지 않은 만큼 공개 재판에서 검찰 측의 증거가 제시되고 이에 대한 공방이 오가는 가운데 유·무죄를 가릴 수밖에 없다.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이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다만 심사에 참여했던 관련자들의 연이은 구속으로 ‘심사위원들이 엄격하고 투명하게 심사를 진행했다’고 밝힌 한상혁 위원장 주장의 신뢰성에 타격을 입게 된 점은 분명하다. 직권 남용 혐의로 검찰 수사를 앞둔 한 위원장은 심사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다면 보다 명확하고 선명하게 심사과정의 독립성을 납득시키기 바란다.


이번 사안은 다분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집권 여당은 이번 사태를 문재인 정부가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을 손보기 위해 인·허가권을 남용한 범죄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체는 사법부에서 가려지겠지만 우리는 이번 사안이 방통위의 존립 근거인 공정성과 독립성을 시험하는 중대한 사안이라고 판단한다. 방통위는 방송사의 인·허가, 방송시장의 공정경쟁, 공영방송사 이사 임명 등 중요한 방송 정책을 좌지우지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진 기구다. 정치적 외풍을 타지 않도록 법률이 정한 경우 이외에 위원의 의사에 반해 면직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독립성을 보장하는 여러 법률적 보호장치를 두고 있는 이유다.


현 정부 들어 감사원 감사를 시작으로 검찰 수사, 국무조정실 감찰, 대통령실 감찰 등 방통위를 향한 전방위 압박은 한상혁 위원장을 정조준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방통위 업무보고를 서면으로 받았다. 기관의 독립성을 유지하기 위한 제도가 아무리 촘촘해도 방송과 방송정책을 정권의 전리품으로 간주하는 정치권의 인식 변화 없이는 이같이 불행한 사태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 방송과 방송정책에서 손을 떼겠다는 정치권의 쇄신 노력과 함께 재승인 심사기준의 정성적 평가요소를 최소화하는 등 제도적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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