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레터와 페이월이 실패하는 이유

[언론 다시보기] 노혜령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노혜령 건국대 언론홍보대학원 초빙교수

말콤 글래드웰 같은 스타 작가들을 앞세워 야심차게 출범했던 메타(페이스북 운영사)의 이메일 뉴스레터 서비스 ‘불리틴(Bulletin)’이 1년 반 만에 문을 닫기로 했다. 이 분야의 원조 스타 서비스인 서브스택은 구독자 100만명을 넘기며 승승장구한다는 소식을 들은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자금조달 계획에 차질이 빚어져 감원에 돌입했다고 한다.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디지털 경제뉴스 매체 쿼츠는 3년 만에 디지털 유료 구독(페이월)을 폐기하고 무료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유료 구독 모델을 완전 폐기하고 광고 모델로 회귀하는 셈이다. 최근 쏟아진 미국의 미디어 업계 뉴스를 훑어보면 숨이 가쁘다. 디지털 전환이 진척될수록 믿었던 디지털 성공 방정식이 폐기되는 속도도 빨라지는 듯하다. 페이월, 뉴스레터, 구독모델 같은 트렌드에 이제 막 탑승 중인 한국 언론계로서는 당황스러운 광경이다.


구독모델은 충성도 높은 디지털 독자 확보를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은 아니다. 행동 패턴을 분석할 수 있을 만큼 대규모 디지털 정기 독자를 확보해야 비즈니스 모델 혁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때 교차 판매와 번들링이 중요하다. 교차판매는 기존 고객에게 추가, 연관, 보완 상품을 제시하고 추가 구매를 유도하는 마케팅이다. 이걸 번들링으로 묶어서 할인해주면 효과가 배가된다. 디지털 페이월 기술의 방점은 ‘유료 구독’보다는 독자들의 지불 의향을 추론하고 효과적인 교차판매와 번들링을 설계하는 데 있다. 뉴욕타임스의 핵심 상품은 뉴스지만, 인게이지먼트를 높이는 퀴즈 게임 상품을 통해 교차 판매와 번들링 효과를 높이는 데 성공했다. 올 초 중독성 높은 디지털 영어단어 게임 ‘워들’을 인수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젊은 MZ세대들이 열광하지만 기존 뉴스룸에서 커버하지 못하는 스포츠 콘텐츠 확보를 위해 ‘디 애슬레틱(The Athletic)’을 사들였다. 앞서 인수한 상품 리뷰 사이트 ‘와이어커터’도 같은 범주다. 이런 연관 상품들은 각각 구독할 수 있지만, 번들링으로 한꺼번에 구독하면 훨씬 더 싸다. 적극적인 M&A를 통해 이런 번들링과 교차 판매 전략에 부합하는 기업을 계속 사들이고 뉴스 번들링으로 통합하는 과정이 선순환으로 이어졌다. 뉴스레터는 뉴스 구독 유인, 유지, 인게이지먼트 강화의 목적에 맞도록 설계하고 운용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저작권 확보다. 서브스택식 뉴스레터의 저작권자는 작가들이다. 이들은 언제라도 더 좋은 조건의 플랫폼으로 이사 갈 수 있다. 반면 전통 언론사 조직은 뉴스룸 기자들의 콘텐츠 저작권을 회사가 갖는다. 그 기반 위에 목적에 맞게 일부 스타 뉴스레터 작가들을 보완하는 방식으로 운용된다. 반면 서브스택식 모델은 거금의 선금을 줘야 하는 스타 작가들에 전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단기간에 승자독식형 뉴스 플랫폼으로 자리를 굳히지 못하면 자칫 영원히 손익분기를 맞추지 못할 수도 있다. 대규모 디지털 유료 구독자 확보, 콘텐츠 다양화를 통해 니즈가 제각각인 독자들을 만족시킬 교차 판매와 번들링 전략 구사 중 한 가지라도 삐끗하면 이 방정식은 작동하지 않는다. 이 선순환을 궤도에 올려놓기까지는 상당한 투자가 선결돼야 한다. 메타의 불리틴, 서브스택, 쿼츠는 이 선순환 구축에 1차 실패했거나, 비용 대비 효과가 낮다고 판단해 중단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막 디지털 전환을 시작하는 국내 언론사들이 전략적 맥락을 제거하고 개별 모델을 단순 벤치마킹하면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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